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 죽음의 주범은 '남남갈등'

[김재홍 칼럼] 기업과 정부의 보완적 결합으로 남북정상회담 일궈

등록 2003.08.07 01:39수정 2003.08.0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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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4일 새벽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계동 사옥 12층 사무실에서 투신자살했다. 서울아산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빈소에 김대중 전대통령의 조화가 놓여져 있다.

4일 새벽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계동 사옥 12층 사무실에서 투신자살했다. 서울아산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빈소에 김대중 전대통령의 조화가 놓여져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정몽헌 현대 아산재단 이사회 회장의 죽음은 대북 포용정책과 대북사업에 대한 우리 사회 내부의 이른바 '남남갈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나라당과 보수 신문들은 김대중 정부의 무리한 햇볕정책이 결국 고인을 궁지로 몰아 넣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민주당과 네티즌들은 대북송금을 수사한 특검과 그 이후 이어진 일반 검찰의 조사, 그리고 사회적인 매도 분위기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무리한 햇볕정책론이나 검찰수사 책임론이라는 두가지 상반된 입장에는 공통점 한가지가 깔려 있다.

고인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끌려 북한에 돈을 보내고 금강산 관광 같은 수익성 없는 대북사업에 나섰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다른 점은 대북정책 수행상의 기밀을 수사하는데 대한 찬반이다.

정주영-정몽헌 부자의 대의가 정부정책 종속이었나

나는 정몽헌 회장의 대북사업을 정부 정책에 종속된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전후사실을 모르거나 순수하지 않은 저의 때문이라고 본다.

정몽헌 회장의 대북사업 의지는 선친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뜻을 계승한 것이다. 그리고 정 명예회장은 지금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 출신 실향민으로서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대북 경제개발 투자에 남다른 의지를 갖고 있었다.

정 회장은 지난 3월 대북송금에 대해 해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관광사업과 공장건설을 둘러싸고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느라고 거액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대북사업을 위한 투자에 대해 통일부가 제대로 결정을 해주지 않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또 그는 금강산 육로관광 길이 처음 열리기 전날 선친인 고 정 명예회장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는 돈벌이 못지않게 선대의 유업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데 의미를 둔 모습으로 읽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고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현다이'로 더 많이 알려진 세계적 재벌그룹 총수로 대성했지만 그 개인은 고향에 가지 못하는 한 많은 실향민이었다. 죽을 때도 고향 쪽에 머리를 둔다는 수구초심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독특한 정서다.


현대그룹의 대북의향서 체결은 1989년 1월

사실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현대의 대북사업이 김대중 정부 아래서 이루어졌지만 그 시작은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 명예회장이 북한 측과 대북사업 의향서를 체결한 것은 1989년 1월이다.

그는 그해 2월2일 북한에서 돌아와 기자회견을 갖고 '휴전선을 통과하는 금강산 관광'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외에도 러시아 극동지구 개발에 남북한 공동진출, 원산의 조선수리소와 철도차량공장의 합작 등 3개항이 의향서 내용이었다.

당시는 노태우 정부가 공산권과 실질적 경제협력과 교역을 개방한다는 북방정책을 발표한지 반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북방정책은 경제계의 진언에 영향받은 것이며 여기서도 정 명예회장의 역할은 컸다.

그러나 현대의 대북사업 의향서는 노태우, 김영삼 정부아래서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 때문에 실천되지 못하고 10년 세월을 허송해야 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초기엔 현대의 대북사업 의향서를 추진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무리였다. 정부가 정경분리에 의한 민간기업의 대북투자 활성화조치를 발표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대북투자는 승인을 받아야 했다.

정경분리의 의미는 남북당국간 대화가 안되더라도 민간 차원에서 대북 교류협력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한데 있었다. 그러나 고인이 밝힌대로 통일부는 큰 규모의 대북사업에 대해서 잘 승인해 주지 않고 미적거렸다.

기업과 정부의 보완적 결합으로 남북정상회담 일궈

비정치적 분야의 대북교류라 해도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계가 분명하다는 경험적 사례다. 김대중 정부 초기까지는 경제, 문화, 스포츠 등 비정치적 영역의 교류확대가 남북간 평화를 보장하리라는 기능주의 이론에 바탕한 대북정책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민간기업이 대북 사업권을 따낸들 정부가 결정해 주지 않으면 대규모 투자가 불가능하다. 더구나 1999년 6월 남북간에 금강산 관광선이 오가는데도 서해교전이 터지는 상황에서 기능주의적 대북정책은 새로운 전환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궁극적으로 남북 당국간에 정치군사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평화가 보장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과 대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대륙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대만 기업의 투자와 인적 교류는 남북한 보다 훨씬 더 두꺼웠다. 그러나 중국과 대만 사이의 군사적 긴장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제아무리 경제협력과 인적 교류가 활발해도 양 당국간 정치군사적 관계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평화가 보장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증거다. 비정치적 교류협력이 확대, 축적되면 상호의존성이 생기고 거기서 평화가 이루어지리라는 기능주의 이론은 궁극적으로 옳지 않은 셈이다. 이는 유럽통합 과정에서도 검증된 신기능주의적 인식인 셈이다.

정주영 명예회장 부자는 기업이 대규모 대북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정치적 결정을 해주어야 하며 남북한 당국간 대화가 필수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김대중 정부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 분위기를 보장하기 위해 남북당국간 회담이 절실했다.

정 회장 부자의 민족사업과 실향 정서 기려야

남북당국간 대화는 역대 어느 정부아래서도 우선적 과제였다. 그래서 정부와 현대그룹의 인식이 딱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다. 대북송금과 남북정상회담은 이처럼 신기능주의에 의한 민간기업과 정부의 상호보완적 결합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죽음을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민족문제와 함께 인간적 정서까지도 정략화하려는 구역질나는 행태에 다름 아니다. 아버지 정 명예회장과 그 후계자 정몽헌 회장이야 말로 정부 정책에 앞서 대북사업의 대의를 펴기로 결정했으며 거기엔 분단체제에 억눌린 우리가 한없이 애달퍼해야 할 인간적 정서가 서려 있는 것이다.

고인에게 타살 흔적은 없다고 한 경찰 발표를 귓전에 흘리면서 우리 사회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한 공동정범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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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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