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싶으세요?"

[새벽을 여는 사람들 25] 모래내 시장 백마 방앗간 방용주씨

등록 2003.07.01 09:00수정 2003.07.0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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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위치한 모래내 시장1길. 젊은 시절 기름집에서 일한 아련한 기억을 못 잊어 고소한 기름 냄새를 쫓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월남전과 중동 사막에서 갖은 고생으로 청춘을 보낸 방용주(57)씨는 아무 것도 없는 맨 손으로 가정과 가계를 이루고 한국 경제 성장의 든든한 근간이 되었노라 자랑스러워합니다.


"정말 죽도록 피 땀 흘려 일했어요.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결코 남 얘기가 아니에요. 그들의 모습엔 사람들이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우리네 과거사가 배어 있어요. 그래도 대한민국이 이렇게까지 살아 갈 수 있기까지는 7-80년대에 목숨 바쳐 치열히 일했던 산업 일꾼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서민들의 짙은 땀 냄새와 고단한 함성이 잠들어 있는 시간. 미처 잠이 덜깬 새벽 해를 뒤로 그는 아침 식사 시간인 9시까지 단 5분도 편히 앉아 있질 못합니다. 문을 열자마자 판매할 곡식을 진열하고 밤 새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등 그렇게 26년을 한결같이 달려 왔습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남다른 취미나 특별한 추억이 없어 아쉬움을 표하는 방씨는 그래도 큰 고비 없이 매출이 이어지는 분주한 일상에 고마워할 따름입니다.

장사란 운도 따라야 하지만 결국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그 승패가 좌우된다고 믿는 그는 '친절'을 장사 철학의 제일로 뽑습니다.

"만약 장사를 하려면 최소한 30곳 이상을 견학하며 배워야 해요. 남이 다 한다고 무조건 따라하면 일 년 안에 망해 버리죠. 장소, 친절, 시장 정보에 따라 장사의 승패가 결정되지만 아무리 정보가 빠르고 장소가 좋아도 결국 손님들에게 친절하지 못하면 금방 망해 버리고 말아요. 뭐니뭐니 해도 손님에게 친절한 것이 오래 남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죠."

김진석
180도를 넘나드는 기계에서 곱게 볶아진 중국산 깨소금이 쏟아집니다. 언제부턴가 국산보다 값싼 수입 곡물을 들여오게 된 방씨는 농민들을 생각하면 짠한 마음에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합니다.

"다른 물품을 수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국 농산물을 수입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정부도 우리 농민들을 좀 살려야 하지 않겠어요? 값싼 농수산물 수입으로 얻은 이익을 정부가 다시 농민들에게 돌려주면 안 될까요?


요즘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걸 보면 그저 안타깝고 갑갑해요. 누가 뭐래도 영양가 면에 있어서는 우리 농산물을 따라갈 수가 없죠. 정말 농민들도 같이 살아갈 무슨 해법이 없을까요?"

정말 '살아야 한다'는 본능 아래 그저 정신없이 뛰어 왔다고 말하는 방씨는 그가 이룬 현재의 모든 것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해 합니다. 더불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이 새록새록 달리 보인다며 '나이 듦'에 대한 예찬론을 펼칩니다.


"점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보여요. 속이 꽉 차지 않았던 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채워지는 기분이 참 좋네요.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는 무조건 돈을 많이 벌 생각으로 욕심만 부리다 그만큼 남에게 많이 떼이고 손해도 많이 봤죠.

젊었을 때는 정말 별것 아닌 일에 화내고 욕심 부리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다 부질없는 행동이었어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몰랐던 것들이 보이니 사는 게 더 재미있어져요."

김진석
방씨가 담배를 끊은 지 어느 덧 십오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 하루, 그가 담배를 하루 종일 입에서 뗄 수 없는 날이 있습니다. 몇 해 전 가슴속에 묻어 둔 아들의 제삿날이 돌아오면 그는 어김없이 담배에 의지해 그리움을 달랩니다.

"내 그간 살아오면서 딱 하나 유일하게 후회되는 게 있어요. 내가 좀더 많이 배웠더라면…. 내가 더 많이 공부해 우리 아들을 더 잘 가르쳤다면 우리 아들이 좀더 다르게 살지 않았을까요. 그게 참 맺힌 한이 되고 내 아들한테 너무 죄스러워요."

몇 해 전 그의 아들은 카드 빚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방씨는 "가슴 속에 자식을 묻어 둔 그 한은 겪어 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히고 맙니다.

"그리 빨리 갈 것을…. 이왕이면 좀더 좋은 일을 하다 갔으면 더 좋았으련만…. 다 내가 못 배워서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요. 내 아들뿐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나약한 것 같아요. 온실에서만 자라 비닐 하우스를 걷어내 버리면 뜨거운 햇빛을 못 견뎌 하죠.

직접 돈도 벌어 써보고 이런 저런 일들을 많이 해봐야 세상을 알 수 있을 텐데…. 진심으로 바라건대 젊은 친구들이 목표를 가지고 좀 강한 심지로 세상을 꿋꿋이 살아갔으면 해요. 그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을 꼭 가졌으면 해요."

김진석
칼칼한 고춧가루와 구수한 참기름 냄새가 모내래 시장 한 가득 퍼지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그 달콤한 향에 은근 슬쩍 침을 넘깁니다. 열무 김치, 간장, 계란 후라이, 된장, 고추장 등이 참기름과 빚어내는 그 오묘한 맛을 상상해 보니 입안이 후끈 달아오르는 군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끈뜨끈한 밥에 참기름 한 방울 뚝 떨어뜨려 개운한 김치 국물과 비벼 먹는 그 맛을 과연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김진석
"돈이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한 만큼 벌어야 비로소 그 값어치가 있는 거죠."

그는 단 돈 몇 푼을 더 벌기 위해 가짜 고춧가루를 판매했던 사람들을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며 연방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사람이 먹는 귀한 음식에 구두 광택제를 바른다는 발상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겁니까? 너무 무지막지하고 기가 막혀 난 도무지 상상도 못 하겠어요. 그건 간접 살인을 하는 것과 다름 아니죠. 그런 음지의 연결 고리들이 빨리 끊어져야 우리 후배들이 앞으로 잘 살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으면 계속 우리는 낙후된 사회를 벗어날 수 없을 거예요."

방씨에게도 가끔 불로 소득(?)의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동료들과 함께 한 돈내기나 고스톱을 통해, 혹은 아주 가끔 정신없는 손님이 돈을 더 주고 그냥 가 버릴 때 생기는 쌈짓돈을 모아 작은 저금통을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모아진 그 작은 불로 소득은 매달 꼬박 꼬박 장애우들을 위해 쓰여집니다.

김진석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싶으세요?

"하루에 한 가지씩 내가 남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버리면 돼요. 그러면 마음이 불안하지도 않아 밥도 맛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잖아요. 내가 지금껏 살아보니 모든 '화'와 '병'은 결국 욕심이 불러들여요. 욕심을 조금만 버리면 누구나 언제든 금방 행복해질 수 있어요!"

방씨에겐 특별한 소원이나 바람이랄 것이 없습니다. 지금처럼만 열심히 살고 그저 이에 맞는 정당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의 말대로 사람들이 요행을 바라지 않고 내 것이 아닌 것에 탐하지 않으며 노력한 만큼의 대가만을 바란다면 행복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바로 각자의 코끝에 걸려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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