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소포 한 상자

등록 2003.08.13 09:27수정 2003.08.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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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포를 받고 나서 고맙다고 전화나 한 통 넣어줘야지 했다가 하루 이틀 지나고, 결국 지금은 전화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지난 4일 군에 입대를 해서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을 터이니 서로 소식을 전하려면 조금은 시간이 걸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에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목사님, 나 ○○인데 군대가기 전에 목사님을 뵙고 싶어서 제주도 왔어요."
"그래, 얼른 와라."

그렇게 온 친구는 제주여행을 하지도 못하고 때맞추어 있었던 여름성경학교 교사강습회에 참석을 해서 드럼을 연주해 주었고, 그 친구 덕분에 오랜만에 드럼에 맞추어 기타를 신나게 칠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호흡이 잘 맞아서(아니, 그 친구가 호흡을 잘 맞춰 줍니다) 척하면 척이지요.

그 친구는 드럼뿐만 아니라 기타도 클래식에서 베이스기타까지 능숙합니다. 내가 가르쳤던 후배에게서 기타를 배운 그 친구에게 기타 한 수 배우고는 군대에 잘 갔다 오라고 서울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런 소포를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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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내용물을 보시는 순간 어디에 소용되는 것인지 아시겠지요? 교회 음향기를 여기저기 점검해보고, 기타를 만져보곤 하더니 돌아가서 이것저것 챙겨서 보낸 것입니다.

키타줄에 카포, 잭, 튜너까지 골고루 넣어 보냈습니다.


"아이고, 이 놈이 나를 감동시키고 있네. 여보, 이것 좀 봐라. 이 기타줄이 제일 비싼 건데 이걸 다 사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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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소포 상자에는 간단한 글이 써 있습니다. 아주 짧은 글이지만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누군가에게 이렇게 마음 깊이 사랑 받는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기타, 청소년 시절 3만원이면 통기타를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언감생심이지만. 낙원상가를 돌면서 조금이라도 좋은 기타를 구하기 위해서 발품을 팔고, 서비스로 잘 끊어먹던 1번 줄을 덤으로 몇 개 얻어오는 일을 잊질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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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카포는 반음처리를 하는 데 편리한 도구입니다. 저는 별로 사용을 하지 않아서 카포를 방치해두었더니 녹이 슬었습니다. 그 친구가 그걸 본 모양입니다.

오랜만에 카포를 끼고 기타를 쳐 봅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것이라서 불편합니다. 그래도 정성이 담겨 있으니 종종 사용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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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더 좋은 것도 있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기타줄 중에서 상품에 속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에야 돈이 넉넉하지 않으니 기타줄이 끊어지면 그것만 갈았지만 기타줄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 전체를 갈아주어야 제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안 이후로는 대체로 한꺼번에 줄을 갈게 됩니다. 두 개나 보내 주었으니 현재 있는 것까지 하면 2년 동안은 기타줄 걱정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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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튜너도 보내주었습니다. 늘 피아노에 맞추어서 줄을 맞추었기에 피아노 음이 잘못되었어도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었는데 잘 되었습니다. 이참에 튜너를 이용해서 거꾸로 기타로 피아노 조율을 하는 것도 생각해보 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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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사용하고 있는 잭이 짧아서 활동반경이 좁았는데 아주 긴 것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잭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연결 부위는 완전히 금색. 우리 교회 앰프가 조금 특이해서 어떤 잭은 들어가질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까지 고려해서 어느 앰프와도 연결할 수 있는 잭을 보내 주었습니다.

나를 울린 소포 한 상자의 내용물은 위와 같습니다.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그 친구와 나만의 수많은 사연들이 들어있기에 더 아련합니다. 그 친구가 제대해서 이 곳을 방문할 때까지 그 친구가 보내준 기타소품들을 잘 사용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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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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