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도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기를...

자연의 하루를 보면서 느끼는 단상들

등록 2003.08.09 18:30수정 2003.08.12 10:2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지미봉에서

지미봉에서 ⓒ 김민수


풀잎에 맺혀있는 이슬은 참으로 묘한 감흥을 일으킵니다.


신선하고 깨끗하다는 느낌, 그러나 이내 해가 뜨면 곧 사라져 버리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애틋한 이슬입니다.

성서에 청년들을 가리켜 '새벽이슬'같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이슬의 신선하고 깨끗한 느낌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슬방울을 유심히 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이슬은 원형, 그 원형의 세계를 자세히 드려다 보면 아주 작은 이슬방울이건만 그 안에는 나무도 있고, 하늘도 있고, 꽃도 들어있습니다. 온 우주를 품고 있는 것이죠. 맑고 투명함으로 인해 그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이슬의 넉넉함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아주 잠시죠.

해가 뜨고 나면 이내 말라버립니다. 아주 순간의 일입니다. 청년기가 길기만 할 것 같지만 아주 순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죠.


40대 초반이 되니 세월의 속도가 30대와는 많이 다릅니다. 선배들에게 "너무 빠른 것 같아요" 했더니 "50대가 되면 더 빨라지지" 합니다.

청년기라는 것이 나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면, 숫자상의 의미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새벽이슬 같이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들을 많이많이 맞이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봅니다.


a 성산일출봉에서

성산일출봉에서 ⓒ 김민수

아침이슬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달팽이를 만났습니다.

느릿느릿의 지혜를 온 몸으로 깨우쳐 주는 달팽이. 그러나 잠시 눈을 돌려 다른 풍경에 취해있다 보면 어느 새 보이지 않는 민첩한 달팽이의 빠름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천히, 느릿느릿은 게으른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너무 빠르게 살아가다 놓치는 소중한 것들을 찾는다는 느릿느릿의 의미를 음미해 봅니다.

저는 산행을 할 때나 산책을 할 때 천천히 가는 편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곱절의 시간이 걸릴 때도 있지만 걸었던 그 길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오래오래 간직하고 있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을 때 '정상을 보았다'는 말 외에 할 말이 없다면 그 산행은 절반 이상의 실패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가다보면 평소에 보지 못하던 소중한 것들을 만나게 되고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어떤 경우에는 빨리 뛰어가서 잡으려는 것일 때도 있죠.

a 비양도에서

비양도에서 ⓒ 김민수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따가운 햇살이 비추는 한낮에 하늘에 무지개가 걸렸는데 일상적인 무지개 모양이 아닙니다. 달무리는 보았지만 해무리(?)는 처음 보는 풍경이었습니다.

햇살이 무척이나 강하던 날, 아이들이 "아빠, 하늘 좀 봐. 무지개가 떴어요"합니다.

'어, 저건 무지개가 아닌데?'

진풍경이라고 생각을 하며 하늘을 바라보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아이들이 참 건강하게 자라고 있구나 생각해 봅니다. 하늘을 바라보아도 별 볼일 없는 도시에서 사는 아이들은 하늘을 바라보기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어른이 되어 어느 날 문득 '하늘을 바라본 지가 꽤 오래 되었구나'하고 느낀 순간이 있었습니다. 언제 하늘을 보았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분주하게 살던 30대, 조금 천천히 지나가길 바랬는데 그렇게 빨리 지나가 버렸습니다.

가끔씩은 잊어버렸던 것들, 그래서 책상서랍 깊은 곳에 들어있는 것들이라도 찾아보십시오.

그 곳에서 뜻하지 않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a 오설록의 정원에서

오설록의 정원에서 ⓒ 김민수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석양은 이제 한낮의 맹렬하던 기세는 사라지고 부드러운 황혼빛입니다. 자연의 하루를 보니 우리 삶의 여정을 보는 듯 합니다.

'아, 자기의 자리를 내어 주는 그 순간도 저렇게 아름다워야 하겠구나.'

늘 같은 자리에 서서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았을 나무는 초연하게 '또 하루가 저물어 가는 구나. 내일 또 해가 뜨겠지'하는 듯합니다.

가는 것을 붙잡지 않고 보낼 줄 아는 나무, 또 다시 새로운 날을 기약하며 부드럽게 자신의 하루를 접는 햇살 모두가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a 탑동에서

탑동에서 ⓒ 김민수

바다에 섰습니다.

태풍이 몰려온다던 날, 게릴라성 폭우가 내리더니 해질 무렵에 반짝 개었습니다.

'황홀하다.'

그러나 그 황홀한 햇살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은 아팠습니다.

삶의 뿌리를 위협 당하며 살아감으로 인해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아름답다'고 느낄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보내면서 멋있는 장면이라고 찍었던 몇 컷의 사진, 그리고 선택되어져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사진 서너 장… 그것만이 소중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나의 삶을 정리하면서 그런 아름다움을 간직한 순간들 서너 컷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3. 3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