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한나라 탈당 5인방'의 비밀당원?

[取중眞담] "당신들이 부채질했으니 책임져!"

등록 2003.07.08 23:41수정 2003.07.0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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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영춘 안영근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한나라당 의원이 7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탈당선언을 하고 있다.

김영춘 안영근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한나라당 의원이 7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탈당선언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 7일 "낭떠러지에서 한 발 내딛는 심정"으로 한나라당 탈당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이부영 의원은 지구당(강동구갑)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지구당위원장 직인과 지구당등록증을 챙겨들었다. 그리고는 사무실 앞에 걸려 있던 '한나라당 강동갑 지구당' 간판도 뗐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이 모든 것을 한나라당 서울시지부에 반납했다.

이날 이우재·김부겸·김영춘·안영근 의원 등 다른 탈당 의원들도 지구당 간판을 떼어냈다. 그러나 이들은 떼어낸 간판을 한쪽에 치워놓은 반면 이부영 의원은 서울시지부에 직접 반납까지 한 것.

이를 두고 안영근 의원이 "정말 그 무거운 간판을 가져다 반납하셨어요?"라고 의아해하자, 이 의원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당연한 일 아닌가. 게다가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라고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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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 선언이 있은 뒤 하룻만에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다시 만난 이들 '탈당 5인방'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이부영 의원은 연신 "홀가분하다"는 감탄사를 쏟아냈고, 안영근 의원은 "속이 시원하다, 이제 내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들은 이날 기자들과 첫 오찬 자리를 마련했다. 이들은 1000만원씩 갹출해 마련한 작은 사무실에 별도의 기자실을 마련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향후 자신들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언론을 등한시할 수는 없는 일. 따라서 기자들과의 연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이들에게 사활이 걸린 일이다.

이우재 의원은 "지난 몇 주간, 자고 일어나면 '어떻게 기자들의 전화를 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느라고 힘들었다"며 그동안 탈당 시기를 두고 기자들과 벌였던 '숨바꼭질'을 떠올렸다. 이젠 이들이 기자들을 찾아 나서야 하고, 기자들을 불러모아야 한다.

이 의원은 "(탈당한) 사람도 얼마 안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라며 "우리가 하려는 일은 정치인 몇 사람만의 과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위한 것이니 많이 도와달라"고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지난 몇 주간 숨막히는 '숨바꼭질'을 해야 했던 사람은 이 의원뿐만이 아니다. 다른 의원들이 기자들의 전화와 기습 방문을 피해 다닐 때 안영근 의원은 기자가 아닌 자신의 지역구(인천 남을) 핵심 당직자들을 피해 '도망 아닌 도망'을 다녀야 했다.

"탈당을 결행하기까지 많이 고민하고, 때론 흔들렸다. 특히 지구당 핵심 당직자 11명이 찾아와 '당에 남아 열심히 해 보자. 그럼 우리들이 더 열심히 도와주겠다'며 나를 설득했다. 그들이 집에 다시 찾아올까봐 집에도 못 들어가고 도망다녔다. 그때 솔직히 흔들렸다. '이러다가 나만 (탈당 그룹에서) 제외되는 것 아닌가'하는 위기감도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전당대회 하는 날 기자들 앞에 가서 '나 혼자만이라도 탈당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아직 결심이 서지 않은 상황에서, 안 의원은 흔들리는 마음을 스스로 다잡기 위해 기자들에게 미리 '탈당 서약'을 한 셈이다. 안 의원만큼 다른 의원들도 흔들린 것이 사실이다. '개혁 철새'라는 비난이 억울할 만큼 "먹을 것도 없는 추운 곳"으로 나서기 위한 이들의 결단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가장 늦게 탈당 의사를 밝힌 김영춘 의원, 그래서 가장 많이 흔들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김 의원은, 사실 "일찌감치 (탈당을) 결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바람을 넣고 다닌 사람이다."(안영근 의원)

김부겸·김영춘·안영근 의원은 이들 탈당 5인방 중에서도 소장파. 이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들만큼은 꼭 탈당하자"고 결의까지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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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가장 많이 듣던 말은 '저질러', '서둘러'"

이부영 의원은 "앞으로 나갈 길을 생각하면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지만, 우리가 이뤄야 할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주 상쾌하다"며 "우리가 엄청난 혜택을 바라고 일을 결행한 것이 아니라 '사즉생'의 마음으로, 그래야 살길이 생긴다는 마음으로 결행했기 때문에 여기 있는 5명은 홀가분하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이 의원은 이어 기자들을 향해 '공동 책임론'을 내세우며 건배를 제의했다.

"사실 여러분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들의 탈당을) 부채질했다. (하하하) 책임을 지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하하하) 공동의 책임을 질 것이라고 믿는다.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다. 이것이 국민의 뜻이다.

내년 총선도 지금과 같은 지역정당 구도로 간다면 우리들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라가 제대로 안되는데, 우리라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국민을 보고, 국민 속으로 달려가겠다. 희망의 씨앗을 살려내고자 출발했으니 도와달라. 여러분들은 우리들의 '비밀당원'이다.(하하하)"

이 의원은 "민주당 신당파들이 우리의 탈당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라며 "'아직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 내부에서 논의가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해, 개혁신당의 가능성을 낙관했다.

이 의원은 그러나 "민주당 신당파와 접촉할 계획은 없다"며 "그들 스스로 하지 않으면 개혁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지금까지 우리가 옆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저질러' 아니면 '서둘러'였다"고 덧붙였다. 이제 '저질러', '서둘러'라는 말을 민주당 신당파가 고스란히 떠 안게 됐다는 것이다.

"하루를 살아도 마음 편히 살아야…"

한나라당은 이들 '탈당 5인방'이 결행하던 날, 최근 자민련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던 송광호 의원을 입당시켰다. 송 의원의 한나라당행은 예고된 것이었지만 당내 개혁파가 탈당하는 날을 입당일로 잡은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안영근 의원도 "결국 젊은 의원들을 앞에 내세웠다고는 하지만 한나라당의 모든 전략적 판단은 수구적인 지도부가 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최병렬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들의 탈당 선언을 두고 "아름답고 성숙한 이별"이라고 평가했고, 한나라당 내 소장파들은 "동지들에게 무한한 영광이 있기를" 기원했다. 이를 두고 이부영 의원은 이날 "정당 이별사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김영춘 의원도 "탈당한 사람보고 왜 그렇게 '축하한다'는 사람이 많아?"라며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안 의원의 탈당을 두고 가장 기뻐한 사람은 안 의원의 부인이라고 한다. 과거 시민운동을 함께 했던 안 의원의 부인은 탈당 소식을 듣고 "이제 (운동하던) 후배들과 마음놓고 술도 먹고, 노래방도 가게 됐다, 하루를 살아도 즐겁게 마음 편히 살아야 한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탈당 5인방'은 이날 식사를 마치고 나자 출입구 앞에 일렬로 서서 식당을 나서는 기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가까이서 보니 환하게 웃는 얼굴 뒤편으로 비장함도 느껴진다. 이들은 기자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나자, "새로 마련한 사무실을 처음 둘러보러 간다"며 흥분된 얼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몰려 나갔다. 이제 '탈당 5인방'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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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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