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99

무림천자성으로 (3)

등록 2003.08.04 11:54수정 2003.08.0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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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땅을 짚고 있던 봉이 들리는가 싶더니 도를 향하여 쇄도하였다. 이것을 본 장한은 내심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봉은 평범한 나무로 깎아 만든 것이다.

반면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무적검과 같은 재질로 된 무적도(無敵刀)이다. 따라서 격돌하기만 하면 봉이 베어질 것은 자명한 이치이기에 실소를 머금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손목에서 찌르르한 느낌이 오는가 싶더니 이내 손이 허전해졌기 때문이다. 설명은 길었으나 실제 상황은 불과 일 수유도 채 되지 않는 찰라에 이루어졌다.

선무분타에서 이십여 정의수호대원들과 상대해본 적이 있는 이회옥은 찌르는 초식인 운룡포연으로 도신을 강하게 끊어 쳤다. 쇄도해 오는 도와 격돌하면 봉이 베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파리도 납작하게 만들 정도로 빠른 봉에 격중된 도는 강한 진동을 일으켰고 순간적으로 이것을 견디지 못하였기에 그만 놓치고 만 것이다.

왼 손으로 오른 손목을 잡은 채 멀리 내동댕이쳐진 자신의 도를 바라보는 장한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이 공개석상에서 개망신을 당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손에 쥐어져 있어야 할 도가 저렇게 멀리까지 날아갔나 그것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곁에서 구경하고 있던 나머지 정의수호대원들은 의외의 결과에 경악한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 역시 왜 동료의 도가 날아갔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봉의 움직임이 너무도 빨랐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단 일 초만에 동료의 도를 날려버릴 실력을 지녔다는 것이 확실한 이상 자신들도 일대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강적이라 판단한 장한은 황급히 동료들을 일깨웠다.

"이런…! 무엇들하고 있어? 어서 놈을 제압하자."

"헉! 아, 알았어. 이놈! 우릴 잘도 속였겠다? 챠아아앗!"

"이놈! 여기도 있다. 죽엇!"

쐐에에엑! 쉬이이익! 휘이이이익!

약간 물러서 있던 세 장한이 거의 동시에 쇄도하자 이회옥은 난감하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야합! 운룡파철! 운룡포연! 운룡포연!"

채앵―! 따앙―! 챙―!

"으헉! 허억! 으앗!"

요란한 금속성에 이어 세 마디 다급성,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세 자루 무적검은 세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고 있었다. 이 순간 검을 놓친 정의수호대원들은 왜 자신의 애병이 허공을 날아갈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불과 일 수유이지만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질식할 것만 같은 침묵이 흐르는 사이 문가에 있던 네 명의 정의수호대원들이 일제히 쇄도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하나는 이회옥을 향하여 신형을 날리기 직전 문 옆에 달려있던 황색 줄을 힘껏 잡아 당겼다. 안에 있는 십육 명의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야압, 죽엇!"
"차앗! 여기도 있다."
"젠장…! 야아압, 운룡포연!"

이회옥은 자신을 향하여 쇄도하는 네 명의 정의수호대원들을 보고 나직이 투덜대면서도 연신 봉을 찔러 넣었다. 불과 일 각만에 일천여 개의 못을 박아 넣는 실력이기에 그의 봉은 바로 곁에서도 진퇴(進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쾌속하였다.

챙! 쨍! 탁! 팅!

"허억! 으윽! 학! 아앗!"

정말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회옥의 봉은 정확히 네 번의 진퇴를 거듭하였고, 한번 나갈 때마다 예리한 금속성을 터뜨렸다. 그렇게 네 번의 금속성이 울려 퍼졌으나 시차(時差)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짧은 간격이었다.

봉의 나가고 들어옴이 워낙 빨랐기 때문이었다.

같은 순간 힘차게 검을 뻗어내던 정의수호대원들은 갑자기 멍청해지기라도 했는지 멍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다급성을 토한 것은 손에서 느껴지는 감당할 수 없는 찌릿함 때문이었다. 게다가 맨 손으로 잡고 있다가는 손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기도 전에 자신들의 애병이 저만치 허공을 선회하며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정의수호대원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같은 소리를 냈다.

"으으으! 이럴 수가…! 세상에 맙소사…!"

"흠! 미안하오. 어쩔 수 없어 방어하였소. 용서하시오."

이회옥이 가볍게 포권하는 동안 정의수호대원들은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들을 죽일 수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는지 흠칫거리기만 할 뿐 움직이지도 못했다. 순간적으로 질려버린 것이다.

"이놈! 네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무엇 하느냐? 어서 저놈을 생포하라!"

"존명!"

십육 명의 정의수호대원들은 동료들의 병장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그들 모두 흙으로 빚은 토용(土俑)마냥 굳어 있자 혈도를 제압당한 것으로 오인하고 즉각 이회옥을 에워쌌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이 있다.

십육 인의 정의수호대원은 찰라의 시간만에 건(乾), 태(兌),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이렇게 팔괘의 방위를 완벽하게 차단한 채 진세를 구축하고 있었다.

나관중이 저술한 삼국지연의에는 제갈량이 서천으로 들어가면서 봉절(奉節)의 어복포(魚腹浦)에 오군(吳軍)의 침공을 막기 위한 석진(石陣)을 펼쳐 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오의 대장 육손(陸遜)도 제갈공명의 장인인 황승언(黃承彦)을 만나지 못했다면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대단한 진세이며, 팔진도(八陣圖)라는 것이다. 이후 팔진도는 세상에 다시 나타난 적이 없어 실전되었기에 전설로만 전해지고 있다.

정의수호대원들이 구축한 진세가 비록 이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한복판에 서 있는 이회옥에게는 결코 평범한 진세가 아니었다.

마지막 장한이 자리를 잡는 순간, 다시 말해 완전히 진세가 갖춰지는 순간 주위 경물(景物)이 확 바뀌었기 때문이다.

좌측은 천야만야한 낭떠러지였고, 우측은 시뻘건 화염이 솟구치는 화구(火口)였다. 앞에는 온통 가시밭이었고, 뒤는 만경창파(萬頃蒼波)가 펼쳐진 것으로 보이고 있었다.

'으읏! 이, 이건…! 음! 이게 바로 진세라는 것이구나. 좋아, 어디 한번 볼까?'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불과 두 호흡만에 이회옥은 냉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기에는 온통 사지(死地)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천문 앞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던 때문이다.

'흠! 팔괘의 방위를 점했으니까 각기 생문(生門), 상문(傷門), 두문(杜門), 경문(景門), 사문(死門), 경문(驚門), 개문(開門), 휴문(休門)을 점하고 있겠지?'

이회옥은 예리한 눈으로 사방을 살펴보면서 예전 다물연공관에 있을 때 우연히 뽑아 들었던 장천보(藏天譜)라는 비급의 내용을 상기하고 있었다.

그것을 읽을 때에는 이렇듯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저 심심풀이로 그리고 진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흥미 위주로 읽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 순간 이회옥의 뇌리는 섬전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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