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배워요"

마근담 한농 농업학교 다니는 용준이와 혜민이 남매

등록 2003.08.11 15:27수정 2003.08.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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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영
“방학되면 학교에 가고 싶고 학교에 가면 집에 가고 싶어요.”
“방학이라 등산을 못하니까 아쉬워요. 학교에선 산을 뛰어 다녔거든요.”


학교에 가면 노는 것이 좋아 자는 시간이 아깝다는 용준(5학년)이와 혜민(3학년)이 남매는 경남 산청에 위치한 마근담 한농 농업학교에 나란히 다니고 있다.

마근담 한농 농업학교는 이른바 왕따, 폭력, 탈선이 없는 대안학교다. 어머니 최윤정(35)씨는 “가장 경쟁력 있는 사람이란 외부영향을 받지 않고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것 같아요. 아이들이 일반 학교에 다닐 수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이 되도록 자연을 통해 교육을 진행하는 농업학교에 보냈어요”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마근담 농업학교는 보통 아이들이 상상하기 힘든 새벽 3시~4시경이면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 등산을 하거나 명심보감을 배우며 명상의 시간을 갖고, 6시에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도 고기는 먹지 않으며 오직 자연을 담은 생감자나 천연식으로 해결한다. 국어, 수학, 한문, 영어 등 여느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외에 노작(勞作) 시간이 따로 있으며, 사물놀이를 배워 노인정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너무 졸려서 못 일어났지만 지금은 작은 소리에도 일어날 수 있어요.”
아이들은 씨앗을 심어 키운 것들을 직접 먹을 수 있는 노작 시간이 가장 재미있다며 벌써부터 개학한 후 학교에 돌아가 고구마를 캘 생각을 하고 있다. 산을 뛰어다니며 자연과 벗 삼아 생활하다보니 도롱뇽 알, 가재 알, 나무 열매 등에 관심이 많다. “사슴벌레, 장수풍뎅이도 학교에 키워요”라고 자랑하던 용준이는 멧돼지 얘기에 열을 올린다.


지난해 10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농업학교. 그곳에서 아이들은 자연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배워나가고 있다. 얼마 전 할머니댁에 간 혜민이는 할머니가 견과류를 드시다가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얼른 줍더니 “할머니는 좋은 거 드셔야 돼요”라며 새것을 드렸단다. 엄마, 아빠를 못 보고 먼저 잠드는 날에는 “엄마 사랑해요.” “엄마 방 깨끗이 치워놨어요” 쪽지를 적어놓는 예쁜 아이들이다.

권윤영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 복숭아를 깎아줘도 제일 좋은 건 무조건 어른을 주더라고요. 어쩌다 제가 마음 상해 있으면 그것을 풀어주려고 노력해주죠. 겉과 속이 같고 조금이라도 거짓이 없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숙제를 자기 전까지 하라는 말을 지키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 일기를 쓴 다음 검사를 맡은 용준이는 선생님께 솔직히 말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에는 다소 무뎠지만 학교생활을 통해 양심을 일깨워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혜민이는요, 일찍 일어나고 잘 먹어요. 저보다 더 많이 먹거든요. 근데 가끔 저한테 말대꾸를 하는 게 단점이에요.”

“오빠는요, 저랑 재밌게 놀아줘요. 제가 어쩌다 울려고 하면 오빠가 와서 웃겨주고요. 다른 사람이 저 때리려고 하면 쫓아와서 뭐라고 해줘요. 하지만 잠 많이 자는 거랑 잘 우는 건 고쳐야 돼요. 엄마 얘기 들으면 자꾸 우는데 제가 옆에서 꼬집어줘도 울어요.”

요즘은 방학이라 5시에서 6시에 일어나는 아이들은 TV도 잘 보지 않는다. 대신 방학기간에 장구나 오카리나를 배우며 빈 시간을 채워나가고 있다. 장구와 오카리나도 용준이와 혜민이가 원해서 배우고 있는 것.

용준이는 “과학자도 되고 싶고, 경찰도 되고 싶고, 사물놀이 선생님도 되고 싶고, 소방관, 파일럿, 기차 운전사도 되고 싶어요.”
혜민이는 선생님, 가수, 경찰, 군인, 요리사, 옷을 수선 해주는 사람 등 꿈이 100가지도 넘어 고민이란다.

권윤영
대안학교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도 있고, 대학교도 있지만 바깥세상에 대한 욕심 때문에 끝까지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지만 최윤정씨는 대학까지 대안학교로 보낼 생각이다.

“흙처럼 물처럼 자연의 순리대로, 양심의 소리대로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행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곧 아이들의 행복일 테니까요. 사랑, 행복을 줄 수 있는 마음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렇게 자랄 것이라고 확신하고요.”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갈 준비를 하는 용준이와 혜민이. 혜민이가 장구를 들자 용준이는 이내 자신이 들고 있던 가벼운 가방과 장구를 바꿔주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다.

돌아가는 애들에게 비 오는 날은 싫겠네 하자 돌아온 대답은 “아니요. 다 좋아요”다. 자연을 벗 삼아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날대로,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의 밖에서 뛰노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듯 차츰 성장해나갈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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