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행복한 사람, 미야자와 켄지

북위 40도, 일본 기타도호쿠 기행 (9) - 이와테현

등록 2003.08.08 10:30수정 2003.08.0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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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호텔 출입구에 있는 켄지 작품 <바람의 마타사부로>에 나오는 피리 부는 소년상

호텔 출입구에 있는 켄지 작품 <바람의 마타사부로>에 나오는 피리 부는 소년상 ⓒ 박도

이와테현을 뒤덮은 미야자와 켄지 이야기

16: 00, 뿌연 우연 속에 모리노가제 오오슈크(森の風鶯宿)에 도착했다. 이곳은 여관이나 호텔이라기보다 하나의 큰 온천 타운으로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a 모리노가제 오오슈크 전경

모리노가제 오오슈크 전경 ⓒ 박도

온천은 대중탕 가족탕 대절탕 등 그 종류와 규모가 다양했고, 중앙 풀장은 한겨울인 데도 마치 남국의 해변을 연상할 만큼 야자수가 서 있고, 파도까지 치게 해서 바다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일본인의 상술은 세계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울 정도라니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털기에 이 정도의 시설투자는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정작 놀랐고 마냥 부러웠던 것은 이 호텔을 뒤덮고 있는 미야자와 켄지의 기념물이었다.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첫 눈에 띄는 게 미야자와 켄지의 <바람의 마타사부로(森の又三郞)>에 나오는 '피리 부는 소년상'이다. 호텔 로비 한편에는 별도의 전시실이 마련된 바, 이 갤러리에는 미야자와 켄지의 열렬한 팬인 여배우며 도예가요, 화가인 유우키 미에꼬(結城美榮子)씨가 꾸며 놓은 켄지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이나 동물들의 도예인형(陶人形)과 청동조각 작품들이 가득 차 있었다.

자기 고장의 한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한 호텔에서 갤러리를 만든다는 것도 드문 일이거니와, 작품에 매료된 나머지 작중 인물이나 동물까지 자신의 작품으로 재창조한 유우키 미에꼬씨의 미야자와 켄지에 대한 열정도 높이 평가할 만했다.

미야자와 켄지의 자취는 그곳만이 아니었다. 층계를 오르내리는 곳에는 켄지의 유년 시절, 학창 시절의 사진이 게시돼 있는가 하면, 계단 모서리 기둥마다 켄지의 작품 속의 장면들이 인형으로 재현되어 유리상자 속에 담겨 있었다.


a 온천 풀장

온천 풀장 ⓒ 박도

내가 미야자와 켄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하자 구로다가 따라다니며 보충 설명을 했다.

시인이요, 동화작가인 미야자와 켄지(1896. 8. 27. - 1933. 9. 21.)는 이와테현 하나마키(花卷)에서 출생했다. 이와테의 풍토와 사람, 바람과 구름에 따라서도 마음이 흔들렸던 그는 순수한 시, 풍부한 상상의 동화를 많이 남겼다.


그는 고향 모리오카(盛岡)고등농림학교에 다니던 중 일련종(日蓮宗)에 심취했다. 졸업 후 한 때 동경에 가 있었으나 누이동생 도시코의 병 때문에 귀향해서 히에누키(稗貫) 농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시와 동화를 썼다.

1924년 <봄과 수라>와 동화집 <주문이 많은 요리점>을 출판했다. <봄과 수라>은 몇몇 사람으로부터 격찬을 받았지만, 널리 읽히지는 않았다. 농민의 삶을 알고 싶어 학교를 퇴직하고 스스로 농업생활을 실천하면서, 농업과학 연구와 농사 지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종교와 자연과 과학이 융합된 독자적인 소재를 다루었고 일련종의 신앙에 기초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동화로는 <주문이 많은 요리점>, <바람의 마타사부로>, <은하철도의 밤> 등 100여편이 있고, 시에는 <비에도 지지 않고>, <영결(永訣)의 아침> 등 400여편이 있다. 1933년 37세의 아까운 나이에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다.

구로다는 내가 쓴 작품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와 항일유적답사기로 중국대륙을 답사한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와 얼마 전에는 <아버지의 목소리> 등 10여 편의 작품집을 냈지만, 여태 무명작가라고 했다.

a 어린이에게 떡방아 절구질을 가르치고 있다

어린이에게 떡방아 절구질을 가르치고 있다 ⓒ 박도

그는 미야자와 켄지도 살아서보다 죽은 후에 더 이름이 났다면서 내가 듣기 좋게 한 말인지 자기는 유명 작가보다 무명의 작가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19: 00, 이 호텔 산사테이라는 구내식당에서 로바타야끼(생선이나 고기 등을 화로에 직접 구워 먹음)라는 요리를 먹으면서 전통 다이코(大鼓) 축제를 관람했다.

내가 본 일본의 민속 축제는 모두 북소리에서 시작되었다. 다섯 명의 젊은 고수들이 북을 두드리자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듯, 관객들이 금세 환호했다. 관객은 그날 이 호텔에 투숙한 손님들이었는데, 가족단위로 관람했다.

가수가 나와서 민요를 부르면서 떡방아에 인절미를 넣어 어린이들에게 절구질을 시키면서 고유 음식 만드는 법을 전수시켰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요를 부르면서 일본인으로서 결속을 다지고 추억을 심어주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놀이에서도 다음 세대에게 자기네 고유문화를 전수하는 데 아주 철저해 보였다.

a 일본의 민속 축제는 북소리에서 시작했다.

일본의 민속 축제는 북소리에서 시작했다. ⓒ 박도

외래의 것 중에서 좋은 것만 받아들이는데 그것도 철저히 일본화해서, 나중에는 본토에 역수출하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나라가 일본이었다. 자동차, 카메라, 각종 전자제품이 모두 그러하다.

21: 00, 나는 다시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미야자와 켄지의 자취들을 더듬었다. 자기 고장의 작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쌓여 위대한 작가를 탄생시키고, 그로 인해 고향이 더욱 명소가 되고 있었다.

작가를 사랑하고, 그의 작품을 널리 읽는 풍토로, 일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등 그 새 두 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나 보다.

위대한 작가는 아무 곳에서나 나오지 않는다. 그를 사랑하는 풍토에서만 나오나 보다.

a 켄지의 학창시절과 유년시절

켄지의 학창시절과 유년시절 ⓒ 박도

a KENJI WORLD GALLERY

KENJI WORLD GALLERY ⓒ 박도

a 켄지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과 소품들

켄지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과 소품들 ⓒ 박도

a 켄지 작품 <눈 건너기)>의 한 장면

켄지 작품 <눈 건너기)>의 한 장면 ⓒ 박도

a 켄지 작품 <기타모리 장군과 의사 삼형제>의 한 장면

켄지 작품 <기타모리 장군과 의사 삼형제>의 한 장면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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