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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진칼럼] 아직도 '언론탄압' 운운 유행가나 틀 건가?

등록 2003.07.16 23:50수정 2003.07.2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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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로네거리 동아일보 사옥. ⓒ 오마이뉴스 권우성

"행간을 읽는다"

이 말은 <동아일보> 때문에 생긴 말이다. 믿을 지 모르지만 한 때 <동아일보>의 시장점유율이 무려 60%를 넘나들 때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 조중동 세 신문을 모두 합해야 70%를 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당시 <동아일보>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그저 그런 반공신문에 불과했고, <중앙일보>는 삼성 신문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탓에 <동아일보>의 야당지 행세가 상대적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동아>가 지면을 내세워 무슨 반독재 투쟁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 대체로 박정희 유신정권의 지침에 충실히 따랐지만, 사회면이나 정치면 한쪽 구석에 야당과 학생운동세력의 동향을 무슨 암호처럼 은어로 전하곤 했다.

신문의 행간을 읽는다는 말은 이래서 탄생한 것이다. 정말 중요한 뉴스는 커다란 활자로 치장된 1면의 기사가 아니라, 오히려 보일듯 말듯 구석의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1단 기사를 읽어야 알 수 있으며, 칼럼이나 사설 역시 두루뭉실하게 처리된 문장의 속뜻을 헤아려야 그 진의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배달소년들도 독자들과 신문 사이의 이런 묵계를 잘 알고 있어 기사에 일부러 빨간색 밑줄을 쳐 정말 읽어야 할 기사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안내하고는 했다.

이제 다 옛날 이야기다.


정권이 정통성을 지니지 못한 시절에 신문이 독자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선이 독재정권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었다면, 공정선거로 선출된 민주정부를 갖게 된 지금 신문의 소임은 언론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부패와 비리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감시견의 역할,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간파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미리 알리는 예언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세상의 변화에는 아랑곳 없이, <동아일보>나 이 신문의 전성기에 가장 열렬한 독자들이었던 지금의 50~60대나, 여전히 정권비판이 신문 최고의 의무인 양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벌써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도 3번이 넘는 데 말이다.


세금을 떼어먹고도 무슨 용감한 의적질을 한 마냥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는 기성세대의 행태와도 닮았다. 모두 국가권력의 정통성이 큰 불신을 받던 독재정권 시절에 형성된 관성이다.

지금 한국의 신문들이 정말 두려워하고 눈치를 보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바로 신문사를 먹여 살려주는 가장 큰 돈줄, 즉 광고주들이다. 오히려 정치권력은 지면이 심심해 질 때마다 적당히 씹혀주어 신문의 판매부수를 올려주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동아일보>를 비롯한 거대신문은 틈만 나면 언필칭 '정권이 신문을 탄압한다'고 악을 쓰고 있다. 아마 자기들 스스로 이 말을 정말 믿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불의한 정권에 항거하는 멋진 신문'이라는, 유신시대의 기억에 침잠되어 있는 50~60대 독자들을 겨냥한 '흘러간 주문'을 틀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신문사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존재는 광고주다. 이들이 나날이 독자가 줄고 있는 신문의 광고효과에 회의를 품고 인터넷이나 TV매체로 광고의 무게중심을 옮기려는 순간, 이들 보수신문은 아마 사색이 되어 일제히 대기업 찬양가를 불러댈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신문은 여전히 정권의 언론탄압이라는 지겨운 유행가를 고장난 LP판처럼 계속해서 틀어대고 있다. 그 중 압권은 DJ정권의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 이들 신문이 보인 거의 광적인 보도행태였다. 이들 신문의 당시 항변을 곧이곧대로 믿어준다 해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그 기백 그 혈기가 있었다면 유신정권이나 군사정권 역시 매섭게 비판하지 못하고 왜 비겁하게 사회면 1면에 알듯 말듯한 기사를 써 독자들로 하여금 행간을 헤아리느라 진땀을 흘리게 했단 말인가? 아마도 세월이 흐르면서 신문사의 간덩이가 부어 올랐든지 아니면 정권이 우습게 보였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정권이 언론탄압한다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투정은 그만 좀 들었으면 한다.

그 시절 그 <동아일보>가 죽지도 않고 지금까지도 잘 살아남아 예의 그 매서운 필봉을 휘둘러 대더니, 요 며칠새 정치인 수 명이 <동아일보>의 타격에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

이들 정치인의 수뢰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흐르면 드러날 것이다. 만약 사실로 드러난다면 <동아일보>의 대특종이 되겠지만, 보도가 추측에 따른 오보로 드러난다면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이나 편집진 모두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혹시라도 그때마저 정권의 언론탄압이니 하는 70년대 흘러간 옛 노래로 이제는 나이 들어 정신이 혼미해진 그대의 옛 독자들을 홀리려는 시도는, 지금이라도 깨끗하게 포기하시기를 바란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70%를 자랑하는 지상 최고의 인터넷 강국 한국에서 그런 행태는 조금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동아일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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