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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목사안수를 받을 때 절친한 친구가 파카만년필을 선물로 주었다.
오랜만에 써보는 만년필이 좋아 애지중지하며 그 만년필로 참 많은 설교준비도 하고 글도 썼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어느 날 만년필을 잃어버리고 똑같은 것을 구하기 위해 문구점에 들렀다가 5만원이 넘는다는 말에 깜짝 놀랐는데 점원이 웃으며 몇 십만원 짜리도 있다고 하여 혀를 차며 그냥 나왔다. 결국 만년필을 포기하고 수성펜을 나의 필기구로 삼았다.
그러나 만년필에 대한 향수를 버릴 수가 없어 도시를 떠나 농촌교회로 부임하면서 거금 6만원을 들여 친구가 사주었던 것과 비슷한 만년필을 샀다. 그리고 컴퓨터 자판을 많이 사용하는 아이들의 글씨가 영 삐뚤빼뚤이라 글씨를 교정해 주기 위해 펜촉과 펜대, 잉크도 구입을 했다.
사실 펜촉은 오랫동안 나의 사랑하는 필기구였다.
길이 잘 들지 않은 펜촉에 잉크를 묻혀 글을 쓰다보면 천천히 쓸 수밖에 없고, 천천히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니 생각하는데 여유가 있다. 그리고 먹을 찍어서 쓰면 더 뻑뻑하긴 하지만 먹물이 마른 후 글씨가 광채가 나고 선명하기도 하고, 묵향이 좋아서 잉크대신 먹물도 많이 사용을 했다.
세상은 참 편리해졌다.
삭제버튼만 누르면 깨끗한 화면으로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는 모니터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전동타자기, 더 나아가 수동타자기를 그리워하며 한 글자의 오타로 다시 한 페이지를 작성하기 위한 수고도 감내했던 불편했던 시절들이 아스라하게 떠오르고, 쇠침으로 글을 써서 한 장 한 장 주보를 인쇄해내던 그 시절이 향수처럼 아늑하다.
문갑에 갇혀있었던 펜을 꺼내 사죄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글을 썼다.
역시 맛이 다르다. 가끔씩 이렇게 잊혀져 가는 옛 것을 사용하며 삶의 여행길을 조금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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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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