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는 삶의 풍경들을 비추는 물거울

로제 그르니에 소설 <물거울>

등록 2003.07.14 14:20수정 2003.07.1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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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로제 그르니에의 중단편선집인 <물거울>에는 정작 '물거울'이라는 제명의 작품은 없다. 역자 후기에 의하면 <물거울>은 단편 '카리아티드'가 실린 소설집의 표제를 따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1975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단편소설 대상을 수상했다는 원래의 그 단편소설집에는 '물거울'이라는 제명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을까? 아니면 '물거울'은 로제 그르니에의 단편소설집의 표제로만 쓰였을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작품일까?


이 책에 실린 5편의 소설 말고는 로제 그르니에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진실이 어느 쪽에 있든지 간에, 목차에서 찾을 수 없는 이름을 표제로 내세웠을 때는(그렇게 한 사람이 원작자이든 번역자이든 간에)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인데,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책을 펼치고 소설을 읽어나가는 방법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로제 그르니에라는 귀에 익은 작가의 성(姓)(혹시 쟝 그르니에의 아들이 아닐까 하고 기대했었다)과 <물거울>이라는 제명이 주는 묘한 울림에 이끌려 이 책을 구입하게 된 나는 두 가지 기대가 모두 보기 좋게 빗나간 셈이었지만, 그의 소설들을 읽어나가는 동안 그 짧은 실망감은 이내 기쁨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또 한 명의 그르니에를 발견했다는 의미에서의 기쁨이지 그의 소설들이 그리고 있는 세계가 던져주는 기쁨은 아니었다. 사실 그의 소설들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며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다.

그렇지만 김화영 교수의 말대로, "슬픈 이야기도 그의 목소리를 빌리면 어둡고 답답한 것이 아니라 바람이 조금씩 통하는 서늘한 이야기"가 되고, "그 속에는 무엇인가 있어서 우리들로 하여금 아주 절망하지 못하게 한다."

로제 그르니에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이 묘한 매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세계관)과 그것을 글로 드러내는 방식(문체)의 남다름에서 연유한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남의 글을 대신 써주는 만년 대필작가('존재하는가?'의 나딘), 어쩌다 배우가 되어 순회극단의 하찮은 배역을 맡고 있는 한물간 여배우('그 시절 사람'의 플로랑스), 천박한 웃음에 의지하여 이 남자 저 남자의 품에 자신의 삶을 의탁하여 살아가는 요령 좋은 여인('약간 시든 금발의 여인'의 미셸), 또는 지나치게 민감한 감수성으로 정신병원 신세를 지는 신경쇠약증 환자('카리아티드'의 모니크) 등 하나같이 실패한 인생들이다.

이들은 모두 삶으로부터 상처받은 자들이다. 삶은 나딘에게 아이러니이며, 플로랑스에게는 환멸이며, 미셸에게는 곡예이며, 모니크에게는 절망이다.


로제 그르니에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상처이기도 한 삶의 다양한 표정 밑에는 삶의 맨 얼굴이 숨어있는데, 이 맨 얼굴이야말로 그들의 진정한 얼굴이다. 우리는 모니크가 어느 온천도시의 카페 테라스에서 한떼의 노인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에 극적으로 그 삶의 맨얼굴과 조우한다. 그것은 "아무 표정도 없이 텅 빈 얼굴"이다.

이 공포스러운 삶의 맨얼굴을 보통 사람들은 모르고 살아간다. 그들은 삶의 맨얼굴을 바라보기를 두려워하여 커튼을 치고 지내기 때문이다. 아니, 자신의 눈 앞에 커튼이 처져있다는 사실조차도 여간해서는 감지하고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면 로제 그르니에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떤가? 그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삶의 그 맨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커튼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로제 그르니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커튼 없이 보여지는 삶의 맨얼굴에서 주인공들이 발견하게 되는 그 텅 빈 삶의 덧없음이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풍경들을 단숨에 우리 앞에 펼쳐 놓치는 않는다. 그는 소묘하듯이 단순하게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그 풍경들을 우리 앞에 드러내 보인다. 그의 글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드러나는 그 풍경의 세부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조금씩 우리 앞에 드러나는 풍경은 그의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완성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 전모를 드러낸다.

그리고 온전히 드러난 그 풍경 속에서 세부의 의미는 때로는 우리가 부여했던 의미와는 정반대의 의미로 또 때로는 보다 넓고 깊은 의미로 확장되기도 하면서 새롭게 거듭난다.

마치 잔물결이 모두 멈추고 나서야 온전한 모습을 비쳐주는 물거울처럼. 그리고 아무리 작고 가벼운 것이라 하더라도 수면과 만나면 둥글게 멀리 퍼져나가는 파문을 만들어내는 물거울처럼.

로제 그르니에의 소설들이 읽는 동안보다 오히려 읽고난 후에 오래도록 더 큰 울림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로제 그르니에의 이 아름다운 소설집에 <물거울>이라는 제명이 붙여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

로제 그르니에는 누구인가

프랑스의 작가인 로제 그르니에(Roger Grenier)는 1919년 프랑스의 캉에서 출생하여, 청소년 시절은 스페인 국경이 지척인 서남쪽 도시 포에서 보냈다. 그래서 그의 많은 작품들은 피레네 산맥에 면한 이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지도로 박사논문을 준비했고, 알베르 까뮈가 주도했던 <콩바>지와 <프랑스 수아>지를 거쳐 20년 넘게 신문기자로 활동했다.

카뮈는 자신이 책임 편집을 맡은 갈리마르 출판사의 희망 총서에 '전도 유망한 젊은 작가' 그르니에의 첫 작품 <피고의 역할>(1949, 에세이)을 포함시켜 문학적 재능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거의 모든 작품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했으며, 소설로는 페미나 상, 카트르 쥐리 상, 아카데미 프랑세즈 단편소설 대상, 에세이로는 알베르 카뮈 상, 11월 상, 조제프 델테유 상, 3천만 애독자 상을 수상하는 등 탁월한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1985년에는 그의 전 작품에 대하여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대상이 수여되었다.

대표작으로 <시네 로망>(1972, 페미나 상), <겨울 궁전>(1965) 등 10여권의 장편이 있고, <물거울>(1975, 아카데미 프랑세즈 단편소설 대상), <편집실>(1977), <그 시절 사람>(1997), <숙직 근무자>(2000) 등 9권의 단편소설집과 다수의 에세이가 있다. / 정철용

물거울

로제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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