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어머님의 노래

정해명 시집, <아나콘다 죽이기>

등록 2003.06.27 12:38수정 2003.06.2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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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어머님!

어머님의 현 연세는 65세. 5살 어린 나이에 시력을 잃으신 어머님에게 5살의 기억이 세상에 대한 기억의 전부. 그래서인지 세상은 지금도 천진난만한 궁금쟁이 세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 고사리같은 손의 애정이 담긴 세상이야기가 한 권의 시집으로 세상에 선을 보였다.


그 어머님의 사랑을 듬뿍(?)받고 자란 아들이 어머님과 나누는 세상사랑이야기가 곧 <아나콘다 죽이기> 시집(도서출판 우리겨레, 정해명, 정가 7000원)이다. 그래서인지 시를 하나 하나 음미하다보면 어머님의 몫까지 대신해서 세상을 맑은 눈으로 보려는 몸부림이 처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시집의 제목 <아나콘다 죽이기>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어린왕자' 속의 구렁이 생각과 같이 동심과 무한한 상상력이 시와 시어들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대표적인 시 <아나콘다 죽이기>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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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겨레

어린아이에서부터 성인이 되면서 알게 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들이 있다. 우리들의 모든 사고와 상상력을 억제하는 공포를 주는 거대한 어떤 존재에 가끔씩 몸서리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존재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본질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음직한 일이다.

아나콘다 죽이기 시는 그 어떤 무서운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을 매우 쉽게 접근을 한다. 어려서는 가장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실도마뱀에서 그 존재를 배운다. 좀더 자라서는 쉽게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까운 곳에 있는 구렁이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후에는 좀더 넓은 세상의 코브라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거대한 뱀 아나콘다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시인은 그 무서운 존재들을 어떻게 이겨내고 극복하고 있는 것일까? 그랬다. 실도마뱀은 꼬리를 잘라 피를 많이 흘리게 하여 극복하고, 구렁이는 숯가루를 먹여 앞을 못 보게 하여 극복하고, 코브라는 방울을 따내서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하여 극복한다. 거대한 뱀 아나콘다는 약오른 고슴도치를 먹여 극복하는 동화적인 기발한 착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웃으면서 가볍게 읽어갈 수 있겠고 또한 그것이 가능하겠는가라는 생각도 해봄직하다. 그런데 그 기발한 착상들 속에는 무서운 존재에 대한 단순 명쾌한 본질의 이해가 숨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시의 깊이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즉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 아나콘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자기의 본성으로 인해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된다는 착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시원시원한 해법을 내놓은 시인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하겠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은 역시 다섯 살 어머님과 나누는 세상이야기라는 점이다. 다섯 살 동심의 세계에서 시인의 가슴 가슴에는 어머님에 대한 사랑, 어머님의 세상 사랑의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가는 노력도 다섯 살 어머님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하고, 다섯 살 어머님이 느끼는 공포를 다섯 살의 동심의 세계로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 살 노모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승화지만 만인이 배울 만한 세상 사랑 이야기

하늘이: 엄마, 하늘이 생일이 / 엄마 배 아파 한날이 맞아
엄마: 그래
하늘이: 배 많이 아팠어
엄마: 그래 / 하늘아, 엄마도 생일 있는데
하늘이: 엄마 배가 최고 아팠을 때지
엄마: 아빠도 생일 있는데
하늘이: 그 다음 아플 때
엄마: 그런 거구나
하늘이: 엄마는 대단해 / 그렇게 많이 아파했는데도 멀쩡한 것을 보면

하늘이가 엄마 품에 잠이 들었다
나도 잠이 들었다
하늘이처럼 꿈나라로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벌써 인생의 때가 묻어서
…… <하늘이의 생일> 중(中)에서


'다섯 살 효정이의 궁금증', '추억', '사랑 그리고 그리움', '자화상', '여행', '물상', '세상만사' 등 총 83편의 시를 7꼭지의 주제들로 묶은 <아나콘다 죽이기> 시집은 전체적으로 보자면 동심 같은 세상 읽기에서부터 자기 성찰로 이어지고 사회에 대한 참사랑의 승화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참사랑으로 결을 맺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어떤 몸서리치는 물음표가 아닐까.

맹모 맹부 밑에서 자라면서 온갖 사회적 편견에 시달려 그릇될 수도 있었던 아들은 전혀 어머님을 원망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어머님과 세상 이야기를 나누려는 아들의 처절한 노력에 그만 고개가 숙연해짐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들려줄 고귀한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세상이 이렇게도 아름다울까?

정해명 시인

시인 정해명은 1973년 경북 봉화 출생이다. 유년시절부터 청년이 되기까지 20년을 태백산 산자락에서 살았고, 다시 자연의 깨달음의 글을 얻기 위해 3년 동안 생식생활을 했다. 문학동인회『빈터』, 문학동아리『지향』 등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애국적 종합 시사교양 무크지 『겨레의 눈』 등에 시를 연재하고 있다.

◑ 시인의 말 ◐
"어머니 사랑합니다. 영원히 ……"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 앞이 보이지 할머니가 살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사시는 작은 마당과 집으로 들어서는 좁은 골목길에는 언제나 꽃을 피웠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꽃향기가 집안 가득합니다.
늘 언제나 꽃에 물을 주고 풀을 뽑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꽃이 피는 것을 하나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서울에 사는 아들이 어머니 옆에서 꽃씨를 받으며 그동안 참아왔던 궁금증을 어머니에게 물어 봅니다
"엄니, 저희는 일년에 몇 번 오지도 않는데 매일같이 꽃을 왜 기르시나요?
힘드시는데 그냥 두시고 집에서 편히 쉬며 지내세요."
어머니는 아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아들아, 너도 알지. 예전에 우리가 어려울 때 동네 사람들이 우리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많이 도와준 것도."
'아들도 알고 있다.
아마 동네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렇게 건강한 자신이 없었을 거라는 것도.'
"난 가진 것이 없어 동네 사람들에게 해 줄 것도 없지만, 이렇게 내가 꽃을 키우면 들에 나간 사람들이 힘들어서 물을 한 모금 마시거나 정말 힘들 때 여기 꽃을 보며 한순간만이라도 일상의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하단다."
아들은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 사랑을 먹은 아들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작은사랑을 펼쳐보려고 합니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사랑을.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이 글을 바치려고 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영원히 ……" / 정해명 시인의 말 중에서

아나콘다 죽이기

정해명 지음,
우리겨레,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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