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섬에 하얀 눈이 내렸습니다.

백설같은 문주란 바다위에 만개

등록 2003.08.01 23:25수정 2003.08.0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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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얗게 핀 문주란

하얗게 핀 문주란 ⓒ 김강임

바다가 아름다운 북제주군 하도리 굴동포구에 이르면 5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표류하는 듯 떠있는 작은 섬이 보인다. 뭍에서 보는 섬은 늘 동경의 대상이다.

여름의 한가운데 서 있는 8월.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장마가 계속 될 때에는 햇빛을 달라고 기도했건만, 연일 햇빛이 쨍쨍 내리쬐니 장맛비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보다 여름에 내리는 백설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더욱이 여름에 피는 하얀 꽃은 백설을 연상케 하여 시원함을 가져다 준다. 게다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토끼섬에 핀 문주란은 마치 여름에 내린 함박눈처럼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토끼섬, 한여름 하얀 문주란 꽃이 온 섬을 뒤덮을 때 그 모양이 토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토끼섬은 원래 바깥쪽에 있는 작은 섬이라는 뜻으로 '난들여'라고도 불렸다. 960여 평의 면적에 백사장과 10여 미터 높이의 현무암 동산으로 이루어졌다.

a 바다 위에도 길이 있네요.

바다 위에도 길이 있네요. ⓒ 김강임

지난 7월 29일. 음력 초하루, 매달 초하루 오후가 되면 바다 물이 빠져 나간다. 그 틈을 이용해 함박눈을 맞으러 토끼 섬으로 향했다.

" 누가 그 넓은 바다를 다 삼켜 버렸을까"
" 토끼 섬은 그 많은 바닷물을 어디로 빼 돌렸을까?"
신기하게도 바닷가에 넘실대던 푸른 바다는 전설처럼 빠져나갔다. 드디어 토끼섬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오후 4시쯤 되었을까? 토끼섬의 백사장은 하얗게 속살을 드러내 보였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하얗게 만개한 문주란의 모습이 한겨울 백설처럼 보였다.


a '이 빠진 징검다리' 때문에  토끼섬에 갈 수가 없어요.

'이 빠진 징검다리' 때문에 토끼섬에 갈 수가 없어요. ⓒ 김강임

간조시에는 걸어갈 수 있으며 만조 때에는 백사장과 동산이 분리된다는 토끼섬.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섬에는 '이 빠진 징검다리'가 심술을 부렸다.

하늘에도 까마귀가 만들어 놓은 길이 있듯이, 바다에도 길이 놓여져 있었다. 누가 이 길을 만들었을까? 토끼섬에서 뭍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는 시커먼 돌로 100m 쯤 이어졌다. 그리고 이 징검다리는 만조 때는 바다 물에 감춰져 길의 모습이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도 해안도로에서 바라보니 첨벙대며 금방 달려 갈 수 있을 것 같아, 긴 바지를 허벅지까지 올리고 좀더 가까이 다가가 본다. 술렁술렁 구멍이 뚫린 시커먼 갯바위를 밟고서….

a 하는수 없이 갯바위에 올라서 토끼섬을 바라보니...

하는수 없이 갯바위에 올라서 토끼섬을 바라보니... ⓒ 김강임

높이 뛰기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갯바위 위에서 도움닫기를 해서라도 건너갈 수 있는 것만 같은데, 사람들은 그저 흰눈이 내린 토끼섬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누구도 '이 빠진 징검다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만약 '이 빠진 징검다리'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박눈을 맞으러 그 섬에 들어갈까?

마음 한구석엔 '이 빠진 징검다리'를 원망하다가 신의 섭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문주란이 자생하고 있는 이 섬에 함박눈이 소복이 내렸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a 해안도로변에 피어있는 하얀꽃이  함박눈을 연상케 합니다.

해안도로변에 피어있는 하얀꽃이 함박눈을 연상케 합니다. ⓒ 김강임

문주란은 겨울에 말랐던 잎이 봄을 맞으면 파랗게 새잎이 돋아나고 7월말쯤부터 백설같은 꽃을 연달아 피워 9월까지 토끼섬을 하얗게 물들인다. 또한 문주란의 은은한 향기는 바다를 그리워하고 섬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향기를 적셔 줄 것이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왜 이 섬에만 흰눈을 내리게 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벌써 토끼섬은 삼켰던 바닷물을 토해 내고 있었다.

a 토끼섬을 지키고 있는 해녀 상

토끼섬을 지키고 있는 해녀 상 ⓒ 김강임

그리고 토끼섬 앞 해안도로에는 '해녀 상'이 토끼섬을 지켰다. 더욱이 해안도로 주변에는 하얗게 만개한 문주란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그 섬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듯이….

토끼섬의 문주란은 옛날 아프리카 남단에서 파도를 타고 온 씨앗이 정착하여 뿌리를 내렸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천연기념물 19호로 지정되고 있다.

찾아가는 길은 제주공항-12번 국도( 동회선)- 조천- 함덕-동북-월정-하도해안도로- 굴동포구에서 바라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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