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기분에 언론정책 좌우돼선 안돼

[유창선 칼럼] 노 대통령 발언, 박수보다 걱정이 앞서는 이유

등록 2003.08.07 08:28수정 2003.08.07 16:46
0
원고료로 응원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토론회에서 토로한 언론관련 발언을 놓고 보수신문 등이 연일 공격을 퍼붓고 있는 가운데 언론계 안팎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6일자로 '보수언론 책임론'을 강조한 김재홍 논설주간의 칼럼을 게재한데 이어 유창선 논설위원의 또 다른 주장을 소개합니다. 이 논쟁은 계속 이어질 것이며, 네티즌 여러분들의 동참도 적극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한동안 언론에 대해 인내하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언론에 대해 갖고 있던 불만들을 격하게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의 특권에 의한 횡포는 용납할 수 없다"며, 언론의 공정한 시장경쟁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부부처가 단호한 법집행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원래 예정된 일정이라고는 하지만, 때마침 공정거래위원회는 언론사의 불공정거래 행위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이 강조한 '언론시장의 공정한 경쟁'같은 문제는 이미 언론시민단체들이 현정부 출범 초부터 주문해왔던 과제이다. 오히려 정부가 주어진 책임조차 다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관련
기사
- 별은 안보고 왜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나

그렇다면 언론개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며 환영하고 나설 일이다. 그런데 어쩐지 개운치가 못하다. 잘했다고 박수를 보내기가 어려운 분위기이다. 무엇때문일까.

출발이 너무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언론을 향한 노 대통령의 이번 비판 역시 청와대와 관련된 일련의 보도와 관련되어 있다. 성난 노 대통령의 말 속에서 그러한 동기가 이미 짙게 배어나고 있다.

가까이는 '청와대 386 음모설' 보도, 양길승 전 실장 '향응' 파문 보도의 내용들이 노 대통령으로 하여금, 결국 언론에 대한 '단호한 법집행'을 강조하게 만들었음을 읽을 수 있다.

정부가 공정거래법과 신문고시에 따라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런데 그동안 미루어져왔던 그같은 조치가 왜 하필이면 대통령의 '진노'와 동시에 시작되어야 하는가. 결국 청와대를 향한 언론의 보도태도, 그리고 그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에 따라 정부의 언론정책이 좌우된다는 지적을 피하기가 어렵다.


탈권위주의를 표방한 정부가 그같은 기준에 따라 언론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모습으로 비쳐져서는 곤란하다. 그럴 경우 정부가 어떠한 의미있는 조치와 정책들을 내놓더라도, 결국 정치적 논란거리로 변질되어버림을 우리는 익히 경험한 바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메이저 언론과의 화해를 도모하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자 그때서야 세무조사의 칼을 빼들어, 결국 언론개혁 문제를 정치적 논란거리로 변질시켰던 상황은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메이저 언론들이 노무현 정부를 어떻게 대해왔는가를 여기서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다. 마치 독자들에게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결론이라도 주입시키려는 듯이, 노무현 정부를 흔들어댈 건수만 생기면 '침소봉대'하며 대서특필했던 것이 그들이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뻔히 아는 사람에게도 노 대통령의 강력한 발언들에 박수를 쳐줄 마음이 선뜻 생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깊이 돌아볼 일이다.

언론개혁과 관련된 정책을 추진하려면 일관성 있는 목표와 일정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지, 언론의 보도자세를 보아가며 마음에 들면 놔두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법의 칼을 빼드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때부터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한 여론은 언론개혁 차원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정권에 대한 찬반투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과연 언론개혁 정책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까지 확대가능할지는 매우 불확실해 보인다.

다른 모든 국정사안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당사자간의 첨예한 갈등을 수반하게 되어 있는 언론개혁문제는 기본적인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언론문제와 관련된 노 대통령의 화법은 국민의 마음을 잡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초래한 주범으로 언제나 언론을 꼽는 모습이고, 이는 메이저 언론들에 의해 '언론탓'으로 표현되고 있다.

물론 일부 언론의 음해에 가까운 확대 과장보도가 참여정부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국정토론회같은 자리에서 대통령은 정부의 부족함을 자성하고 심기일전을 다짐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먼저 보여주는 것이 순서였다.

그리고 나서 언론 탓을 해도 늦지 않다. 자신에 대한 성찰의 모습은 없이 곧바로 언론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 지금 언론을 향한 노 대통령의 '충분히 근거 있는' 문제제기가 그저 '언론탓'만 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는 원인이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청와대와 조·중·동간의 자기중심적 대결이 아니다. 국민을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대결하는 모습으로 치달아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있고 난 뒤, 조·중·동이 연일 몇 개 면을 할애하며 총반격에 나서 '지면의 사유화'라는 비판을 받은 것이 단적인 예이다. 그런데 국민의 존재를 잊고 메이저 언론과의 승부에만 매달려 있는 모습은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최근 물의를 빚은 양길승 전 실장 사표수리 문제와 관련하여 노 대통령은 "(경질하지 않으면) 후속보도가 나와 청와대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권고때문에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이유가 그것이라면 수리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사표를 수리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은 양 실장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인사로서 청와대의 윤리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때문이었지, 조·중·동이 난리를 피웠기 때문은 아니었다. 조·중·동과의 승부에 집착하는 오기는 넘치지만, 정작 국민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 모습이다. 조·중·동만 의식한 피해의식이다.

좀더 냉정해져야 한다. 언론개혁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그 자체의 논리로 결정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제도와 정책을 가지고 언론을 개혁하려 해야지, 정치적 판단과 정치적 (때로는 감정적) 대응을 앞세우며 언론을 개혁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런 방식의 언론개혁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 노무현 정부가 언론개혁이라는 칼을 빼들려 해도, 언론개혁을 바라던 사람들조차 박수를 쳐주기보다 양비론을 펴게 되는 상황의 의미를 읽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 노 대통령의 말이 있은 이후, 조영동 국정홍보처장은 언론의 사설·칼럼 내용에 대해서도 "사실을 전제로 했더라도 침소봉대되어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거나, 매우 악의적인 의도로 쓰였을 때 여러 법적인 구제절차를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나 자신이 칼럼을 쓰는 사람으로서 불쾌한 생각이 앞선다. 내가 쓰고 있는 이런 글도 '싫은 소리'로 분류될 경우, 언제 청와대나 정부의 법적 대응 혹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그렇다. 물론 '악의적인'이라는 조건이 따르기는 하지만, 도대체 '악의'와 '선의'를 누가 판단한다는 것인가.

언론의 오보에 대해 정당한 대응을 통해 바로잡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언론의 주관적인 논조를 가지고 정부가 씨름하는 일은 지나친 일이다. 문제가 있으면 법에 따라 대응하면 되는 것이지, 정부가 '미디어비평'까지 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정부는 권력이다. 권력이 칼럼과 사설의 필자들을 일일이 논박하는 일이 진행되면, 자유로운 토론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고 그것이 압박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언론의 논조에 대한 감시와 평가는 시민사회와 독자들에게 맡기고, 그 시간에 정부는 다른 할 일들을 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 다른 할 일들이 넘치고 또 넘치지 않는가.

언론문제에 대해 대통령과 정부의 좀더 사려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4. 4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5. 5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