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선 퀸텟

[나의승의 음악이야기 29]

등록 2003.08.15 12:35수정 2003.08.1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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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선 Quintet(퀸텟)의 Light for the People이라는 음반이 있다. Voix(브와.목소리), Piano, VibraPhone(비브라폰), Contre Basse(콩트르바스), Batterie(바트리.타악기)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분명 프랑스에서 만든 음반이다.

우연히 칸느 영화제의 상영작품들을 안내하는 소책자를 본 적이 있는데, 국제 영화제임에도 불구하고 90%의 불어와 10% 정도의 각 나라 언어가 조금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국적불명의 영화제가 될 위험은 결코 없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내세울 영화제일 것이다.


파리의 거리 표지판이나 간판은 영어 등의 다른 언어를 발견하기 어렵고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 보르도나 부르고뉴에서 만든 와인들에는 그들의 언어를 대충이나마 읽어 알지 못하면 문외한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인쇄물들이 붙어 있다.

그런 나라 프랑스에서 연주하는, 어쩌면 한국사람으로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 재즈 음악인 '나윤선'. 그녀의 목소리는 일반적인 서구의 재즈 가수들에 비교했을 때 거칠지 않고 말랑말랑한 편이며 부드럽다. 혹시 고전음악을 하다 전향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알아보니 오히려 불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대개 재즈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녀가 유럽의 재즈 명문 CIM(씸)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불문학을 전공한 것이 인연이 된 것 같다. 졸업 후 그들의 권유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녀는 우리 주변에서 가끔 발견되는 사람들처럼 어떤 길을 걸어가다 문득 가야할 다른 길을 발견하고 순식간에 길을 바꿔 버린 늦둥이일 것이다. 늦둥이면 어떠랴 수없이 많은 재즈연주가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결코 흔하지 않은 음악언어를 가진 좋은 음악가인 것을….

여기서 참고삼아 말해 볼 것은, 같은 씨앗도 땅이 바뀌면 다르게 자라고 다른 꽃이 핀다. 재즈는 미국에서 시작된 음악이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나라에 살아 있는 문화일 것이다. 특히 유럽의 재즈는 미국의 그것과 거의 역사를 같이 한다.

20세기 초반 재즈의 종주국인 미국에 전혀 뒤지지 않은 '쟝고 라인하르트'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고 지금도 좋은 연주자들은 유럽의 다양한 재즈 페스티발과 재즈클럽의 무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풍토가 달라서 조금은 맛이 다르다. 대개 '스윙감'에서 뉘앙스가 조금씩 다르거나 절제하는 느낌이 더 강한 편인 것 같다.

그렇다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재즈는 같은 곡을 연주 한다 해도 100명의 연주를 들으면 100가지 경우의 연주가 나오고 한 사람이 같은 곡을 100번 연주한다 해도 100번 모두 다르다. '즉흥성(Improvisation)'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악이고 '연주자 중심'의 음악 쟝르이기 때문이다. 재즈 이전에 그런 생각을 담은 음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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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음악가 '나윤선'이 세계무대에서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음악언어를 보여 주는 것에 대해서 그녀가 한국인인 것과 좋은 클래식 음악가의 부모를 둔 것은 충분한 설명과 이해의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러한 그녀는 그런 재즈의, 그런 유럽의 재즈무대 에서 활동하고 있다. 'Light for the People'음반은 연주, 음질 등에서 좋은 내용을 갖추고 있다. 그보다 앞에 나온 음반 'Reflect'에 비해서도 그렇고, 무게가 적당하면서도 부드러운 보르도의 어느 와인을 맛보는 듯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장 유명한 라틴음악 중 하나인 'Besame Mucho(베사메 무초. 5분 41초)'는 사람들의 귀를 묶어두려 할 것이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 보니 외롭기 한이 없네.....' 익숙한 가사에 Nostalgia(연주시간.4분46초)라고 제목 붙여진 이 곡은 '고향 생각(현제명)'이라는 가곡이며 재즈5tet의 연주로는 처음 있는 경우일 것이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한국의 음악이 되고 고향 사람들에게는 '모국어'의 값을 주는 편한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된다.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는 최근 '한민족 리포트'라는 TV프로그램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한 내용의 기록물은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에도 목적이 있을 것이다.

국민소득 2만불을 바라본다 말하고 "한국에는 건축가도, 화가도, 음악가도 없어"라고 누군가 함부로 말한다 해도 목소리 높여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힘이 없는 우리들의 풍토. 평당 수천만원에 이십 몇평의 아파트가 10억에 가까운 콘크리트 구조물이 존재하는 나라.

"세상 어디를 다녀 보아도 내 고향의 초가집보다 더 아름다운 집을 나는 보지 못했다"라고 했다던 '오지호'선생의 말을 기억한다(최근 광주光州 국립박물관에서 '빛을 그린 화가 오 지 호'라는 타이틀로 전시회가 우여곡절 끝에 열렸다). '초가집'이란 너무도 오래도록, 5천년 한국역사의 바탕이 되어온 농업문화를 대변하는 상징(Cultural Symbol)일 것이다.

그런 의미의 초가집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나는 그분의 '남향'이라는 작품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고 그래서인지 그 그림만 생각하면 슬프다. 그런 문화적 배경을 가진 우리는 그리 크지도 않은 이 땅을 콘크리트 세계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나라에서 교육받고 보통사람으로 성장한 그녀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주인공을 했는가 했더니 지금은 재즈 무대에서 아름다운 재즈 연주가가 되어 있다. 그녀와 같은 사람이 적어도 몇 백 명쯤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어느 재즈클럽에서는 배가 나온 노신사가 비싼 양주를 한잔씩 돌리고 그의 애청곡을 신청했는데 연주자들은 악기를 두고 모두 나가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 내가 모르던 것,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배려, 또는 관용은 프랑스에서는 '똘레랑스'라는 단어로 대변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아직 남아 있는 음악에 대한 편견을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쪽 나라에서 활동하게 된 것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 보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또 한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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