달팽이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

느림의 여유를 즐겨보세요

등록 2003.06.23 06:31수정 2003.06.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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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이 시대에서 '느릿느릿'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자가 되겠다 것과 같은 말일지도 모릅니다. 초스피드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속도'라는 것이 실감나게 우리의 삶 속에 다가왔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이미 옛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빠른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느릿느릿하게 살다가는 제 밥그릇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빼앗기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게으르다고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합니다. 분명 '게으른 것'과 '느릿느릿'은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의어처럼 사용되어 느린 것은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삶이란 여행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짧다면 짧은 여행길이요, 길다면 긴 여행길입니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합니다만 단순히 어디어디를 다녀왔다는 것만으로 여행의 가치를 따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녔는지 보다는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가 중요하고 그 본 것과 느낀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활력소로 자리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배편을 이용하는 것이 볼거리가 많고, 차편을 이용할 때보다는 도보로 여행할 때 더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천천히 도보로 여행을 하려고 작정을 하면 많은 짐을 가지고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여행길이 가벼워진다는 것이지요.

삶이란 여행길에서도 이러한 법칙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느릿느릿 가면 다 빼앗길 것만 같고, 낙오되는 것 같지만 빨리빨리 가는 이들이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것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것들 중에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게으름으로서의 느릿느릿이 아니라 여행의 묘미를 아는 느릿느릿을 사랑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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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도시에서 살 때에는 밤하늘 보는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들을 바라보느라 하늘의 별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고, 현란한 불빛들에 익숙하게 살아가다 밤하늘 총총하게 박혀있는 별을 볼 수 있는 눈을 잃어버렸습니다. 인간들이 만든 빛의 수명은 길어야 몇 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 억 년의 빛을 간직하고 있는 자연의 빛을 바라보는 것을 포기하고 인간들이 만든 빛을 선택했습니다.


자연의 빛은 휴식과 낭만을 주었지만 인공의 빛은 어두운 밤에도 끊임없이 일하게 함으로서 잠시의 쉼도 허락하지 않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내면화시켜 버렸습니다.

이 시대에서 느릿느릿 산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느릿느릿 살자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해도 나이가 들수록 내가 서있는 자리가 뒤쳐진 것 같아서 힘들 때도 있습니다. 느릿느릿 살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릿느릿 살면서 시간의 부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부리면서 살자고 하면서도 늘 시간에 쫓기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도 나는 삶이라는 여행길을 조금 천천히 느릿느릿 가기를 즐겨할 것이고, 추구할 것입니다. 그렇게 추구하며 살아도 체감속도는 여전히 빠르니 더 바쁘게 삶의 여행길을 재촉하다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쳐서 쓰러질 것만 같습니다. 설령,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지금 느릿느릿 가면서 만나는 행복한 순간들을 만난다면 그것 또한 삶의 작은 행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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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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