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끝나자 모두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다

박철의 <아름다운 순간 5>

등록 2003.07.23 07:30수정 2003.07.2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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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의 혼례청 장식을 위한 병풍
조합원의 혼례청 장식을 위한 병풍허용철
지금부터 꼭 20년 전 K군은 연세대학교 신학과 4년을 다니다가 데모주동자로 낙인 찍혀 제적을 당했습니다. 당시는 군사독재정권이 최악의 발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젊은 학생들이 국가보안법 등 법망에 걸려들어 끌려가고 매 맞고 감옥에 갔습니다. 오직 나라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애국청년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여기고 죽어갔습니다.


K군은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고 어디 취직할 수도 없어 소위 위장취업(?)으로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혹독한 자신과의 싸움을, 자신에 진로에 새로운 모색을 하게 되었습니다. K군의 아버지는 진보적인 교회로 알려진 신당동에 있는 형제교회 장로이셨습니다. K군은 시간을 쪼개 형제교회에서 운영하는 야학의 교사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K군은 예쁜 처녀를 만났습니다. 선생과 제자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제자는 K군보다 나이가 두어 살 많았고 청계천에서 미싱 시다 생활을 하는 여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뜨거운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머지않은 자신들의 장래에 대하여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의 약속을 동의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형제교회 장로인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아버지!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합니다.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는 선뜻 이 두 사람의 결정을 인정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든 아들을 설득하여 기회를 보아 대학에 다시 복학을 시켜 목회자로 키울 생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애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중퇴에 동생의 뒷바라지를 해주어야 하는 딱한 형편의 아들 애인이 아들과는 삶의 격(格)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K군과 애인은 낙담했습니다. 이번에는 형제교회 김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김 목사님은 이미 두 사람의 사랑을 알고 계셨습니다. 힘들겠지만 한번 정면 돌파해보라고 격려해 주시면서 이들의 사랑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K군의 아버지는 고민했습니다.
‘내가 한 교회의 장로로서 평생 하느님을 섬기고 살아온 사람이, 예수정신으로 살아야 할 사람이, 고작 세상적인 허명(虛名) 때문에 내 아들의 사랑을 축복할 수 없단 말인가?’

아버지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아버지도 어머니도 마음을 돌렸습니다. 이들의 결혼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동대문교회에서 김 목사님의 주례로 거행되었습니다. 그 넓은 동대문교회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찼습니다. 절반은 대학생들이었고, 절반은 청계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주례목사는 식장의 분위기에 고무되어 주례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유수한 대학의 대학생출신의 신랑과 청계천 노조출신으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강철같이 단련된 신부와의 색다른 결혼식을 지켜보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두 사람의 처지와 살아온 방식이 각기 다르지만, 이 두 사람은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 저들의 사랑을 결합하고 다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있습니다….”

결혼식 순서가 끝나자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합창했습니다. 나는 그때처럼 감격스럽고 특색 있는 결혼식을 보지 못했습니다. 집안 친척들, 그리고 K군의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오신 손님들 외엔 축의금은 없었습니다. 모두 가난한 노동자 학생들이었으므로. 피로연은 너무 인원이 많아서 인원을 쪼개 각자 얼마씩 추렴하여 대중음식점에서 국밥을 먹었습니다.

지금 이 두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20년째 지속하며 아들 딸 남매를 두었습니다. 신부는 어느덧 중년부인이 되어 지난날 공부의 한을 풀기위해 4년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 주부가 되었습니다. K군은 위장취업으로 배운 기술이 직업이 되어 숙련된 기술자가 되었고,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습니다.

20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대학에 복학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K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꿈을 저버리자, 당신이 직접 신학을 하여 목사안수를 받으시고 지금 강원도 원주에서 7년째 목회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K군은 나의 사촌 처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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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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