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

내가 겪은 체벌 셋... 대화로 교감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등록 2003.07.06 13:10수정 2003.07.0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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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방학 중에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에서는 '제2회 참교육실천보고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사회과 교육 분과의 '사회참여교육'에 대한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낯선 교정에서 발표 장소를 찾고 있던 중 그야말로 낯선 차량 한 대를 발견하였다. 승합차인데 차체에 온통 아이들의 인권에 관한 구호와 신문 기사 등으로 도배를 한 것이다. 그 중에서 눈에 띈 구호가 있었다.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

이때부터 내가슴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일정 내내 이 말이 가슴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럼 너는? 너는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 것인가?" 이미 이 말이 화두가 되어 나의 뇌리에 꽂히고 있었다.

내가 겪은 체벌 셋

그 첫째는 학창시절에 겪은 것이다. 나는 학년당 3학급인 면단위의 조그만 중학교를 다녔다. 때는 중3 마지막 시험 때의 일이다. 시험이 진행 중이었다. 감독 선생님은 음악선생님, 유난히 키도 크고 몸집도 우람하신 선생님이었다.

당시엔 교단이란 것이 있었다. 나중엔 교사와 학생이 평등해야 한다는 뜻에서 없어졌지만. 글쎄 이 선생님께서 이 교단에서 오락가락하시면서 무슨 말씀인지를 계속 하시는 것이다. 게다가 낡은 교단은 그 우람한 선생님이 오락가락하실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도저히 시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 시험에 집중할 수가 없으니 조금 조용히 해주실 수 없나요?" 아마 이런 요구를 했던 것 같다. 돌연 선생님은 나를 불러 내더니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좌우뺨을 후려갈기는 것이다. 정신없이 두들겨 맞고, 어떻게 시험을 봤는지조차 기억이 제대로 없다. 그 뒤로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음악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되고 말았다.


둘째는 내가 선생이 되어서 아이를 때린 사건이다. 1981년 나는 28살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로 읍단위의 어느 사립고등학교에 첫 부임을 하였다. 담임은 1학년 3반 남학생반이다. 추석이 막 지난 어느 날 K군이 가출을 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 지역의 지리에 아직 어두운 나는 학급 임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터미날에서 K군을 붙잡았다. 집에 연락하여 아버지를 학교에 오시게 하여 함께 지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아버지에게 마구 대드는 것이 아닌가? 이거 그냥 둬서는 안되겠다 싶어 대걸레 자루로 마구 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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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가출은 면했지만 1년 내내 내 속을 썩였다. 2년 후 다시 녀석의 담임을 맡았다. 역시나 변함이 없었다. 졸업식 날, 교실에서 마지막 훈화를 하는 데 욕설을 하면서 '이젠 졸업장을 탔으니, *도 학교도 선생도 필요없어!'하면서 교실 출입문 유리창을 주먹으로 갈겨 부숴놓고는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체벌이 이 아이를 선도하지 못했음이 명백하다.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 힘으로 아이를 교육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내 교육인생에서 실패작인 셈이다. 이 아이의 졸업장과 앨범은 지금도 내가 보관 중이지만 아직 소식을 모른다.

셋째는 내 아들이 겪은 체벌 사건이다. 녀석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 고2이니까 5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O군에 있는 어느 도서에서 근무 중이었다. 좀처럼 일과 중에는 학교로 전화를 하지 않은 집사람에게서 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아들이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는 것이다. 공부도 제법하고 이제까지 말썽 한번 부리지 않던 녀석이라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싶어 자세한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녀석이 컴퓨터를 꽤 다룰 줄 알아서 담임 선생님의 일을 거의 맡아서 해드리는 모양이다. 심지어 생활기록부의 기재까지도 해 드리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50대 중반의 여선생님인 옆반 선생님이 자기 반 생활기록부도 입력해 달라고 하신 모양이다.

다음 날은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그래서 녀석이 수학여행 갔다 와서 해드린다고 하고 집으로 그냥 와버린 것. 이것이 그 여 선생님의 화를 돋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선생님은 씨름부 아이들을 시켜서 아들녀석을 데려다가 마구 패버린 것이다.

아들이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 그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여 사실을 확인 후, 아이를 불러서 사과를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처음에는 완강히 부인하던 그 선생님. 그렇다면 부득히 행정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고 하자 인정하고는 내 제의를 받아들였다.

아이들이 비록 어리다고는 하나, 그 아이들 나름의 정의관이 있고, 옳고그름을 판단한다. 그럼, 나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

다시 화두를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로 돌아가자. 솔직히 지금도 나는 체벌을 가하고 있다. 비록 몽둥이에서 회초리로 바뀌고, 감정을 자제한 교육적 설명을 하고 상대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미명하에 말이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보면 어떤 경우이든 맞는 사람이 기분이 좋을 리 없고 때리는 사람이 때려서 만족하는 경우는 없다. 서로 인격적 교감이 있으면 체벌보다는 대화가 훨씬 더 효과가 있다. 결국 교사와 아이가 교감을 충분히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군사독재와 능률을 우선시하는 사회에서 살다보니 어느 사이엔가 '빨리빨리'라는 강박감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매는 빠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아이들이 인격적으로 승복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서로 교감을 얻는 대화는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이것에 익숙하지 않다.

지난 6월 23-25일 사이에 통일교육원에서 통일연수를 받고 학교에 돌아오자, 아이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선생니임~ 보고 싶었어요~"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매를 가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회초리조차 이제는 버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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