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순이 아줌마 김기영 사장권윤영
‘허물은 촐랑거리는데서 시작되고 죄는 조급한 마음을 참지 못해서 생기며 눈을 조심하여 남의 추한 모습을 보지 말고 밝고 아름다운 것만 볼 것이며 입을 조심하여 실없는 말, 거짓말, 남을 비방하는 말 하지 말고….’
8평 남짓한 공간. 놓여진 테이블 3개. 한쪽 벽에 적힌 ‘또순이 아줌마가 알려드리는 글’이 눈길을 잡아끄는 대전시 선화동에 위치한 선화식당.
“우리 집 부대찌개가 제일 맛있어.”
“얼굴을 보니 애기는 시집을 늦게 가야겠네.”
식당 사장인 또순이 아줌마 김기영(54)씨는 식당을 찾는 손님에게 다정스레 인사를 건네며 구수한 입담으로 내친 김에 관상까지 봐준다.
“내가 여기 식당을 지난 93년부터 시작했지. 노점을 10여년간 해오다 내 가게를 갖게 됐어. 작은 공간이지만 그 기쁨은 말 할 수 없이 컸어. 이렇게 쳐다보고 저렇게 쳐다보고 눈물은 또 왜 그렇게 나던지.”
그녀는 그동안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인생사를 구구절절 풀어놨다.
“그동안 한 고생을 얘기하면 뭐해.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거지. 내 인생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단막극 갖고는 안돼.”
김씨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했다. 가난은 어린시절 그녀의 꼬리표였다.
“15살 때부터 그 어린 나이에 지게 지고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똥도 펐어. 고생만 하고 너무 힘드니까 스님 되려고 절에도 갔었지. 그 당시부터 관절이 안 좋아서 지금까지 고생이야.”
식당 종업원을 5년간 하다가 36살에야 비로소 자신만의 식당을 시작했지만 곧 집도 날리고 빈털터리가 됐다. 이후 입에 풀칠하기 위해 노점상을 시작했다. 떡, 아이스크림, 호떡, 번데기, 홍합, 냉차 등등. 안 해 본 품목이 없을 정도.
“몸도 좋지 않은데 무거운 짐을 이고 하루 종일 다리품을 팔아도 매출이 없는 날이 허다했어. 떡을 이고 대전서 대천까지 갔는데 떡이 다 시었더라고. 커피를 팔 땐 5시간 동안 한잔도 못 팔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허탕 친 날이면 왜 그리 서럽던지 눈물이 펑펑 쏟아졌지.”
딸을 낳고 3일 만에 냉차 장사를 나가기도 했던 또순이 아줌마. 약 먹고 죽을 결심까지 했던 그녀였지만 죽을 용기로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마지막에 했던 ‘오방떡’ 장사가 다행히 장사가 잘 돼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