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된다?

벽이 아니라 울타리를 쌓는다면

등록 2003.07.04 08:01수정 2003.07.04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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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수리


뭔지 담을 좋아하지 않는 게 있어,
그게 담 밑의 언 땅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담 위의 돌들을 밖으로 굴러내리게 하지요.
그래서 두 사람이 넉넉히 지나다닐 수 있는 틈을 만들거든요.
사냥꾼들이 하는 짓은 또 다른 문제예요.
그들이 담을 다 망가뜨리고 지나간 뒤
나는 그걸 수리한 일이 있지만
허나 그들은 토끼를 몰아
짖어대는 개들을 즐겁게 해주거든요.
내가 지금 말하는 틈은
누가 그랬든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봄에 수리하다 보면 그렇게 돼 있단 말예요.
나는 언덕너머 사는 이웃집에 알리고,
날을 받아 만나서 두 집 경계선을 걸으며
두 집 사이에 다시 담을 쌓아 올리죠.
우리는 우리 사이에 담을 유지해요.
담 양쪽에 떨어진 돌들을 서로가 주워 올려야 하구요.
어떤 돌은 모가 나서 넓적하고 어떤 건 거의 공 같아서
우리는 그것들을 올려놓으며 주문을 다 외어야 해요.
“우리가 돌아설 때까지 제발 떨어지지 말아다오!”
돌을 만지느라고 손이 거칠어집니다.
뭐 그저 양쪽에 한 사람씩 서서 하는
좀 색다른 야외 놀이지요. 좀더 갑니다.
그러면 담이 소용없는 곳이 나오지요.
저쪽은 전부 소나무고 이쪽은 사과나무예요.
내 사과나무가 경계선을 넘어가
떨어진 솔방울을 먹지는 않겠지요, 하고 그에게 말합니다.
그는 단지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되지요”라고 말할 뿐이예요.
봄은 나에게는 재난의 계절, 그래서 나는 혹시
그를 깨우쳐 줄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요.
“왜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들죠? 소를
기르는 곳에서나 그렇지 않나요? 여기는 소도 없는데요 뭐.
담을 쌓기 전에 알고 싶어요.
내가 도대체 담으로 무엇을 막으며
누구를 해롭게 하고 싶어 하느냐에 대해서 말이죠.
뭔가 담을 싫어하는 게 있어서
그게 담을 무너뜨리고 싶어합니다.”
나는 그에게 “요정이예요”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그게 꼭 요정인지도 알 수 없고, 그래서 나는
그가 스스로 알게 되기를 바라지요.
나는 그가 구석기시대의 야만인처럼
양쪽 손에 돌을 잔뜩 거머쥐고 옮기는 걸 봅니다.
내가 보기엔 그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데요,
숲이나 나무 그늘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그는 자기 아버지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고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되풀이 합니다.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되지요.”

(세계시인선 4 로버트 프로스트 시선 <불과 얼음>에서/ 번역 정현종 시인)


1. 울타리

담은 경계의 표시입니다. 온전히 경계의 표시일 때 담은 울타리(fence)가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의 집들도 이웃집과의 경계에는 담장을 두르고 있습니다. 그 담장은 높지 않으며 두껍지도 않습니다. 주로 나무로 만든 이 담장은 경계를 표시하는 울타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담장을 사이에 두고 이웃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광경이 아주 흔합니다. 이웃집 꼬마가 실수로 우리집 정원으로 넘긴 공을 담장 너머로 전해주면서 눈을 맞추기도 하지요.

경계를 따질 이유가 없는 도로 쪽으로 향해 있는 집의 정면으로는 아예 울타리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러 있는 경우에도 장식용으로 예쁘게 세워 놓은 나지막한 울타리여서 잘 가꾼 푸른 잔디밭과 정원이 길에서도 한눈에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a 뉴질랜드에는 앞쪽으로는 울타리가 없는 집들이 많다.

뉴질랜드에는 앞쪽으로는 울타리가 없는 집들이 많다. ⓒ 정철용

이처럼 울타리는 너와 나의 경계를 분명하게 해주지만 너와 나를 단절시키지는 않습니다. 울타리 너머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울타리 너머의 잔디밭과 정원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2. 벽

담이 경계의 표시에서 더 나아가 차단의 수단이 될 때, 담은 벽(wall)이 됩니다. 도둑의 침입과 낯선 이의 시선을 막기 위하여 더 높아지고 더 두꺼워질 때 담은 벽이 되는 것입니다.


키를 훌쩍 넘는 높은 콘크리트 벽과 그것도 모자라 날카로운 쇠창살과 깨진 유리조각들을 심어 놓은 무시무시한 벽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요. 그런 담장을 사이에 둔 이웃들은 서로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골목길에서 서로 마주쳐도 인사는커녕 미소 한 번 나누지 않습니다.

아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좌우로 그리고 상하로까지 이웃을 거느리고 있음에도 나는 한국에서 살 때 그 많은 이웃들과 따뜻한 인사 한번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경비원 아저씨에게는 매일 인사를 하면서도 말입니다. 아파트는 벽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입니다.

이처럼 철옹성처럼 높고 단단한 벽에는 소통이 없습니다. 너와 나는 벽을 사이에 두고 단절되고 벽 안쪽의 공간에서 서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냅니다.

3. 벽을 울타리로

위 시에서 프로스트의 이웃집 남자는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되지요(Good fences make good neighbours)”라고 말하고 있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가 쌓는 것은 울타리(fence)가 아니라 벽(wall)입니다. 프로스트가 위 시의 제목을 ‘담장 수리(Mending Wall)’라고 이름 붙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프로스트가 원했던 것은 벽이 아니라 울타리였을 겁니다. 그래서 울타리를 쌓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벽을 쌓고 있는 옆 집 사내가 ‘구석기 시대의 야만인처럼’ 보이고 그의 움직임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진 것이지요.

그의 마음은 “뭔가 담을 싫어하는 게 있어서 그게 담을 무너뜨리고 싶어합니다”라고 그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담을 벽에서 울타리로 바꾸기 위해서는 이웃집 남자가 스스로 알게 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는 그만둡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저만 알던 거인>이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거인처럼 스스로 깨닫지 않고서는 높은 벽을 부술 수 없기 때문이지요.

a 울타리 너머로는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다.

울타리 너머로는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다. ⓒ 정철용

사실 가장 깨기 어려운 것은 우리 마음 속에 높이 솟아있는 불신과 오만과 아집의 벽일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의 그 높은 벽을 깨고 그 자리에, 자신은 지키면서도 남들과 소통하고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낮은 울타리를 세우는 일의 소중함을 프로스트의 시를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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