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00

무림천자성으로 (4)

등록 2003.08.05 10:02수정 2003.08.0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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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상문은 진궁(震宮), 두문은 손궁, 경문은 리궁, 사문은 곤궁, 경문은 태궁, 개문은 건궁, 휴문은 감궁, 생문은 간궁(艮宮)에 위치한다고 했지? 좋아, 간궁이면 동북방(東北方)이다.'

과연 동북방은 다른 곳과 달리 약간의 틈이 있어 보였다. 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이회옥은 황급히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소리 없이 한 자루 장검이 쇄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앗! 운룡파철!"
슈아아아앙! 채채채챙!

워낙 창졸간이었는지라 봉의 끝이 정확히 도신에 격중되지 않아 여러 번 금속성이 터져 나오는 사이 또 다른 검 하나가 배심혈을 겨냥하고 폭사되고 있었다.

이회옥은 등뒤에서 예기가 느껴지자 좌로 반 발짝 이동함과 동시에 신형을 빙글 돌리면서 회수하던 봉으로 검을 쳐나갔다.

"야압! 운룡포연!"
쐐에에엑! 챵―!

"허억!"
"야아압! 운룡포연! 운룡파철! 운룡파철! 운룡포연!…"


후일 문전신투(門前神鬪)라 불리는 대 격돌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문 앞에서 무신(武神)이 싸웠다는 말이다.

한 자루 나무로 만든 봉으로 이십사 정의수호대원을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음은 물론 그들을 완벽하게 제압하였기에 붙은 명칭이다.


처음엔 약간 밀리는 듯 하였다. 하여 무인(武人)으로서 최고의 치욕이라 할 수 있는 게으른 당나귀가 땅바닥을 뒹구는 모습과 같은 뇌려타곤을 펼치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 순간 이회옥의 눈부신 반격이 시작되었다.

무적검은 분명 천하에서 가장 강한 강도를 지닌 병장기이다. 반면 이회옥의 봉은 평범한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다.

따라서 굳이 무적검이 아니라 하더라도 웬만한 검으로도 쉽게 베어낼 수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무적검과 봉이 격돌하였지만 베어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마치 금속과 금속이 부딪친 것 같이 예리한 금속성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무적검이 봉에 밀려버렸다.

이 순간 이후 정의수호대원들은 봉의 움직임이 훨씬 빨라졌다고 느꼈다. 그리고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무가 아닌 쇠로 만든 봉으로 바꿔치는 사술(邪術)을 부린 것으로 느껴졌다.

이것은 검에 의하여 목이 베어질 급박한 순간에 처하게 된 이회옥이 본능적으로 검을 막으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봉이 베어질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저도 모르게 봉을 쥔 손에 힘을 주게되었고 이 절체절명의 순간 봉에 내력이 주입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태극일기공은 천하 어디에든 있는 기를 빨아들여 사용하는 상승 내가심법이다. 이 심법으로 빨아들인 내력을 봉에 주입하자 나무가 아닌 쇠로 만든 것과 같은 강도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외지물(身外之物)에 내력을 주입하는 것이 도통 되지 않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절로 터득된 것이다.

후한 헌제 때 동우(董遇)라는 학자가 어떤 책이든 백 번만 읽으면 그 뜻을 스스로 깨우치게 된다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現)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날 이회옥은 혈전을 백 번만 벌이면 스스로 심오한 무리(武理)를 깨우친다는 의미의 혈전백번리자득(血戰百番理自得)이라는 말을 만들고 있었다.

위기에서 한숨을 돌린 이회옥은 이날 백 번 혈전을 벌인 것과 같은 경험을 얻었다. 무인으로서 의당 갖춰야 할 소중한 경험을 한꺼번에 경험하는 행운을 누린 셈이다.

여유를 되찾은 이회옥은 즉각 제압하는 것보다 정의수호대원들을 상대로 무예를 연마하자는 생각을 하였기에 일부러 손속에 사정을 두며 상대하였다.

이날 또 하나 깨우친 것이 있다면 비록 나무로 만들어진 봉이라 할지라도 내력을 주입한 상태에서 운룡포연을 시전하면 능히 무적검을 산산조각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끊어 치는 수법을 완벽하게 터득한 것이다. 이래저래 이회옥에게는 좋은 경험인 셈이었다.

"하하! 이것 밖에 못하오? 좀 더 힘을 내서 공격하시오. 이런, 아까보다 속도가 많이 느려졌네. 이제 겨우 이천하고 이백 초밖에 안 싸웠는데 벌써 이러면 어떻게 하오? 자고로 영웅이란 십만 초를 겨뤄도 끄덕 없어야 하오. 자, 힘을 내시오."

"이잇! 이놈이 감히 놀려? 이이잇! 죽어랏!"
"하하! 늦다니까. 상대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나를 방비함이 무인의 기본이건만 대체 이건 뭐요? 제 목숨은 돌보지 않고 공격하니 여기가 비잖소?"

이회옥은 쇄도하는 무적검을 피함과 동시에 봉 끝으로 상대의 거궐혈을 슬쩍 밀었다. 굳이 내력을 주입하지 않더라도 제대로만 가격하면 즉각 절명케 할 수 있는 요혈이었다.

이에 정의수호대원은 깜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섰다. 하마터면 죽을 뻔하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 순간 다른 대원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이회옥은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침착하게 응수하고 있었다.

"하하! 당신도 늦소. 아래 가지고 어떻게 정의수호대원이 될 수 있었소? 하하하!"

이회옥은 수없이 쇄도하는 공격을 경쾌한 발걸음으로 슬쩍슬쩍 피하면서 봉으로 상대의 무적검을 툭툭 쳐냈다. 이럴 때마다 상대의 검은 번번이 목표를 잃고 허공을 긋곤 하였다.

한 사람을 둘러싸고 공격할 수 있는 최대인원은 여덟 명이다. 정의수호대원들은 진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상황에서 연신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번번이 헛손질을 할 뿐만 아니라 상대가 점점 더 능수능란 해지자 자신들이 대적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제일 방파인 무림천자성 정문 앞에 와서 이같이 행동할 때에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정의수호대원들은 주변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주변에는 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둘러싼 채 구경하고 있었다.

의심을 품고 보면 무엇이든 의심스러운 법이다. 대원들은 구경꾼들 틈에 이회옥의 일당이 많이 있다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지금껏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았던 향전을 쏘아 올렸다.

향전은 다른 말로 효시(嚆矢)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끝이 뾰족한 인마 살상용과 달리 끝이 뭉툭한데다가 구멍이 뚫려 있어 이를 쏘면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신호용 화살이다.

쓔아아아아앙―! 쓔아아아아앙―! 쓔아아아아앙―!

세 명의 대원이 동시에 화살을 쏘아 올린 직후 또 다시 날카로운 소성이 터져 나왔다.

쓔아아아아앙―! 쓔아아아아앙―! 쓔아아아아앙―!

여섯 발의 효시가 허공을 쏘아진 직후 한가롭던 외원은 난리가 벌어졌다. 근무를 마치고 한가롭게 술잔을 기울이던 자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잠시 생각하다 화들짝 놀라며 잔을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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