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안보고 왜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나

[김재홍 칼럼] 본질 비켜가고 호도하기도... 낯 두꺼운 보수신문들

등록 2003.08.05 22:12수정 2003.08.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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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아마도 취임후로는 가장 강도 높게 언론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2일 청와대와 정부의 장차관급 거의 전원이 참가한 국정토론장에서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의 공격적 연설을 다시 보는 듯했다.

보수 신문들은 '국정이 산적한데 언론문제를 주요 이슈로 삼다니'라고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주관적인 비판일 뿐이다. 국정 최고책임자와 장.차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언론문제가 심도깊게 토론됐다면 당연히 그것은 국정의 중대사이다.

어쨌든 국정 책임자가 문제점을 강조했고 그것에 대해 보수 신문들의 저항이 표출됐으니 이제는 말 그대로 우리사회의 의제설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6월 2일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6월 2일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별은 안보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보수언론들

노 대통령은 언론이 의제설정을 엉뚱하게 한다고 개탄했다. 한시간 이상 연설했는데도 본질 문제는 보도하지 않은 채 말투에 대한 시비에만 열을 올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마치 아이들에게 하늘의 별을 가리키며 설명하면 그 별을 찾는 게 아니라 손가락만 쳐다 보는 것과 같은 식이다. 별의 모습은 관찰하지 않고, 손톱이 너무 길다느니 손에 흙이 묻어 있다는 식으로 본질이 아닌 문제에 관심을 쏟는 것이 한국 보수신문들의 행태다.

그런 저런 언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민주사회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조중동처럼 국민여론을 독과점적으로 지배하는 신문이 그렇다면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중동 세 보수신문이 중앙일간지 시장의 74.5%를 독과점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사연구 결과다. 또 그런 막강한 '공익 기업'을 특정 족벌이 3, 4대에 걸쳐 독점적으로 소유해 왔다. 그래서 우리의 국민여론은 몇몇 언론 족벌의 손아귀에 2중적으로 독과점돼 있는 셈이다.

노 대통령과 정부도 문제다. 언론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에 이르렀다면 이 정권이 내세운 개혁과제 중 우선순위로 자리매김해야 옳지 않겠는가. 그래야 심도있는 대책 마련과 그 실천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조중동을 정면으로 비판한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야말로 구질서의 붕괴 신호로 여겼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정부가 출범한 뒤 시간이 갈수록 그게 아니었나 싶었다.

정부당국의 가판신문 구독 폐지, 출입기자제 폐지, 기자실 개방, 브리핑제 전환까지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은 그런대로 제법 잘 전개됐다. 그러다가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언론 사주들과 만나게 하는 것을 검토한다는 개혁역행적 방안이 흘러 나왔다.

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출국하기 전 편집·보도국장들과 만난다는 것은 명분이라도 있지만, 사주들과의 회동이라는 발상은 참으로 엉뚱했다. 내각의 고위관료들은 물론이려니와 노 대통령과 코드를 같이한다는 청와대 실세 참모들 조차 이제 언론과의 싸움은 그만하자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새 언론정책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언론과의 관계 재설정도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신문들의 공동배달제 지원 같은 것이 논의되다가 별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의 '인터넷 국정신문'을 만든다는 것도 국정홍보에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당연한 구상이었는데 여론의 반대에 부닥쳤다. 정당한 정책을 펴는데도 사전 홍보논리가 너무 부족해서 추진 에너지가 훼손됐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a 지난 1월 20일, 서울시내 한 아파트 단지에서 신문 판촉활동을 위해 세워놓은 수십 대의 자전거 앞을 한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 1월 20일, 서울시내 한 아파트 단지에서 신문 판촉활동을 위해 세워놓은 수십 대의 자전거 앞을 한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신문고시제 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지금도 아파트 동네마다 중국산 자전거니 선풍기니 또는 진공 청소기를 갖다 떠맡기면서 신문 6개월치만 구독해 달라는 위규 판촉행위가 판치고 있다.

유가지를 표방하면서도 무가지를 대량으로 찍어서 집집마다 구독 의사도 확인하지 않은 채 무단 투입하는 '묻지마 배달'이 끊이지 않는다. 조중동의 발행부수가 자칭 2백여만부라고 하지만 그 독자중 연평균 40% 이상이 신문을 끊거나 다른 것으로 바꾼다는 것이 신문 마켓팅 전문가들의 얘기다.

큰 신문일수록 경품과 무가지 무단투입이 아니면 판매부수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래서 독자는 신문 선택권을 갖기는 커녕 거대 신문사 조직의 위규 판촉행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도 책임있는 공정거래위는 팔짱을 풀지 않고 있다.

민언련이 지난 달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의 신문지국 109개 중 88.1%에 해당하는 96개가 신문고시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각한 시장 왜곡이다.

대규모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사들은 신문 시장구조에 대해 '독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참으로 얼굴 두꺼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것들은 언론의 본령을 개혁하는 정책이 아니다. 언론의 환경에 대한 개선책일 뿐이다.

탈세 '언론 자유'는 사교집단의 종교 자유

언론 본령의 개혁이란 첫째가 언론사의 소유제한이고 둘째는 편집권 독립과 그 행사방식의 민주화다. 이를 위해서는 정기간행물법과 방송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런 언론 정책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라 해서 불가침의 성역이 아니다. 그 보다 앞서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언론 자유는 보호될 수 없다.

예컨대 언론 자유보다도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가 선행돼야 할 기본권이다. 따라서 소속 기자와 논설위원들의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편집권은 보호될 수 없다.

언론의 자유가 언론사나 언론인의 비리를 비호하는 방패막이여서는 안된다. 탈세나 부조리를 저지르는 언론사가 언론의 자유를 내세운다면 그것은 사교집단이 종교의 자유를 운위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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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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