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것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다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김훈의 <칼의 노래>

등록 2003.07.29 06:55수정 2003.07.29 15:38
0
원고료로 응원
a

ⓒ yes24.com

이순신은 1960~1970년대에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게는 ‘성웅(聖雄)’으로 각인되어 있다. 특히 노량해전에서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말한 그의 행동은 극적으로 미화되어 그의 최후는 한국 역사상 가장 성스러운 한 순간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이순신이라는 이름 앞에 접두사처럼 붙는 ‘성웅’이라는 존칭에 대하여 당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렇듯 이순신을 민족의 성웅으로 추앙한 것은 당시의 정치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5ㆍ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고 박정희 대통령은 그의 정권의 태생적 결함과 정통성 결여를 조선 시대 임진왜란의 뛰어난 무장이었던 이순신을 내세워 은폐하고자 했던 것이다.


1968년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 그 이름과는 달리 이순신의 동상을 세우고, 1966~1967년 이순신의 사당인 아산의 현충사를 대대적으로 확장하여 성역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즉,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빛내주고 있는 ‘성웅’이라는 후광은 전부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조작되고 과장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암울한 시기에 대학을 다니면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내게 이순신이라는 이름은 부하의 총에 맞아 비운의 생을 마친 늙고 가엾은 한 독재자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게 만드는 거북스러운 이름일 뿐이었다. 이순신은 내게 더 이상 풍전등화 앞에서 나라를 구해낸 ‘구국의 영웅’도, 죽음의 순간에도 나라를 먼저 생각한 ‘민족의 성웅’도 아니었다.

그러니 본격적인 소설가도 아닌 김훈이 이순신을 소재로 해서 쓴 소설 한편으로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놀라움과 함께 의혹을 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놀라웠던 까닭은 내로라 하는 쟁쟁한 소설가들을 물리친 김훈이라는 이름에 있었고, 의혹은 그의 소설 <칼의 노래>가 다름 아닌 이순신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었다.

놀라움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그의 산문집 <자전거 여행>을 사서 읽었다. 그 산문집의 글들은 아름다웠고 그 글들 속에 녹아있는 사유는 깊었다. 이 정도 글솜씨와 생각의 깊이라면 동인문학상 수상의 충분한 자격이 있음이 확인되자 나의 놀라움은 이내 긍정으로 바뀌었다.

그 산문집 속에서 나는 이순신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는 이순신의 이름에 늘 따라 다니던 ‘성웅’이라는 후광이 없었다. 후광이 걷히자 이순신은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칼의 노래>에는 후광을 벗은 이순신의 진정한 모습이 담겨져 있을 것이었다.


나는 <칼의 노래>를 온라인으로 주문했고 사흘 동안 꼼꼼히 읽었다. 내가 품었던 의혹은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는 심사위원들의 찬사에 머리를 끄덕이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이 글은 오직 소설로서 읽혀지기를 바란다’고 김훈은 일러두기에 쓰고 있지만, <난중일기>를 비롯한 여러 사료를 토대로 하여 그가 그려내고 있는 이순신의 내면세계는 어쩌면 후광에 가득 찬 ‘성웅’이 숨기고 있는 참된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코피를 쏟고, 식은땀을 흘리고, 환청에 시달리는 기진맥진한 수군통제사의 모습 속에서 나는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적탄을 맞은 어깨가 덧나 욱신거리고 정치적 모함으로 고문 받은 허리와 무릎이 견딜 수 없이 시려올 때, 그래서 그가 자신의 몸을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몸으로 인식할 때, 알 수 없는 적들의 적의와 기댈 곳 없는 썩은 정치판 속에서 그 어느 쪽으로도 더 물러설 곳이 없었던 한 무인의 운명을 나는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가 싸운 것은 '세상의 무의미'였으며, 희망 없는 세상을 돌파해 나가야만 하는 자신의 가혹한 운명이었다. 그 싸움에서 무인인 그가 기댈 수밖에 없는 최후의 수단은 칼인데, 이러한 헛것은 베어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칼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자신의 칼에 새긴 검명처럼 적의 피로써 산하를 물들이고자 했던 그의 소망은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남긴 <난중일기>의 놀라운 문장들은 여기에 기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존망의 찌꺼기가 묻지 않는 칼과는 달리 인간은 특히 그 몸은 생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그가 마침내 견딜 수 없어 그 흔적을 드러낼 때 나는 함께 울었다.

마침내 그는 노량해전에서 이 모든 헛것들과의 싸움을 끝냈다. 이날 이순신은 죽고 오랜 전쟁이 끝났다. 그의 몸은 헛것을 끌어안고 함께 죽었지만 그의 칼은 살아남아 아산 현충사, 그의 사당에 걸려 있다.

그가 죽은 지 400년이 지나, 여기 눈 밝고 귀 밝은 사내 한 사람 있어, 그 칼에 새겨진 검명에 깃든 간절한 소망을 읽어내고, 그 칼이 나지막하게 부르는 노래의 슬픈 음률을 옮겨 적으니 그게 바로 <칼의 노래>이다.

칼의 노래

김훈 지음,
문학동네, 201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