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학원 교사들, '반부패상' 장례식 치러

"더 이상 사립학교에서 정의를 찾지 마라"

등록 2003.06.27 14:58수정 2003.06.2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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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교육청 정문 앞에 반부패상의 영정과 함께 분향소가 차려졌다

교육청 정문 앞에 반부패상의 영정과 함께 분향소가 차려졌다

"아이고, 아이고, 반부패상이 죽었구나! 정의가 죽었구나! 이 땅의 양심이 죽었구나!"

상복을 입은 인권학원 교사들은 '반부패상' 부고를 듣고 서울시교육청을 찾은 문상객을 맞이하여 애절한 곡을 하였다. 시신 없는 장례식, 장지 없는 장례식, 양심을 땅에 묻는 장례식은 6월 24일 오후 5시, 장마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축축한 날씨에 시작되어 26일 오전 10시 발인과 반부패국민연대 사무실까지 노제를 마치고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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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부패상 받은 교사 파면이라니!

지난 2년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몇 차례 집회와 농성을 해온 인권학원 교사들이 왜 이번에는 장례식이라는 퍼포먼스를 했던 것일까?

"파면이 두려운 게 아니라 허탈했습니다. 부정부패를 묵과하지 않고 맞서 싸웠던 교사들이 학교에서 짤려나가는 현실을 보면서 아이들이 무엇을 느끼겠습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요?"

파면이 예정된 것으로 알려진 신정여중 최영숙 교사는 가슴 깊이 끓어오르는 슬픔 때문에 양심의 사망, 정의의 사망, 용기의 사망을 세상에 고발하고 싶었다고 했다.

a 반부패상 부고 소식에 많은 교사들이 애도의 뜻으로 문상을 왔다

반부패상 부고 소식에 많은 교사들이 애도의 뜻으로 문상을 왔다

인권학원 전교조 교사들의 반부패상 장례식에 대하여 막상 상을 수여했던 반부패국민연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반부패국민연대는 유인종 교육감이 직접 나서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비정상적인 재단의 부패로 발생한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 평시의 정상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지극히 관료적이며 독선적인 태도이다. 부패에 맞서 싸운 사람들에 대해 부패한 위정자들과 권력자들은 늘 구실을 붙여 압박과 탄압을 가하였는데, 이제 와서 수업결손을 이유로 전교조인권학원 연합분회 교사들에게 파면과 징계조치를 내린 것은 기존의 이러한 부패한 위정자나 권력자들의 태도와 결코 달라 보이지 않는다.


(중략) 교육은 정의로워야 하며, 배움은 그 정의를 경험하는 것이다. 오늘 전교조 인권학원 연합분회 교사들에 대한 파면과 징계조치는 정의를 경험해야할 학생들에게 불의를 강요하는 것이며, 이 강요된 불의는 결국 미래에 부패의 부메랑이 되어 이 나라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이다."

a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반부패국민연대까지 노제가 진행되었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반부패국민연대까지 노제가 진행되었다

정문 앞이 장례식 장소로 되어버린 서울시교육청의 입장은 무엇일까?


인권학원 전교조 교사들은 이건, 안승문 서울시교육위원에게 유인종 교육감이 사태 해결에 나서도록 중재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승문 서울시교육위원은 유인종 교육감을 끝내 만날 수 없었고, 서울시교육청이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인권학원 이사회를 일주일간 연기한 후 학교가 파행으로 가지 않도록 방도를 연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안 싸웠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물러설 수도 없네요."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황인범 인권학원 전교조 분회장. 2년 간의 반부패 투쟁에 지쳐있는 그의 어깨 위로 어둠이 깃을 내린다. 정말 내일은 내일의 새로운 태양이 뜰 것인가. 파면을 철회한다는 새로운 태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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