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경계 쇠말뚝만 박아놓은 인도와 차도의 구분-그것도 인도 가운데 전봇대가 막고 있다.최성수
출근할 때 30분, 퇴근 할 때 30분, 그러니 하루에 모두 한 시간을 걸어 다니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힘들고, 너무 먼 거리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늘 걷다 보니 점점 다리에 힘도 붙고 걷는 재미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난 오월, 비가 오던 날이었습니다. 막 학교 교문을 나서서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아가씨가 다가와 물었습니다.
“여기서 성북 초등학교 앞이 먼가요? 그 학교 근처 녹색연합을 찾아가는 길인데.”
성북 초등학교라면 이곳과 반대 방향, 그러니까 우리 집 근처입니다.
“길을 잘못 찾으셨네요. 이쪽이 아닌데.”
제 대답에 아가씨는 난감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마침 그쪽으로 가는 길이니 저를 따라 오실래요?”
우리 학교 근처에 다른 초등학교가 있는데, 아가씨는 그 초등학교를 성북 초등학교로 잘못 알고 찾아온 것인가 봅니다.
내 제안에 아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라왔습니다. 저는 대학가 앞을 지나고, 시장통을 거쳐 대로를 건너고, 다시 성북동길을 따라 집 근처까지 왔습니다. 그동안 아가씨는 줄곧 제 뒤를 한 발짝 정도 떨어져 따라왔습니다.
제가 우리 집 근처에 와서 아가씨가 찾는 곳을 알려 주자, 그제야 아가씨는 환히 웃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늘 이렇게 먼 길을 걸어 다니세요?”
“운동도 되고 좋지요, 뭐.”
제 대답에 아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며 제가 가르쳐준 방향을 따라 갔습니다. 아마도 아가씨는 30분을 걸어야 하는 그 길이 꽤 멀게 느껴졌나 봅니다. 제가 처음 걸어 다닐 때 느꼈던 것처럼 말입니다.
석 달 남짓 걸어 다니다 보니, 걷는 즐거움과 걷는 괴로움에 대한 이런 저런 단상들이 떠오릅니다.
우선 걷는 즐거움. 차를 몰고 다닐 때는 과정이란 없었습니다. 길의 출발지와 목적지만이 존재할 뿐, 그 길의 중간에 있는 어떤 것도 내게는 의미가 없었던 것이지요.
집에서 출발하면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는 오직 차 안에서 운전에만 집중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 길에 무엇이 있든, 그 길의 어제와 오늘이 어떻게 다른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목적만이 있고 과정이 없는 것이 차를 운전하고 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