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은 결코 왜소하지 않은 사람들

[인터뷰]작은키 모임 회장 김현수씨

등록 2003.08.06 09:57수정 2003.08.06 17:14
0
원고료로 응원
a 김현수씨

김현수씨 ⓒ 김병희

"저희 회원들은 모두 천사예요. 아마도 참는 게 많고 마음을 다스리면서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스님이었다면 죽어서 사리가 참 많이 나올 거예요. 하하하."

작은키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건축사 김현수씨는 연골무형성증을 앓고 있는 왜소증 환자이다. 워낙 성격이 강해 운동과 공부 등 무엇이든 열성적으로 했다. 그런 김씨지만 작은키 모임 회장을 쉽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작은키 모임(L.P.K : Little People of Korea) 후원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현주 아주대 교수의 권유를 처음에는 극구 사양했다. 그러다 자신과 같은 희귀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그들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될 수 있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어렵게 결정하게 된 것이다.

초대회장인 황회동씨의 가족이야기를 담은 '작은 거인 4형제'가 TV에 방영된 것을 계기로 발족된 이 모임은 현재 활동하는 회원 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김현수씨는 아직도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사람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현수씨는 어머니로부터 "너는 남들보다 키가 좀 작을 뿐이지 다를 게 없다"는 이야기를 늘 듣고 자랐다. 그는 아직도 당시 공직에 계셨던 어머니를 아주 강하셨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현수씨에게도 사춘기는 시련의 시기로 남아 있었다.

어린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놀릴 때 더 참을 수 없었다는 그는 '당신도 아파봐라'며 같이 대응하곤 했다. 그랬던 현수씨가 '모든 사람들이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된 건 종교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전체 상위권이었던 성적이 뚝뚝 떨어지자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현수씨에게 종교는 사춘기 시절 우울증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으며 마음의 위안이었다. 종교활동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그에게 아버지는 "너 하나 잘못돼서 가족들에게 걸림돌이 되느니 차라리 죽어라"라고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대학 때 진한 연애를 했다는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겠다고 스스로 판단한 연인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도 맛 보았다. 또 약대에 지원한 후 '실험실습대' 사용의 어려움이라는 이유로 전과를 권유받았던 쓰라린 기억도 안고 있다.

"건축은 종합예술입니다. 그때 전과 했던 게 오히려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이렇게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행복하구요, 교회 100개만 짓고 가는 게 제 소원입니다."


건축사가 되기 위한 목표로 현장에서 누구보다 많이 흘렸다는 그의 구슬땀은 이제 이 땅의 키 작은 친구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현수씨는 직업문제로 고민하는 회원들에게 '전문인'이 되라고 충고한다. 또한 2세를 걱정하며 임신을 망설이거나 결혼 때문에 고민하는 회원들에게는 '자신있게 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아픔을 딛고 견뎌야만 좋은 그릇이 만들어진다며 그들 부모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다.

연애 3개월만에 '낚시론'을 펼쳐 프로포즈에 성공했다는 김현수씨는 슬하에 2남 1녀를 둔 가장이다. 키가 작은 남편 때문에 마음이 아파 '작은거인 4형제' TV프로그램을 못봤다는 아내는 작은키 모임을 통해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건강한 아내를 만나서 건강한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기도 하지만 자녀 중 누군가가 왜소증을 앓고 있어도 잘 키울 자신이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처럼 말이죠."

왜소증 환자들은 얼굴 모습도 많이 닮아 남 같지 않다는 생각이 더 든단다. 길 가다 만나면 '작은키 모임 회장' 문구가 담긴 명함을 내밀며 '꼭 연락하라'고 말한다는 현수씨는 "나이를 먹으니 철이 들었나 보다"며 환하게 웃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2. 2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3. 3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4. 4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5. 5 대법원에서 '라임 술접대 검사 무죄' 뒤집혔다  대법원에서 '라임 술접대 검사 무죄' 뒤집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