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수교 앞, 천인국 노랗게 이열 종대로 피어 옛 기억 아슴푸레하다최성수
주말, 고향집을 찾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맥수교'를 건너게 된다. 고향집이 있는 보리소골을 들어가기 위해서 건너야 하는 다리가 바로 맥수교이기 때문이다.
맥수교. 보리 맥(麥)에 이삭 수(穗), 보리 이삭 다리라는 말이다. 보리 이삭 다리라니, 시멘트로 만든 다리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름이다. 하지만 다리 건너의 골짜기가 보리소골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그 이름의 뜻이 보리소골로 들어가는 다리라는 말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보리소골이 바로 보리 이삭이 패는 골짜기라는 뜻이니, 그곳으로 가는 다리 이름이 맥수교인 것은 당연지사다. 아니, 한자말보다는 '보리 이삭 다리'가 더 친근감이 가기까지 한다.
다리는 다만 하나의 경계이고 개울을 건너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만, 내게는 심정적으로 다른 상징물이기도 하다. 맥수교 이전의 땅과 맥수교를 건넌 뒤의 땅은 전혀 다른 곳으로 느껴진다. 맥수교를 건너면서 나는 비로소, '아, 정말 고향에 돌아왔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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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유학(?)을 떠나던 초등학교 무렵만 해도, 이 개울에는 다리가 없었다. 아니, 있기는 있었다. 기다란 소나무를 두어 그루 베어다 엮어 만든 나무 다리가 운치 있게 놓여 있었다.
그 다리는 여름 한철 홍수로 떠내려가기 일쑤였는데, 한창 농사로 바쁜 시절이라 어른들은 다리를 다시 놓을 틈을 마련할 수 없었는지, 여름을 지나면서부터는 다리 없는 개울이 되고 말았다.
다시 다리를 놓는 것은 추석 무렵이었는데, 그렇게 다시 놓은 다리도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찾아오는 태풍에 밀려 가뭇없이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겨우내 나무 다리를 대신하는 징검다리가 놓이곤 했다.
일찍 추위가 찾아오는 강원도 내륙에서, 그 추위를 견뎌내며 새로 나무를 해다 다리를 놓을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또 우기도 아니어서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날 일도 없으니 징검다리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