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만한 이 주의 새 책들

<대밭에서...> <음란과 폭력> <가시면류관 초상> <떠돌이의...>

등록 2003.08.03 13:05수정 2003.08.0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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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통해 인생을 읽어내다
- 홍승면의 <대밭에서 초여름을 씹다> 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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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우반

생활의 상향평준화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먹을 것인가'라는 처참한 고민대신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즐거운 고민을 가져다줬다. 최근엔 한국에도 음식·요리전문 케이블 TV까지 생겼으니 이제 '먹는다'는 것의 문제는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닌 21세의 화두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이런 추세에 발 맞춰 음식칼럼 혹은, 맛집기행 등을 묶어낸 책도 이미 몇 년 전부터 출간러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런 책들에는 그저 '음식' 이야기뿐 음식을 통해 다른 것을 성찰하는 고민이 빠져있다. 최근 출간된 <대밭에서 초여름을 씹다>와 <꿈을 끼운 샌드위치>(삼우반)는 바로 이런 아쉬움에 뭔가가 허전했던 독자들의 무릎을 치게 한다.

1946년 합동통신사 기자를 시작으로 <한국일보>와 <동아일보> 등에서 명쾌한 문장으로 필명을 날리다가 75년 동아일보 광고사태 때 언론계를 떠났던 홍승면(1983년 타계)이 20여 년 전에 출간한 <백미백상(百味百想)>을 재출간한 <대밭에서...> <꿈을 끼운...>의 가장 큰 미덕은 음식을 통해 인생을 들여다보는 풍류와 운치가 곳곳에 묻어있다는 것이다.

그 미덕은 세기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감성적 즐거움과 함께 지적인 만족감을 넉넉하게 제공한다.

저자는 꽁치와 새우젓, 탕평채와 비빔밥을 설명함에 있어 <동국세시기>와 <자산어보> <조선상식문답> 등 우리의 고전과 소동파와 도연명, 처칠과 토마스만 등 동서양 학자와 정치가를 인용하는 독특함을 보인다.


책에서 무시로 만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홍승면의 애정과 해박한 지식은 '음식이란 그저 배를 채우는 수단'이라는 세간의 말들이 터무니없는 낭설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게다가 옛날에는 흔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먹거리를 안타까워하며 환경보존을 역설하는 저자의 말에서는 현대사회의 환경파괴를 예언한 선지자의 모습까지 읽힌다.


홍승면의 음식칼럼을 읽는다는 것은 음식을 통해 인생을 읽어내는 기쁨인 동시에 음식과 함께 인생을 곱씹어 보는 즐거운 체험에 다름 아니다.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대밭에서 초여름을 씹다>는 죽순(竹筍) 먹는 것을 고풍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성(性), 수치와 폭력의 역사
- 한스 페터 뒤르의 <은밀한 몸> <음란과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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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길사

'유럽의 중세만이 충동을 통제하는 인간 유형을 탄생시켰으며, 그러한 인간형은 동물적인 선사시대 인간에 비해 격정이나 정서, 공격성 따위의 본능에 대한 통제력을 현저하게 잘 발휘했다'는 노른베르트 엘리아스의 지적은 과연 타당성이 있는 것일까?

독일의 문화사학자 한스 페터 뒤르의 <은밀한 몸>(박계수 역. 한길사)과 <음란과 폭력>(최상안 역)은 엘리아스의 이론이 '서양인들이 중세 이전의 서양 문화와 이민족의 문화를 잘못 인식하고 자기들만이 문명화되었다는 믿음에 기초하여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수단'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뒤르가 반박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건 오늘날 서유럽인들이 다양한 수단과 목적으로 사용하는 신체의 노출과 폭력화의 대상이 된 성(性).

저자는 그간 사회적 금기로 간주돼왔던 인간 신체 특정 부위에 관한 거침없는 논의전개와 포르노그라피에 가까운 수많은 삽화와 사진을 통해 '인간의 본능이 본성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문명 이전의 단계다'라는 기존의 통설을 전복시키고 있다.

그 독특한 방법 탓에 독일에서 이 책들은 '사람들이 붐비는 시내 전차나 해변이 아닌 조용한 방에서 혼자 읽어야 할 책'으로 분류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인간 속에 살고 있는 악마
- 박상우의 <가시면류관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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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과연 '신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자비로운 존재'이고 '인간의 본성은 천사'일까? 삶의 고비마다에서 만나는 고통과 절망이 선한 마음만으로 치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당신의 심장 속에는 혹 악마가 살고있는 것은 아닐까? 박상우의 소설 <가시면류관 초상>(문학동네)이 던지는 질문들은 아프다.

갓 스물에 아버지를 숨긴 첫 아이를 낳는 어머니, 아들보다 10살이 어린 새 아내와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버지, 동생의 연인과 살을 섞는 '나'. <가시면류관 초상>에서 그려지는 세상과 인간은 처참하고 참혹하다.

도대체가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들. 그들 앞에 나타나 죽음과 궤멸을 종용하는 악마 '세이턴(Satan)'의 유혹.

건조하고 처절한 문체로 사랑을 통한 구원이 아닌 '파괴에 의한 종말'의 기이한 아름다움 설파한 박상우의 신작소설은 독자들에게 '천사의 피가 아닌 악마의 피가 면죄부가 될 수도 있다'는 반종교적이며 생경한 깨달음을 준다. 섬뜩하지만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새로운 체험이다.

경험으로 빚어낸 해외여행 지침서
- 김경숙의 <떠돌이의 여행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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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률영어사

'해외여행을 위한 영어 가이드북'을 자처하는 책들은 숱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이 표현이나 문장을 나열하고 부록을 추가하는 형식의 천편일률적인 것들이라 고르기가 쉽지 않다.

대한항공 통제계획팀에서 근무하는 김경숙이 출간한 <떠돌이의 여행 영어>(능률영어사)는 북미와 유럽, 동남아 등 세계 13국을 직접 여행한 저자의 체험이 녹아들어 기존의 책들과는 여러 가지 점에서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실제 여행 경험에서 나온 상황별 대화문과 표현을 중심으로 한 회화, 원어민 발음의 한글 병기, 제스처를 통한 의사전달 방법 등의 꼼꼼한 서술은 그간 독자들의 불만을 많은 부분 해소해줄 듯하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조그만 책이지만 그 속에 기내와 공항, 숙소와 쇼핑센터, 공연장과 식당에서 쓰일법한 기초회화를 대부분 담아냈다. 가히 '작은 책 큰 기쁨'이라 할만하다.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권할만하다.

음란과 폭력 - 성을 통해 본 인간 본능의 역사

한스 페터 뒤르 지음, 최상안 옮김,
한길사, 2003


대밭에서 초여름을 씹다 - 홍승면의 백미백상 1

홍승면 지음,
삼우반, 2003


가시면류관 초상

박상우 지음,
문학동네, 2003


떠돌이의 여행 영어

김경숙 지음,
능률영어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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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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