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문학사
혁명에 복무하는 시가 아름다웠던 시절 1980년대. 당시 발간돼 수만 독자의 가슴에 분노와 눈물의 힘을 심었던 백무산(49)의 <만국의 노동자여>와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는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과 함께 '변혁운동의 무기가 될 수 있는 시'의 가능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생활과 체험이 담보된 빼어난 노동시를 선보였던 백무산이 최근 5번째 시집을 상재했다. 이름하여 <초심(初心)>(실천문학사).
이번 시집에서 백 시인은 보다 깊어지고, 넓어진 사유와 세계인식을 보여준다. 지난 시절 그의 시가 날 것의 강렬함이었다면, <초심>은 지천명의 농익은 풍성함이라 할만하다.
그렇다고, 백무산의 시가 마냥 부드럽고, 상냥해진 것만은 아니다. 바뀐 세기에도 여전히 자행되는 자본에 의한 인간탄압을 그는 좌시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백무산은 여전히 '시인'보다는 '전사(戰士)'에 가깝다.
예컨대 이런 시를 보라.
통일영웅이 되어 그가 돌아왔다/평생을 이윤만을 위해 살아온 그가/일생을 오직 돈벌이만을 위해 초지일관/투쟁적으로 살아온 장사꾼이/오직 자신과 가족의 재산 불리는 일을/일생의 과업으로 삼고 흔들림 없이 살아온 그가/어느 날 통일영웅이 되어 돌아왔다…(위의 책 중 '통일 이데아' 부분)
현대와 고 정주영 회장의 대북사업이 결국은 자본의 무한확장을 위한 기업가의 야심이었을 뿐, 통일에는 어떤 도움도 준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백무산에게서는 1980년대의 결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시의 마지막 그는 이렇게 외친다. "죽어 개값도 받지 못한 수많은 얼굴들 그 허기진 얼굴들이 어른거리고, 가슴이 북받"친다고. 그 개값도 받지 못하고 죽은 노동자의 불행을 강요한 재벌의 죽음을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다고.
하지만, 세상은 많이 변했다. 노동자의 현실도 과거와 비교한다면 일정 부분 나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에게 '무기'가 아닌 '꽃'으로서의 시도 필요하지 않을까?
섬진강 강마을에 핀 매화를 보며 다음과 같이 읊조리는 백무산을 볼라지면 <초심>은 무기가 꽃으로 진화하는 아름다운 변화의 과정인 듯하다.
돌담에 붉은 매화 한 그루면/천지 가득 매화였습니다…꽃은 한 송이라도 세상 가득함에/모자랄 것이 없습니다 ('매화가 지천인데도' 부분)'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모든 것
- 김인환의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문학 탐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