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는 커서 뭐가 될끼고?"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98>여름성경학교

등록 2003.07.28 16:54수정 2003.07.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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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커서 뭐가 될끼고?"
"나는 시인이나 화가가 될끼다."
"울 옴마가 그라는데 시인이나 화가는 굶어죽기 십상이라 카더라. 그라고 그런 거는 돈 많은 자식들이 할 짓 없어가(없어가지고) 하는 짓이라 카더라."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닐 때 나의 꿈은 김소월이나 괴테처럼 유명한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 어린 내가 무슨 또렷한 목적이나 목표를 세워두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시가 무작정 좋았다. 게다가 내 아버지께서는 마디미(상남)에서 작문선생이라고 불릴 만큼 글을 잘 지으셨고, 글씨 또한 참으로 잘 썼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께서는 남의 집 갈라먹기 농사를 지으며 겨우 끼니를 때우는 가난한 농사꾼이었다. 또한 할아버지께서도 크게 가진 것이 없어, 아버지께서는 학교 공부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게다가 할아버지께서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호열자(콜레라)에 걸려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버지의 학력은 보통학교를 조금 다니다가 만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런데도 아버지께서는 모르는 한문이 없을 정도로 척척 읽어냈다. 그런 까닭에 마을에 애경사가 생길 때면 마을 사람들은 으레 필체가 좋은 아버지께 부의금 봉투와 축의금 봉투를 써줄 것을 부탁했다.

"하느님을 믿니 내 똥구녕을 믿어라."
"저...저런! 망할 놈의 자슥이. 야, 이 넘아! 똥줄 급할 때모 니 입에서 머슨 소리가 튀어 나오더노? 아이구 하느님, 카는 소리가 안 나오더나?"
"그래도 지는 예수쟁이가 제일로 싫은데 우짤낍니꺼."

그랬다. 나는 방학 때가 되면 마디미에 유일하게 있는 상남교회에 자주 나갔다. 그때 불교신자였던 어머니께서는 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그리 탐탁치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마을 아이들이 교회에 나가는 내게 하느님을 믿니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놀리면 하느님을 욕하면 못 쓴다, 라시며 몹시 혼을 내시곤 했다.


우리 마을에서 1km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던 상남교회에서는 해마다 여름방학이 되면 여름성경학교를 열었다. 그 여름성경학교는 국회의원보다 훨씬 더 말을 잘하는 젊은 전도사 선생님이 지도하고 있었다. 그 전도사 선생님은 노아 방주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우리나라 전래동화까지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숲속 초가집 창가에
작은 아이가 섰는데
토끼 한 마리 달려와
문 두드리며 하는 말
날 좀 살려 주세요
날 좀 살려 주세요
날 안 살려주면 포수가 와서
빵, 하고 쏜대요."


가사가 정확하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그 당시 내가 여름성경학교에 다닐 때 가장 많이 부른 노래가 이 노래였다. 특히 그 전도사 선생님께서는 이 노래를 가르칠 때 손짓 발짓을 다해가며 정말 재미있게 불렀다. 또한 여름성경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소 눈알 만한 눈깔사탕을 하나씩 나누어주곤 했다.

당시 나는 여름성경학교에 정말 열심히 다녔다. 매일 여름성경학교가 파하고 나면 눈깔사탕을 하나씩 나누어는 주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전도사 선생님이 좋았다. 그때 나는 그 전도사 선생님 덕분에 성경책에 나오는 온갖 신기한 이야기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우리 나라 전래동화를 참으로 많이 알게 되었다.

"예배당에 갔더니
눈 감아라 캐놓고
신발 훔쳐 가더라"

그랬다. 내가 그렇게 여름성경학교에 열심히 다닐 때 마을 아이들은 주로 이런 노래를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어떤 아이 하나가 여름성경학교에 왔다가 새로 산 검정 고무신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 전도사 선생님의 배려로 검정고무신이 아니라 베신(운동화)을 신고 다닐 수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우리들은 여름성경학교에 가면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를 했다. 제발 오늘 내 고무신을 다른 사람이 신고 가게 해 달라고. 하지만 기도를 끝내고 여름성경학교가 파하여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실로 기운 우리들의 까만 고무신은 신발장에 그대로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여름성경학교 마지막 날, 전도사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연필과 백지 한 장을 나누어주면서 글을 지으라고 했다. 글짓기의 주제는 '예수' 였다. 그때 나는 아마도 이렇게 썼던 것 같다. 다시는 이 세상 사람들의 죄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제2의 예수님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랬다. 그때 나는 시를 써서 생전 처음으로 상이란 것을 받았다. 그것도 장원으로. 그리고 상품으로 그 당시 아주 귀했던 라면 한 상자와 빵 몇 봉지, 그리고 여러 가지 과자 부스러기 등을 받았다. 그날, 나는 나를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아이들을 헤집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기 뭐꼬?"
"이거 내가 예배당에서 시로 써가꼬 상으로 받은 기다."
"시로 써가꼬? 우와! 라면도 있네."
"한 개 주까?"
"아이다. 너거 옴마한테 먼저 보여 주라."
"아나!"
"니 그라다가 혼 나모 우찔라꼬?"
"괘않다. 이거는 내가 상으로 받은 기니까 내 맘대로 해도 된다."

그때부터 나는 유명한 시인이 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가도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헌 공책에 남은 백지를 찢어 모아 시화첩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 같이 시를 쓰고, 시 옆에 시에 맞는 그림을 크레용으로 그리기도 했다. 또한 그때부터 크리스마스가 들어있는 겨울성경학교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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