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많은데 스승은 없다

'구마적' 역사 선생님 박정남 교사

등록 2003.07.30 09:23수정 2003.07.3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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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고 교정에서의 박정남 선생님
대전고 교정에서의 박정남 선생님권윤영
“3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면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스승 한 분을 만들지 못하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학교를 마친다면 실패한 삶이 아닐까요. ‘선생은 많은데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은데 제자는 없다’는 게 제 소견입니다. 저는 좋은 스승이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싶습니다.”


최근 모 방송에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야인시대’의 핵심인물이었던 ‘구마적’이 학교에 나타났다. 대전고등학교 박정남(56) 교사(역사담당)가 그 주인공.

그는 고교시절 재밌게 수업을 진행하던 역사선생님에 반해 교직을 선택했다. 역사와는 무려 40여년을 함께 해온 셈이다. 박 교사의 역사시간은 학생들이 기다리는 최고의 수업시간. 그는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역사시간을 자는 학생들이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대부분 역사를 암기과목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사도 하나의 사회과학입니다. 저는 오늘날의 현실과 비교하면서 가르칩니다. 역사는 변천하면서 되풀이 됩니다. 미래의 정치를 보려면 과거의 정치를 살피면 알 수 있어요. 한 방향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관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죠.”

박 교사는 야인시대의 ‘구마적’ 선생님으로 통한다. 닮은 외모도 이유이지만, 주먹을 불끈 쥐고 수업을 진행하는 스타일이 영락없는 ‘구마적’과 같다. 그는 역사 수업을 진행하면서 주먹을 잘 쥔다. 그리곤 학생에게 말하곤 한다.

“우리민족은 끈질김이 있는 민족이다. 너희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건다.”


목소리가 유난히 큰 그는 수업중에도 큰 목소리로 교실을 장악한다. 학생들이 주목을 하지 않으면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 카리스마적인 면도 갖고 있다.

그에게 유별난 점이 또 하나 있다. 처음 교직생활을 시작했던 때부터 지금껏 의자에 앉아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없다. 학생들과 함께 일을 할 때 앉는 경우는 제외하고는 심지어 시험감독을 들어갔을 때도 의자에 앉는 법이 없다. 물론 앉고 싶을 때도 있지만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지켜야 할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가 교직에 몸담은 것은 지난 70년, 23살부터 교직생활을 시작했으니 벌써 34년째다. 교사생활 중에 군대에 다녀왔으니 애착도 많고 추억도 많다.

“27살 때 충남 서산의 만리포 중학교에 근무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반에 26살 먹은 방위로 근무 중인 학생이 있었어요. 부모님을 도와 농사짓느라 학교를 다니지 못했죠. 그 학생과 인연이 되어 부대와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어요.”

서산여고에 재직중일 때는 5년 동안 3학년 담임을 하면서 학생들과 밤낮을 부딪치기도 했다. 이 때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져 40대 엄마가 된 제자들과 지금도 연락하며 정을 쌓아가고 있다.

“외국에는 이런 말이 있잖아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 그런데 우리 속담 중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참 꿈을 갖고 커나가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결코 들려주고 싶지 않은 말입니다.”

박 교사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능 시험을 본 후에 결과에 따라서 대학과 학과를 결정한다며 아쉬워한다. 그런 학생들에겐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불을 같이 화를 낸다. 그는 학생들에게 어떤 대학, 학과를 갈지 목표를 설정한 후 그것을 위해 노력하라고 강조한다.

불같은 성격 이면엔 물 같이 부드러운 면도 함께 지녔다. 감동적인 자료를 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학생들을 때리기 전엔 항상 자신에게 먼저 매를 드는 박 선생님. 그렇기에 그에겐 체벌이 문제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요즘 체벌이 문제가 많지만 저는 학생들을 무섭게 때립니다. 하지만 곧 그 학생을 불러 매 맞은 자국을 매만져 주며 함께 마음 아파하면서 같이 울기도 하죠. 그러면 그 학생도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얘기합니다. 학생들을 모두 제 자식 같이 생각하는 마음에서죠.”

그가 가르치는 내용을 학생들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나 시험 성적 결과가 좋을 때 보람을 느끼는 건 당연지사. 학창시절 자주 혼났던 학생이 졸업하고 생각지도 않게 편지를 보내거나 찾아왔을 때 또한 보람을 느낀다.

“선생님으로 사는 길, 누가 알아주는 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하기에 즐겁습니다. 제가 가르친 학생들이 사회에서 하나의 밀알이 되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학생과 선생님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로 만나고 싶네요.”

박정남 선생님은 많은 교사 중에 한명이 아닌 진정한 스승이 되기 위해 한 여름에도 학교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학생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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