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달팽이가 느리게 걸어간다.김민수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었습니다. 소위 금융실명제가 제도화되고 본격화되면서 고위 공직자들이 자진해서 재산 공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국무위원들과 국회위원들은 자신들이 소유하는 부동산과 재산에 대해 공개하는 과정에서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재산이 상대적으로 적은 국무위원들과 국회위원들은 당당하게 자신들의 재산을 밝히고, 상대적으로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재산을 줄여서 신고할까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그러면 기자들이라는 사람은 남의 구린데 찾아 까발리고 또 여·야당에서 서로 상대진영에서 재산공개를 줄여서 발표했다고 설전이 오고간 적이 있었습니다. 코미디 같은 얘기가 실제 벌어졌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자신들의 재력을 한껏 뽐내고 으스대면서 권력과 재력의 위력에 탐닉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재산을 줄여볼까 궁리를 하고 재산을 많이 가진 것이 떳떳하지 못하고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을 많이 가진 게 무슨 흉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소위 고위 공직자들이란 사람들이 무슨 수로 그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거지 부자가 살았습니다. 하루는 거지부자가 해거름 산모퉁이에서 저녁노을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 아래 동네 김 부자 집에서 불이 났습니다. 거지 부자는 저녁노을을 구경하는 것보다 불구경이 훨씬 더 재밌어서 김 부자집네 불구경을 했습니다.
삽시간에 번진 불은 김 부자네 기와집을 모두 태우고 잿더미만 남게 되었습니다. 김 부자는 잿더미에 털썩 주저앉아 체면 불구하고 대성통곡을 합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거지 아버지는 아들에게,
“야, 이 녀석아! 너는 아비를 잘 만난 줄 알아라.”
“왜요?”
“우리는 집도 절도 없으니 불탈 염려도 없고, 얼마나 좋으냐? 그러니 너는 애비를 잘 만난 것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