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경 몽캐미꽈? 얼른 옵서"

멸치잡이 배의 멸치터는 풍경

등록 2003.08.05 03:48수정 2003.08.0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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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경 몽캐미꽈? 얼른 옵서"라는 말, 이 말을 들었던 상황에 비추어 보면 "뭘 그리 꾸물 거리냐? 빨리 와!"이런 말인 것 같습니다.
비양도에 들렀다 나오는 길에 마주친 멸치잡이 배를 만난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풍경이기도 했고, 아버지가 딸에게 호통치듯 제주방언을 구수하게 하는 것을 보니 마치 먼 옛날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김민수
작은 멸치잡이 배가 포구에 도착을 하자마자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한산하던 포구가 갑자기 분주해 집니다. 아버지인 듯한 분이 작은 막대기를 들고 배를 기다리던 딸에게 호통을 치듯 "무사경 몽캐미꽈?"합니다. 도무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방법은 없었지만 정황으로 미루어보니 손발을 척척 맞추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의 말인 듯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잡히지 않았구나.'
직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호통에 딸내미가 동네분들에게 빨리오라고 재촉을 합니다.
"얼른 옵서!"
왜 천천히 와서 애꿎은 나만 혼나게 하냐고 항의를 하듯하고, 자그마한 작대기들을 들고 멸치를 털러 동네분들이 모여듭니다.

김민수
먼저 멸치를 털어 넣을 그물을 폅니다.
그물을 편 다음에는 배 안에 있던 그물을 당기면서 본격적으로 멸치타작(?)에 나섭니다. 그물에 걸려있던 멸치들이 그물을 팽팽하게 펴고 막대기로 두드릴 때마다 하늘을 향해 비상을 하다가는 한 곳에 모입니다. 한 곳에 모여진 멸치들은 다시 아래에 펴진 총총한 그물로 옮겨지면서 오늘의 수확을 가늠하게 합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멸치를 털기 위해서는 손발이 척척 맞아야 합니다. 양쪽에서 당기고, 배에서 그물을 풀어주고, 중간에 계신 분들은 부지런히 막대기로 그물을 치는데 거의 한 마리도 그물에 붙어있는 놈이 없을 정도입니다.

김민수
멸치를 터는 모습을 보면서 육지에서 자란 저는 타작마당에서 콩깍지를 털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도리깨로 힘차게 콩을 터시는 아버님 옆에서 작은 막대기를 들고 콩깍지를 털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저는 그 때를 생각하면 책상에 앉아 공부한 것보다 훨씬 귀한 공부를 했다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아련한 추억까지 곁들여졌으니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어린 시절의 공부가 정말 좋은 공부였던 것 같습니다.

김민수
열심히 멸치를 털면서 끌어올린 그물이 점점 높이를 더해갑니다. 무슨 그물이 그렇게도 긴지, 그물을 치고 걷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일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땀흘림을 통해서 멸치가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고 생각하니 앞으로는 멸치 한 마리도 소중하게 여겨야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나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도 멸치 터는 풍경에 푹 빠져서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저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는 것이지만, 언제가 아이들이 나만큼의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아주 특별한 풍경이었길 바랍니다.

김민수
이렇게 멸치를 털러 나올 때에는 아주머니들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어촌계에 속해있는 분들이 모두 나오시겠죠. 무늬는 다르지만 저도 이 아저씨와 똑같은 모자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정감이 갑니다. 구부정한 허리와 굳은 살, 그리고 주름진 얼굴에서 고생하며 자식을 키웠던 전형적인 우리의 부모님들의 모습을 봅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도 내일은 뭔가 달라지기를 소망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김민수
이렇게 모아진 멸치들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뜨거운 여름날 시원한 멸칫국물에 국수를 말아 훌훌 먹으면 얼마나 시원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시원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을 하는 그 순간에도,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쟁쟁하게 귀에 들려오는 재미있고, 구수한 소리가 있습니다.

"무사경 몽캐미꽈? 얼른 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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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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