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80년7월5일 <조선>

[헌책방 나들이 35] 헌책방에서 만난 낡은 신문 뭉치

등록 2003.07.02 12:07수정 2003.07.0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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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독립문에 있는 어느 헌책방에서 책을 보다가 신문 한 뭉치를 만납니다. 헌책방에는 드문드문 낡은 신문 뭉치가 들어오는데 보통 열대여섯 해나 스무 해 앞선 때 것입니다. 때로는 소중한 역사 자료인 신문이 있고,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낡은 신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날 만난 신문 맨 위에는 <조선일보> 1980년 7월 5일치가 올려져 있군요. 궁금한 마음에 신문 뭉치를 집어서 들여다봅니다. 1980년 <조선일보> 7월 5일치에는 어떤 사건 하나가 대문짝 만하게 실렸습니다.

金大中 內亂음모로 軍裁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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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7월 5일치 <조선일보> 1쪽 모습입니다. <조선일보>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참인지 거짓인지 밝히지 않고 `위'에서 내려주는 대로 기사를 실으며 신문 독자에게 거짓을 알린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배후로 김대중 옛 대통령을 꼽았던 일은 이제는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끌려가고 고문 당하고 사형 선고 받고 어렵사리 살아남아서 대통령 선거 삼수도 하다가 드디어 대통령이 되고 지난날 받은 억울한 선고를 씻고 복권한 김대중 옛 대통령. "김대중 내란음모로 군재회부" 기사를 큰 글씨로 뽑고 그 밑에는 작은제목으로는 이런 말을 뽑고 있습니다.

流血革命,政府전복-執權 기도
추종자 36명도 함께 送致 방침


계엄사령부는 김대중씨에게 "보안법, 반공법, 외환법, 포고령"을 적용한다고 하는군요. 여기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반국가단체 `한민통' 조직이라는 이름 아래 "북괴노선 지지- 의장 노릇 6년... 조총련자금 거액 받아"라는 말을 쓰고 있으며 "국민연합 주축, 복학생 450명 포섭, 학원소요 폭력화"라는 기사도 보입니다. 또한 "要職 미끼 12억 거둬... 전남대생에 5백만원 등 3억 뿌려..." 이렇게 기사로 나왔지만 이 기사가 참말이었을까요?

김대중씨는 스무 해가 넘은 뒤에 겨우 복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김대중씨에게 거짓 허물을 뒤집어씌운 정권 책임자나 언론사 사주와 기사를 쓴 기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기가 이런 거짓 허물을 뒤집어씌운 일을 두고 뉘우치거나 바로잡는(정정) 기사를 썼다거나 바로 잡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 계엄사령부는 7월 4일 김대중과 그의 추종분자 일당이 획책하여 온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수사를 일단락짓고, 김대중을 비롯한 37명을 우선 내란음모, 국가보안법, 반공법, 외환관리법 및 계엄포고령위반 등 혐의로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구속송치할 방침이다.

이와 동시에 이용희, 장을병, 송장달, 김대위, 이현배, 김승훈, 함세웅, 김동길, 이영희 등 수사과정에서 자수한 자, 전비를 뉘우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한 자, 그리고 범죄사실이 경미한 부화뇌동 자 등은 개과천선의 기회를 주어 국민적 화합에 기여케 하기위하여 사법조치를 유보하고 경고, 훈방 등의 조치를 취한 바 있다.

계엄사합동수사당국은 지난 5월 22일 김대중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이후 계속 김대중과 추종분자 일당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집중적으로 수사를 진행하여왔다. 그결과, 이른바 김대중과 추종분자 일당들이 `국민연합'을 주축, 전위세력으로 하여 방대한 사조직을 형성, 주로 복학생을 행동대원으로 내세워 대중폭동에 의해 학원소요 사태를 일으킴으로써 유혈혁명사태를 유발, 현정부를 폭력으로 전복, 타도한 후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권을 수립, 집권하려는 내란음모 행위의 전모가 이번 수사과정에서 밝혀지게 되었다.

이밖에도 김대중은 박국가단체인 재일 한민통을 발기, 조직, 구성하여 그 수뇌로 있으면서 복괴노선을 지지, 동조하는 등 반국가적 행위를 자행하고, 외국으로부터 불법반입한 외화를 불법소지, 사용하였으며 계엄포고령을 공공연히 의도적으로 위반한 혐의사실도 아울러 밝혀 내었는데 수사 결과 전모는 다음과 같다... <3쪽>


어떻습니까. 이런 기사를 쓴 <조선일보> 기자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1980년치 신문에서는 기자 이름을 밝히지 않았기에 누가 썼는지는 모릅니다. 계엄사령부는 포고문을 내놓으며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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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를 찬양한 <서울신문> 1972년 12월 27일치 기사입니다. 당시 <서울신문>은 비단 이 기사만이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독재자 찬양 기사를 실었던 신문입니다.

"김대중은 그동안 정부가 국민여망에 부응하여 새 시대를 향한 정치일정을 내외에 공약하고 이를 착실히 추진하고 있는 사실도 온갖 비방과 날조된 유언비어 유포로 국민을 현혹시켜 불신케 하는데 혈안이 되었을 뿐 아니라 특히 선량한 학생들을 선동하여 자신의 야욕달성에 악용하는 등 그가 내세운 `민주회복' 주장이 한낱 내란음모와 정권탈취의 목적을 위장, 은폐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였음이 낱낱이 밝혀진 것이다"


<조선일보> 7월 5일치는 계엄사령부 포고문 전문을 여러 지면에 나누어 모두 실어 주고 있습니다. 계엄사령부 포고문은 이렇게 끝맺습니다.

... 극소수의 이와 같은 반국가적 망동분자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미명아래 획책하는 이 엄청난 파괴적 행태와 선동에 국민 여러분과 특히 학생들은 다시한번 경각심을 일깨워 현혹되지 않으시기를 당부드리며, 아직도 도피중인 관련자들은 하루빨리 수사당국에 자수하여 전죄를 용서받고 내일을 되찾도록 할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역사는 언젠가 참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참이 드러나기까지는 참으로 힘들고 뼈아픈 징검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참을 숨기고 거짓을 내세우는 검은 무리가 있고, 참을 숨기고 거짓을 내세워서 잇속을 챙기는 시꺼먼 무리가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검은 무리가 큰힘을 내며 참보다 거짓으로 우리 눈과 귀를 멀게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지난날에 저질렀던 온갖 잘못, 지난날에 독재 정권에 빌붙어 우리 삶을 옥죄이는데 한몫 했던 그 수많은 못난 짓을 하나도 뉘우치지 않습니다.

나아가, 지난날 일을 숨기며 지난날에 자신들이 얼마나 탄압과 수난을 받았는지만 말하고 있는데. 탄압과 수난을 진짜로 받았는지 어떤지는 모를 일입니다. 탄압과 수난을 받은 그네들이 지금처럼 엄청난 족벌 체제를 쌓고 재벌과 다름없는 조직을 갖춘 모습을 보면 그렇지요.

<조선일보>가 1979년~1980년에 낸 신문 한 장을 찾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나아가 일제 강점기 때 낸 신문을 찾는 일 또한 어렵고요. 하지만 헌책방을 다니는 가운데 언젠가 하나둘 만나고 모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집구석엔가는, 또 어느 도서관엔가는 그 자료가 신문 뭉치로 묻혀 있을 테니까요. 그 자료를 통해 우리 삶과 역사와 사회를 비틀어 거짓이 참인 것처럼 꾸몄던 흔적을 찾아서 밝히고, 또한 알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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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8월 16일 <조선일보> 호외 한 장 - 낡은 신문 뭉치 사이에 이런 호외도 한 장 끼워져 있더군요. 헌책방에서 만나는 신문 뭉치 속에서 뜻밖이라 할 만한 소중한 역사 자료를 곧잘 만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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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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