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서 사라진 고양이들 ②

등록 2003.07.18 08:45수정 2003.07.1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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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에게 주려던 밥을 끝내 주지 못하고, 냄비를 도로 집으로 들고 들어와서 냉장고 안에 넣으며 나는 이 밥을 결국 개한테 주게 되는 건 아닐까, 모호한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 내 마음이 애절해지는 것만 같은, 정말 모호한 느낌이었다.


할미고양이의 시체를 발견한 것은 그 날 오후였다. 앞집 은옥엄마가 먼저 발견하고 내게 알려주어서 가보니, 우리 집 앞 화단과 앞 동 사이에 녀석이 죽어 있었다. 녀석의 눈과 코에는 벌써 파리들이 엉겨붙고 있었다. 나는 녀석이 쥐약을 먹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뒷동 뒤편 공터의 한 곳을 삽으로 파고 녀석의 시체를 묻어주면서 동물의 그런 죽음 역시 참 허무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 서글퍼지는 마음이었다.

은옥엄마의 눈에 할미고양이 시체보다 먼저 발견된 수놈 얼룩고양이는 죽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동작이 굼뜬 상태였다. 전에는 은옥엄마를 몹시 경계하며 지레 달아나곤 했는데, 바짝 다가가도 잽싸게 달아나지를 못하고 엉금엉금 기는 듯한 동작이더라고 했다. 그런 녀석도 어디로 갔는지 한 이틀 동안 보이지 않아서 죽은 것으로 알았다.

할미고양이가 죽은 다음날, 앞집 은옥엄마가 근처 초원아파트에서 사는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라며 내게 전해 주는 말이 있었다. 초원 아파트 뒤뜰에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고양이 색깔을 물으니 노란 털과 흰털 검은 털이 섞인 고양이라고 하더란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나는 그 고양이가 나에게서 새끼들을 데리고 떠나간 그 어미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어미와 할미, 두 모녀가 밤에 만나 쥐약 먹은 쥐를 잡아 가지고 서로 나누어먹은 것이 거의 분명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 쥐고기 잔치에 수놈 얼룩고양이는 뒤늦게 참석해서 찌꺼기를 얻어먹었고….

그렇다면, 그 어미고양이도 죽은 것이 확실하다면 그 두 마리의 새끼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 두 마리의 새끼고양이가 어딘가에서 지금도 살아 있다면, 그들의 앞으로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무거운 의문에 나는 더럭 심란해져서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에 가 숨어서 실컷 앓고 일어난 듯 수놈 얼룩고양이가 다시 내게로 와서 밥을 얻어먹기 시작한 날 밤이었다.

하루 생활을 모두 마치고 자정이 넘은 시각에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던 나는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가냘픈 고양이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 소리가 어른고양이가 아닌 어린고양이 소리임을 직감했다. 혹시 하는 생각에 그대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잠옷바람으로 살며시 집 밖으로 나가니 왠지 어린 고양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우선 계단을 살피며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그리고 내려와서 집 앞 화단 주변을 살펴보았다. 계절 덕에 화단에는 수목이 우거진 상태고 또 어두워서 거기에 어린 고양이가 있다고 해도 녀석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얼마 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던 그 두 마리의 새끼고양이들 중 한 놈이 어느 정도 자라서 돌아온 것이라면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테고, 내가 기꺼이 거두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 남은 두 마리 새끼고양이 중에서 한 놈이 돌아온 것이라면, 검은 녀석과 흰 녀석 중에서 어느 놈이 돌아온 것일지 되우 궁금해지는 것을 참으며 잠을 청했다.

이례적으로 늦잠을 자고 날이 훤히 밝았을 때서야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가니 동네 가로등과 방범등들은 이미 거의 꺼져 있었다. 그리고 화단의 땅에 묻은 김칫독 덮개 위에서 홀로 남은 수놈 얼룩고양이가 밥을 달라고 조르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 음식을 가져다가 녀석에게 주었다. 그때 어디선가 어린 고양이 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바짝 긴장하며 가만가만 그 소리를 따라 발을 움직였다. 곧 앞 동의 뒤 베란다 밑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다가가서 몸을 낮추고 보니 그 틈 안에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검은 녀석이었다. 얼굴과 발에 흰털이 조금 있는 것이 틀림없는 삼색 암코양이의 새끼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녀석에게 휘파람을 불며 나오라고 손짓을 했지만 녀석은 그 공간의 끄트머리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녀석은 털이 대체로 서 있는 것 같았고 추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급히 집에 가서 꽁치 토막을 가져다가 녀석에게 던져 주었다. 녀석은 지체 없이 허겁지겁 먹었다.

도대체 녀석이 어디에서 살다가 다시 나타난 것인지, 어떻게 해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어미는 정말 죽은 것인지, 강아지처럼 사람을 따르던 그 흰털 새끼고양이는 어떻게 되었는지…궁금한 점들이 참 많았다.

낮에도 한번 밖에 나가서 앞 동의 뒤 베란다 아래 그 구석을 살펴보았다. 녀석이 여전히 거기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음식으로 유인을 해도 여전히 그 구석에서 나오지 않았다. 내가 기어 들어가서 붙잡아 꺼내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아예 거기를 떠나지 말고 살아라. 그러다 보면 내가 주는 음식에 맛들이고, 또 그러다 보면 너도 네 할미와 어미처럼 아침마다 나를 따라다니는 때가 오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 날 오후 내가 산에 갔다가 내려와서 그 베란다 밑을 들여다보니 녀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세심히 찾아봐도 녀석은 없었다.

그리고 녀석은 그 뒤로 여러 날이 지난 지금까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나타나겠지 했던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간 상황이다.

털이 모두 일어선 것 같이 추레한 모습이었던 그 어린 고양이를 생각하면 나는 여러 가지로 궁금하다. 그 녀석이 어디론가 스스로 이동을 한 것인지, 아직 어린 고양이라서 누군가가 키워보려고 붙잡아 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어린 녀석이 스스로 이동을 한 것이라면 반 야생 고양이들의 이동 범위는 얼마나 될 지도 궁금하다.

자동차도 많고 개들도 많이 돌아다니는 환경에서 그 어린 녀석이 변을 당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나는 버릴 수 없다.

지금도 참 궁금한 것은 새끼 두 마리를 빼앗기고도 동요하는 기색이 전혀 없이 며칠 동안 남은 새끼 두 마리를 잘 데리고 살던 어미고양이가 왜 갑자기 새끼들을 데리고 내 곁에서 사라졌을까 하는 점이다. 그 어미가 다음날 단 한번 홀로 나타나서 밥을 얻어먹고는 그 후로는 일체 자신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은 것도 참 궁금하고 섭섭하다.

녀석이 뒤늦게 새끼 두 마리가 없어진 것을 깨닫고 불안을 느껴 남은 새끼들을 데리고 내 곁에서 사라진 것이라면, 사람의 관점으로 볼 때는 여간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그 이동이 야생 고양이의 오랜 습성에 의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새끼 세 마리를 한 곳에서만 키운 할미고양이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할미고양이의 죽음은 쥐약 먹은 쥐를 먹은 탓일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생각하면 좀 섭섭하기도 하고, 고양이의 본능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때 나는 '태안문학회' 모임을 하고 음식점에서 거둬온 음식이 풍족해서 고양이들에게 아침저녁으로 부족하지 않게 밥을 주었다. 그런데도 밤에 쥐약 먹은 쥐를 잡아먹다니….

지난 주일에는 성당에서 남산리 사돈어른을 뵙고 새끼고양이가 잘 크는지를 여쭈어보았다. 사람에게 정을 붙이며 잘 산다고 했다. 그 녀석을 그곳으로 데려갈 때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어미 품을 일찍 떨어지게 된 녀석이 측은해서 미안한 마음도 가졌는데….

일년 남짓 지나는 동안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새끼들까지 합해 도합 여덟 마리의 고양이들과 꽤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매일같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며, 사람과 동물 사이의 정을 깊이 나누며 살았다. 나는 그들과의 교감을 귀중하게 여겼고, 미물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생명인 그들, 하느님께서 배려해 주신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통해서도 생명의 신비를 어느 정도는 체감할 수 있었다. 고양이의 여러 가지 습성이나 놀랍고도 신기한 것들을 보고 느끼고 확인하며 재미있는 상념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일년 남짓 지나는 동안 도합 여덟 마리의 고양이들이 나와 헤어지거나 내 곁에서 사라지고 죽어갔다. 그 사실에서도 나는 시간의 무상을 느낀다. 이런저런 그 모든 소소한 일들 속에서도 어렴풋하게나마 신의 섭리를 느낀다. 지난봄 고양이들 덕에 아침마다 체감했던 아침의 그 경쾌함은 이제 내 가슴에 분명한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것 역시 내게는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이제는 나에게서 밥을 얻어먹는 고양이가 수놈 얼룩고양이 한 마리뿐이지만, 어제는 녀석이 남긴 밥을 처음 보는 누렁고양이가 와서 먹는 것을 보았다. 내 눈치를 보는 놈을 굳이 쫓지 않았다. 어머니는 동네 고양이들을 모두 불러모을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라며 지레 또 걱정을 하시지만, 나는 한 마리 남은 수놈 얼룩고양이에게 밥을 좀더 넉넉히 줄 생각이다. 녀석이 남긴 밥을 다른 놈도 와서 먹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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