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다른 삶의 시작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등록 2003.08.04 19:40수정 2003.08.0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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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반드시 경험해야 할 것 중에는 사랑과 죽음이 있다. 사랑으로써 죽음을 고귀하게 만들기도 한다. 21세 연상의 남편을 만나 53년을 함께 살아온 지혜롭고 현명한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란 책이다.

요즘같이 이혼율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걸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더욱 필요한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부분의 자연물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서로 협력자가 되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때 죽음조차도 떳떳하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이 책은 말해준다.

진정한 부부애도 함께 그려내고 있다. 부부란 서로의 아픈곳을 어루만져주는 존재임을 말해주고 있다. 아름다운 삶은 무엇이고 참사랑은 무엇이며 죽음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접근한 책이다.

구성상의 특징도 보인다. 형식과 내용으로 두 가지다. 형식상으로 보면, 전체가 12장으로 짜여있으나 본문은 1장에서 10장까지다. 나머지 두 장은 본문 외적인 것으로 저서소개와 역자후기에 해당한다. 내용상으로 보면, 남편의 죽음을 통해 진정 죽음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해 과거를 회상하면서 기술하고 있다. 내용을 간단히 살펴본다.

첫장에서는 주인공이자 저자인 헬렌 니어링 즉 헬렌이 남편 스코트의 죽음을 통해 이젠 둘이 떨어져 있어야 함을 깨닫는다. 둘째장은 헬렌이 남편 스코트와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한다. 셋째장은 스코트가 가장 합리적인 사람이었음을 기술한다. 넷째는 가정사를 포함한 헬렌 개인신상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다섯째장은 헬렌이 젊은 시절 사귀었던 청년과의 정신적인 사랑을 추억한다.

여섯째는 스코트와의 두번째만남이자 헬렌이 스코트의 평생 반려자가 됐음을 언급한다. 일곱째장은 남편 스코트와 버몬트에서의 농장생활을 기록한다. 여덟째는 메인으로 옮겨가 새 삶을 시작한다. 아홉째장은 주위에 사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받고 답장한다. 열째는 본서의 압권으로 헬렌이 남편 스코트의 임종을 지켜본다.


본문의 마지막장은 '황혼과 저녁별'이다. 남편 스코트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남편이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헬렌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평생의 반려자란 바로 이런 사람이구나'하고 감탄하지 아니할 수 없다. 느린 템포로 독자인 나의 모든 감각기관을 천천히 자극한다. 머리, 눈, 코, 입, 목, 심장에서 몸 전체로 퍼진다. 결국 몸이 몹시 가벼워져 날아갈 듯하다.

헬렌은 침상에서 서서히 숨을 거두는 남편 스코트에게 말을 건넨다. "여보 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몸이 가도록 두어요. 썰물처럼 가세요. 같이 흐르세요. 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당신 몫을 다했구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세요. 빛으로 나아가세요. 사랑이 당신과 함께 가요. 여기 있는 것은 모두 잘 있어요."


잠시후 스코트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시험이라도 하듯이 "좋-아"라고 말하는 순간 숨을 거두었다. 헬렌은 남편 스코트의 죽음을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갔을 뿐'이라고 표현한다. 헬렌은 죽음을 다른 삶의 시작으로 본 것이다.

본서는 삶의 방식과 사랑의 중요성도 여러 곳에서 제시하고 있다. <먼슬리 리뷰> 편집장인 레오 후버만이 뉴욕 모임에서 스코트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결부시켜 스코트를 소개하면서 한 말 중 일부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여러분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스코트가 생각하는 대로 산 사람임을 강조할 뿐 아니라, '뭐 되는 대로 살지'하고 편의주의적 삶을 사는 사람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19세기 미국 작가이자 편집자인 엘버트 허바드의 말을 인용한다. "건강, 책, 일 그리고 사랑이 더해진다면 운명이 주는 모든 괴로운 고통과 아픔도 견딜 만해진다."
사랑의 중요성을 넘어 사랑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말이 아닐까도 싶다.

살면서 한번쯤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면 죽음을 생각해 본 사람의 수만큼이나 죽음을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개 죽음은 삶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본서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처럼 죽음을 또다른 삶의 시작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보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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