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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환
행동이 굼뜬 사람을 굼벵이에 비유하곤 합니다. 굼벵이 몸은 우윳빛인데 입 부분만 조금 붉으스름할 뿐입니다. 옛 초가 지붕 겨릅대와 썩은 이엉 사이에 둥지를 틀고 있던 굼벵이를 어제 밭 매면서 만났습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 벌레만 보고서도 고향집에 왔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지붕에 새로 옷을 입히다보면 꿈틀대다가 햇볕을 보면 부끄러워 얼른 꼬부랑 할머니가 되고 마는 곤충이지요. 마당으로 던져주면 수많은 닭이 몰려들었습니다. 먼저 먹으려고 쟁탈전을 벌이던 그 모습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 해 겨울 울긋불긋 토종닭들의 야단법석에 지켜보는 것만도 즐거웠습니다. 한 입 가득 차니 단번에 먹어 치우지 못하고 골목까지 달음질치고 뒤쫓아가는 닭의 행렬에 사람 지나다닐 틈도 없었습니다.
“굼벵이가 살 수 있는 곳이 사람 살기에 가장 좋다”는 말이 있었답니다. 그 만큼 오염이 덜 된 곳에서만 자라니 하는 말씀이셨을 겁니다. 단백질 덩어리 굼벵이를 푹 고아 약으로 썼던 일도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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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나무 뿌리에 눌러 붙어 수액을 빨아먹는 해충이 된다고 하나 굼벵이와의 재회는 고향집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일을 하다 말고 몽근 흙 위에 올려놓아 봤습니다. 낯설고 서먹서먹한 사이라 친해보려고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연신 꿈틀꿈틀. 기지개를 한번 늘어져라 켜더니 곧 숨을 자리 찾느라 다급해진 모양입니다.
쉬지 않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중간에 작은 발이 무수히 달린 쥐며느리 같은 돈 벌레도 지나갔습니다. 어찌나 빠른지 두 번을 붙잡아 보았습니다. 열 번을 찍을 무렵 굼벵이도 땅 속으로 쏙 기어 들어갔습니다. 발이 없어도 어찌나 잽싸던지요. 굼벵이와의 만남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아쉬웠지만 그냥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더군요. 1분도 안되어 사라지는 굼벵이를 보고 있노라니 생명체의 삶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죽일 생각이 없었으니 그냥 지켜보는 것이었지만 20여년만의 그 짧은 만남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작은 추억이 됩니다. 굼벵이, 결코 얕보아서는 안됩니다. 하찮은 미물이지만 나에겐 아련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줬고 평소 느리게 가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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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쉬웠지만 그냉 보내줬습니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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