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정대철 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로부터 6개월 가량 지난 7월 11일 정치권에는 '정치자금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대선자금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굿모닝시티로부터 4억2000만원을 받았다고 시인한 정대철 민주당 대표가 "개인적으로 10억원을 당에 토스해줬다" "대선 때 기업체로부터 200억원을 모았다"고 발언하면서부터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정 대표의 발언 이후 지난 대선 때 총무본부장을 맡았던 이상수 사무총장이 "200억원이 아니라 돼지저금통을 포함해 140억원쯤"이라며 "정 대표가 말한 200억원은 돼지저금통 70억원과 이정일 의원한테 빌린 50억원이 포함된 것"이라고 반박하자, 정 대표는 "이 총장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번복했다.
이렇듯 하루 사이에 정 대표로부터 시작된 민주당의 '굿모닝 게이트'는 대선자금 문제로 금세 옮겨갔다. 언론의 관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정 대표와 이 총장 간에는 대선자금 규모를 둘러싼 '숫자맞추기 퍼즐게임'이 진행됐다. 이 퍼즐게임의 잣대는 지난 1월 민주당이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대선자금 수입액 283억원. 역산하면 돼지저금통과 기업 후원금 등의 모금 총액이 160억원이어야 퍼즐 맞추기에 성공하는 셈이다.
정 대표만큼이나 이 총장의 대선자금 셈법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 3월 초에는 "대선 때 100대 기업으로부터 120억원을 모았다"고 했다가 문제가 되자, 여기에는 돼지저금통 80억원과 지역 후원금 6억원이 포함돼 있다며 기업 후원금은 34억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지난 12일에는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따져보니까 기업체 후원금과 특별당비가 100억원대이고 돼지저금통과 온라인 송금을 합친 것이 50억원쯤 된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지난 대선 때부터 핵심 요직에 있었던 민주당 지도부들이 갑자기 대선자금 규모와 관련해서는 기억상실증에 가까울 정도로 IQ가 뚝 떨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이미 맞춰진 숫자가 있는 상태에서 이를 뒤집는 폭탄 발언들이 쏟아지자, 이를 다시금 끼워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정치자금의 분식회계가 그대로 드러나는 일련의 과정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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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대선자금 파문' 보고 받고 묵묵부답
'굿모닝 게이트'로 충격에 빠진 정 대표가 대선자금에 대해 폭탄발언을 한 것을 놓고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하다. 다만 이전에도 정치자금 수수 건으로 치명타를 입은 뒤 기적처럼 정치적 재기에 성공한 정 대표로서는 이번 '굿모닝 게이트'로 또다시 사법처리 대상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패닉' 상태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청와대에서는 부인하지도 시인하지도 않고 있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노 대통령이 방중외교를 마치고 돌아온 지난 10일 밤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과 정 대표가 30분 가량 독대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별다른 해결 방법을 얻지 못한 정 대표가 "개인 비리도 아닌데 대표 하나 보호해주지 못하느냐"며 서운함을 토로했다는 이야기도 떠돈다. 일각에서는 11일 정 대표가 대선자금에 대해 돌출 발언한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정 대표의 대선자금 발언 직후 청와대의 반응은 냉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직후 문희상 비서실장이 "만약 나였다면 정계은퇴를 했을 것"이라고 발언한 것도 이례적이다. 개인적인 발언 형식을 취했긴 했지만,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이 여당 대표의 진퇴를 언급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문 실장의 발언을, 정치자금 수수에 이어 대선자금 발언으로 이어진 정 대표의 '의도된 행보'에 대한 실질적인 '경고'로 해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12일 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자금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의 여러 곳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지만, 듣기만 했을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며 "그러나 사안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숙고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 스스로 정치자금과 관련해서는 떳떳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대선 때 친노·반노의 갈등이 심해 당의 재정권과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노 대통령에게는 이번 대선자금 파문에서 자유롭다는 걸 거꾸로 증명해주기도 한다. 지난 4월 국민경선 때 후보 등록 전날까지 기탁금 2억50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측근들의 신용카드가 무더기로 펑크가 났다는 후문이다. 또한 지난해 11월 당시 한화갑 대표로부터 "노 후보가 당에 1원짜리 하나 가져온 일이 없다"는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번 대선자금 파문이라는 예기치 않은 위기국면을 분리 대처해 극복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굿모닝 게이트'로 불거진 검찰의 정치자금 조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는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자금법 개정 등 제도적인 보완을 통한 재발 방지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 방향은 비현실적인 부분을 현실화하는 대신, 투명성과 처벌 기준을 강화하는 쪽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번 대선자금 파문은, 노 대통령의 말처럼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자금의 베일이 한꺼풀 벗겨지면서 나타난 아노미와 패닉 현상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는 한나라당도 예외일 수 없다. 11일 검찰에 소환된 굿모닝시티 자금관리인 윤아무개씨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도 수십억원을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대선자금 괴담'은 여야를 넘나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자금과 관련해 가장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고 여기는 노 대통령이 당선 직후 기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밝혔듯이 "내가 먼저 고백하고 이 문제를 풀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실천할 것인지 주목된다. 그러나 전제를 달았듯이 "기회가 된다면"이 지금 시점인지는 대통령 스스로의 판단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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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자금에 관해 정면돌파 필요 기회되면 내가 먼저 고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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