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태안사의 여름 들꽃

남도 들꽃(83)

등록 2003.08.04 09:08수정 2003.08.0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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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위질빵(2003년 8월 2일 태안사)

사위질빵(2003년 8월 2일 태안사) ⓒ 김자윤

8월 따가운 햇빛 아래서 필만한 꽃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남도 곡성군에 있는 태안사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사위질빵이 반겨줍니다.

이 꽃의 이름에는 사위를 사랑하는 장모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요즘처럼 시집을 오는 것이 아니라 장가를 가는 것이었답니다. 즉, 데릴사위제라고도 하지요. 장가를 가면 일을 많이 하게 되겠지요.


산에 나무를 하러 가거나 하면 대부분은 칡넝쿨로 멜빵을 만들어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지요. 이때 장모는 사위가 짐을 많이 지는 것이 안쓰러워서 칡넝쿨 대신 이 식물의 줄기로 나뭇짐을 매준답니다. 그런데 이 식물의 줄기는 칡넝쿨처럼 질기지가 못해서 잘 끊어집니다. 그러니 짐을 조금밖에 맬 수가 없지요. 그래서 사위를 아껴주는 장모의 마음을 나타내서 사위질빵이라고 한답니다.

a 사위질빵

사위질빵 ⓒ 김자윤

a 닭의장풀

닭의장풀 ⓒ 김자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들꽃 중의 하나가 닭의장풀(달개비)입니다. 이름이 참 이상하죠? 닭의장풀이라고 이름지어진 유래는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옛날 어느 마을 두 남정네가 서로 힘 자랑을 하기로 했답니다. 처음에는 멀리 바위 들어 던지기를 했는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거리를 던졌대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높이 바위 뛰기를 했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둘이 똑같이 비기고 말았대요.

두 사람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번에는 바위를 안고 깊이 가라앉기를 하기로 했어요. 아주 위험한 시합이 되고 만 거죠. 당사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고 가족들의 마음은 어땠겠어요. 날이 새면 둘 중의 하나가, 혹은 둘 다 죽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두 사람의 부인들은 닭이 울어 새벽이 새지 않도록 닭장 옆을 지키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아무리 닭이 울지 못하도록 껴안고 모가지를 비틀어도 닭 등은 홰를 치고 날이 밝았음을 알리고 말았답니다.

부인들은 애가 타서 그만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답니다. 거기서 이 꽃들이 피어난 거랍니다. 그제야 그 남정네들도 자신들의 어리석은 힘내기를 부끄럽게 여기고 슬퍼했답니다.


a 겹꽃삼잎국화

겹꽃삼잎국화 ⓒ 김자윤

어렸을 적에 겹꽃삼잎국화는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었지만 요즘은 만나기 힘든 꽃입니다. 지금 다시 보니 정감 있는 예쁜 꽃이죠?

a 상사화

상사화 ⓒ 김자윤

꽃이 필 땐 잎이 없고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어 잎과 꽃이 평생 한번도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상사화라고 합니다. 요즘은 조경용으로 많이 키워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절에서 보는 상사화는 느낌이 확실히 다른 것 같습니다.


a 참나리

참나리 ⓒ 김자윤

참나리는 꽃 중에 꽃입니다.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 조경용으로 많이 키워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절 주변에 피는 참나리는 그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입니다.

a 참나리(2)

참나리(2) ⓒ 김자윤

a 수국

수국 ⓒ 김자윤

절에 핀 수국은 유난히 아름답습니다. 그것은 짙은 녹색의 잎과 하늘색 꽃잎이 사찰 건물과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a 능소화

능소화 ⓒ 김자윤

능소화는 중국이 원산인 덩굴식물로 낙엽교목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양반집 정원에만 심을 수 있었고, 일반 상민이 이 꽃을 심으면 잡아다가 곤장을 때리고 다시는 심지 못하게 했다고 하여 '양반꽃'이라고도 한답니다. 이 꽃을 '구중궁궐의 꽃'이라 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옛날 옛날 복숭아 빛 같은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습니다.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 빈의 자리에 앉아 궁궐의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로 빈의 처소에 한번도 찾아오지를 않았습니다.

빈이 여우같은 심성을 가졌더라면 온갖 방법을 다하여 임금을 불러들였을 텐데 아마 그녀는 그렇지 못했나 붑니다.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가 어디 한 둘이었겠습니까? 그들의 시샘과 음모로 그녀는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까지 기거하게 된 빈은 그런 음모를 모르는 채 마냥 임금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 너머 쳐다보며 기다림의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상사병 내지는 영양 실조로 세상을 뜨게 되었습니다. 권세를 누렸던 빈이었다면 초상도 거창했겠지만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여인은 초상조차도 치러지지 않은 채 '담장 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라고 한 그녀의 유언을 시녀들은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온갖 새들이 꽃을 찾아 모여드는 때 빈의 처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것이 능소화랍니다. 능소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담장을 휘어 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그 꽃잎의 모습이 정말 귀를 활짝 열어 놓은 듯 합니다.

한이 많은 탓일까, 아니면 한 명의 지아비 외에는 만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꽃 모습에 반해 꽃을 따다 가지고 놀면 꽃의 충이 눈에 들어가 실명을 한다니 조심하세요. 장미는 그 가시가 있어 더욱 아름답듯이 능소화는 독이 있어 더 만지고 싶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a 능소화(2)

능소화(2) ⓒ 김자윤

박하, 버들금불초, 이삭여뀌, 개갓냉이, 층층이꽃, 쇠별꽃 그리고 아름다운 절의 모습은 사진 매수의 한계 때문에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쉽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사찰 꽃구경 한번 해보세요. 아마도 좋은 피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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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정년퇴직한 후 태어난 곳으로 귀농 했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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