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내와 숲이 어우러진 정원 명옥헌(鳴玉軒)을 찾아

조금 한적한 맛을 즐기려는 분을 위해 명옥헌을 소개한다

등록 2003.07.23 21:04수정 2003.07.2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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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아 모처럼 여유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출퇴근 길에 이정표를 보고만 지나쳤지 한번도 가보지 못한 명옥헌을 찾았다.

a 명옥헌 연못에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꽃

명옥헌 연못에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꽃 ⓒ 김옥태

명옥헌 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창평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광주방향으로 1킬로미터 쯤 가다 보면 왼쪽으로 이정표가 보인다.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1.5킬로미터 쯤 가면 조그만 산을 등지고 선 아담한 마을이 다가온다.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 36가구가 정답게 살고 있는 마을이다.

후산리 팽나무

마을에 들어서자 거대한 팽나무가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나무나이 500여년, 높이 20미터, 둘레 3.5미터라고 글씨가 풍화되어 희미한 표지판이 알린다. 세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데, 두 그루는 어느 해 낙뢰를 맞았는지 중간부분이 잘려나갔다.

a 후산리 들목에 선 팽나무 -어느 해 풍우와 낙뢰에 두 그루는 허리가 잘려나갔다.

후산리 들목에 선 팽나무 -어느 해 풍우와 낙뢰에 두 그루는 허리가 잘려나갔다. ⓒ 김옥태

후산리 저수지

마을 입구에는 조그만 저수지가 있다. 농업기반공사가 관리하는 농업용 저수지이지만 이미 늪으로 상당히 발전하고 있다. 둑에는 100살은 족히 넘어보이는 팽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이곳 나무 그늘에서 평상을 펴고 여름을 지낼만 하다.


후산리 은행나무

마을에 들어서 50미터 쯤 가면 세갈래 골목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약 200미터를 올라가면 거대한 은행나무가 나온다. 안내판은 '후산리 은행나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은행나무의 나이는 미상이나 조선시대 인조가 등극하기 전 이곳에 말을 매었다는 전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500년 이상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나무높이는 30미터 가량, 둘레는 8미터 가량 될 듯 싶다.


a 후산리 들목의 작은 저수지 - 농업용이지만 이미 늪으로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습지 생물의 터가 되고 있다.

후산리 들목의 작은 저수지 - 농업용이지만 이미 늪으로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습지 생물의 터가 되고 있다. ⓒ 김옥태

대개의 고목이 시들한 것에 비하여 이 은행나무는 대단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가지가 무성하고 뿌리 부분에서는 끊임 없이 새 가지가 돋아나고 있으며 열매가 엄청 많이 열린다. 부근에는 배롱나무가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다시 아까 그 세 갈래 길에서 오른쪽으로 300미터 가량 오르다 보면 우리가 찾고자 하는 명옥헌이 나온다. 자동차로도 이곳까지 올 수 있는데, 소형차만이 가능하다. 소형차 10대는 주차할 공간이 있다.

명옥헌(鳴玉軒)

이곳은 조선시대 오희도(1583-1623)가 살던 곳으로 그 아들 오이정(1619-1655)이 명옥헌을 짓고 앞, 뒤에 연못을 파고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다고 한다.

a 일명 인조대왕 은행나무로 불리는 후산리 은행나무 - 수령 500년이 넘지만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일명 인조대왕 은행나무로 불리는 후산리 은행나무 - 수령 500년이 넘지만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 김옥태

명옥헌은 소쇄원과 함께 남부지방의 정원을 대표하는 전통 정원이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실의 구성은 외부로 퇴간을 돌리고 그 중앙에 실을 둔 중앙실형(中央室形)이다. 방에는 구들을 두었고 천장은 평천장이다. 마루의 외곽에는 평난간을 두었다. 편액에는 장계정(藏溪亭)이라 쓰여 있다.

정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위는 어머니 젖가슴 같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아주 작은 시내가 관목림 사이로 흐른다. 정자에서 조용히 명상에 잠기노라면 겨우 이 물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오이정은 이 물을 끌어들여 정자 뒷편에 못을 팠다. 못은 네모난 모양에 가운데는 조그만 섬을 두고 사방의 벽은 주변의 돌로 축대를 쌓아 만들었다. 시내의 물은 상류에서 흘러들어와 못을 한바퀴 휘돈 뒤 하류로 흘러나가도록 하였다.

시내의 본류는 다시 아래 연못으로 흘러든다. 이 앞 연못은 뒷 연못보다는 규모면에서 훨씬 크다. 약 1300여 평에 달한다. 이 연못 역시 네모난 모양에 가운데에는 조그만 섬을 만들고 가장자리는 돌로 축을 쌓았다. 못의 넘쳐나는 물은 다시 하류 배수구로 빠져 나간다.

a 후당에서 바라본 명옥헌 - 그 고즈넉함이 도원경에 온 느낌이다.

후당에서 바라본 명옥헌 - 그 고즈넉함이 도원경에 온 느낌이다. ⓒ 김옥태

전남대 천득염 교수는,

'명옥헌 정원은 주변의 자연경관을 차경(借景)으로 도입한 정사(亭舍) 중심의 자연순응적인 전통정원양식이지만 타도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징으로 전(低部)과 후(築壇部)의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방지중도형(方池中島型)의 지당정(池塘庭)을 도입하였고 지당 주변은 수많은 중국원산종인 자미나무를 주제로 하여 열식(列植)하였는데, 마치 도잠(도연명)의 무릉도원경을 연상케 하는 신선정원을 전개하였다'고 극찬한다.

못의 주변에는 자미나무를 심었다. 자미나무는 흔히 배롱나무, 백일홍이라고도 한다. 나무줄기의 표면이 매끄러워 원숭이도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또 간지럼을 탄다고 해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쌀밥나무라고도 불렀다. 이 나무는 일년에 3번 꽃을 피우는데 3번째 꽃을 피울 때 쯤이면 벼가 익어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가난했던 시절 쌀밥이 그리워 불린 이름이 아닐까? 이 나무는 지혈작용이 있어서 월경불순에 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곳의 배롱나무는 나무나이가 거의 다 100살은 넘어 보인다.

a 명옥헌 연못에 물을 공급해 주는 시내 - 관목들 사이를 조용히 흐르는 폼이 참으로 한가하다.

명옥헌 연못에 물을 공급해 주는 시내 - 관목들 사이를 조용히 흐르는 폼이 참으로 한가하다. ⓒ 김옥태

정자의 오른쪽에는 적송나무가 그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으며, 정자를 돌아 뒷 뜰에는 좀 높다란 곳에 100여 평의 평지가 나온다. 이곳에 도장사(道藏祠)라는 팻말이 있다. 이 곳엔 이 지방의 이름난 선비들을 제사지냈던 사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아쉬움을 남긴다.

명옥헌으로 오르는 길섶에 상사초 두 무더기가 반긴다. 상사초는 잎과 꽃이 평생동안 만날 수 없어서 서로 그리워 한다고 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명옥헌에 오르니 아낙 셋이 정담을 나누고 있다. 이곳에 사느냐는 형편없는 물음에 그냥 웃으면서 '아니요, 그냥 놀러 왔소.'

a 명옥헌에 오르는 길섶에 핀 상사초 - 잎은 꽃을 그리워하고 꽃은 잎을 그리는 평생 만나지 못하는 사이

명옥헌에 오르는 길섶에 핀 상사초 - 잎은 꽃을 그리워하고 꽃은 잎을 그리는 평생 만나지 못하는 사이 ⓒ 김옥태

나이가 들어가면서 왜 자꾸 이런 정원이 반갑고 그리워지는 것일까? 옛 선비는 은퇴후 낙향하여 심신을 가지런히 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는데.

요즘은 나이가 들어도 끝없는 탐욕으로 자신과 이웃을 해치고 있는 인사들을 보면 마냥 안타까울 뿐이다. 아까 은행나무 옆에 빈 집이 있던데, 그 집을 사서 수리하여 노후를 지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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