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동안 선생님들이 읽으면 좋은 책

가브리엘 루아의 <내 생애의 아이들>

등록 2003.07.30 11:57수정 2003.07.3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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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내 생애의 아이들>

책 <내 생애의 아이들> ⓒ 현대문학

이 책은 가브리엘 루아라는 캐나다 작가의 소설집으로, 몇 편의 단편과 '찬물 속의 송어'라는 중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 <내 생애의 아이들>이라는 제목 아래 담겨 있는 모든 소설의 서술자는 가난한 마을의 어느 학교 여교사이다.

작품 속에서 관찰자이자 서술자로 등장하는 이 여교사는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교직 생활은 그다지 평탄하지만은 않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각양각색의 아이들을 경험하면서 이 여교사가 느끼는 생각들을 섬세하고 차분한 문체로 전달한다.


각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가난하거나 지식이 부족하거나 부모의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이다. 무언가 결핍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선생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어한다.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할 때의 긴장과 공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참 많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꼬마 주인공들 또한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면서 온갖 긴장을 겪는다. 그래서 겨우 겨우 부모의 손에 이끌려 나오기도 하고, 학교에 오자마자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그러한 아이들을 보면서 선생님은 그들의 특성을 하나하나 살피는 것이다.

"빈센토는 자신의 운명이 스스로의 손안에 들게 되자 절망적으로 어떤 공격이나 전략을 모색하는 눈치이더니 이윽고, 이젠 정말이지 더 이상 다른 도리가 없다는 듯 엄청난 한숨을 내쉬면서 용기를 다 잃은 채 투항하고 말았다.

그는 낯선 세계에서 지지자도 친구도 없이 내맡겨진 낙담한 꼬마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교실 한구석으로 달려가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더니 두 손 안에 얼굴을 파묻고 웅크린 채 길 잃은 강아지처럼 흐느꼈다."


이처럼 학교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이 조그만 소년도 결국은 학교에 투항하여 선생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순진한 꼬마가 된다. 서술자인 여교사는 이 광란의 하루가 지나자 빈센토에 대해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을 정도로 그가 학교의 감미로움에 적응했음을 전한다.


'성탄절의 아이'라는 단편은 성탄절을 맞이하여 너도나도 선생님께 선물을 주고 싶어하는데, 집이 너무 가난하여 아무 것도 줄 게 없는 꼬마 클레르에 대한 이야기이다. 클레르는 학급에서 뭐든지 잘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착실한 학생이었는데, 성탄절이 다가오면서 선생님께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아무것도 줄 수 없어 괴로워했던 클레르는 눈보라치는 성탄절날 밤 조그마한 선물을 들고 선생님 댁을 찾아온다. 성탄절 선물로 엄마가 일하는 주인집에서 받은 손수건을 곱게 포장한 채. 어떠한 선생님도 클레르와 같은 착한 마음씨에 감동 받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모두 클레르처럼 쉬운 상대만은 아니다. 악명 높은 드미트리오프 집안의 아이들은 줄줄이 이 학교 학생으로 들어온다. 그들이 악명 높은 이유는 지저분한 옷차림과 냄새, 그리고 짓궂은 장난 때문이다.

다행히도 서술자인 이 여교사의 반에는 드미트리오프 집안의 아이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의 반에도 막내 드미트리오프가 입학하게 되고, 떼로 뭉쳐 다니는 때묻은 아이들을 보며 그녀는 생각한다.

"거기에, 아이들이 하늘 저 밑으로 가벼운 꽃장식 띠 같은 모양을 그리며 하나씩 하나씩, 혹은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매번 나는 그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광대하고 텅 빈 들판에 그 조그만 실루엣들이 점처럼 찍혀지는 것을 볼 때면 이 세상에서 어린 시절이 얼마나 상처받기 쉽고 약한 것인가를, 그러면서도 우리들이 우리의 어긋나버린 희망과 영원한 새 시작의 짐을 지워 놓는 곳은 바로 저 연약한 어깨 위라는 것을 마음 속 싶은 곳에서 절감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전하는 이러한 말들은 아마 교직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느낌들일 것이다. 특히 처음 교사를 시작하는 많은 선생님들은 학생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는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생각들이 퇴색되어 교사인 자신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이 책이 교사들에게 주는 가치는 열정이 식어 버린 교사들에게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는 데에 있다. 다른 교직에 관련된 소설들이 지나치게 피상적이거나 일반적인 내용으로 교사로서의 가치관을 주입시키려 한다면, 이 책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문체로 교사의 역할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끔 한다.

방학을 맞이한 교사들이 만약 스스로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고 생각된다면, 이 책 한 권을 통해 새롭게 마음을 잡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캐나다 출신의 가장 유명한 작가인 가브리엘 루아의 서정적이면서도 차분하고, 어떠한 생각을 하게끔 하는 문체 또한 이 책을 읽는 데에 한층 더 즐거움을 더해 줄 것이다.

내 생애의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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