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못난 것만 거두는 건 아닙니다

작은 텃밭을 일구며 그 속에서 얻는 소중한 교훈들

등록 2003.08.15 20:50수정 2003.08.1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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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텃밭을 가꾸며 흙을 만지고, 씨앗을 뿌리고, 김도 매면서 직접 씨앗을 뿌린 것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작은 행복입니다.


아주 어린 싹이 행여나 바람에 쓰러질까, 뜨거운 햇살에 타죽지는 않을까 애를 태우다가도 어느새 무성해진 채소들을 거두어 식탁에 올릴 때면 그 모양새가 비록 못생겼더라도 나의 손길이 닿은 것이라 가장 맛있게 느껴집니다.

먹을 것을 수확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수확은 씨앗을 뿌리기 위해 밭을 가는 과정부터 거두는 과정들을 통해서 삶의 소중한 교훈들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늘 못생긴 것만 거두는 것은 아니랍니다. 지난해에는 무를 얼마나 실하게 키웠던지 보는 사람들마다 시장에서 사는 무보다 더 좋다고 하셨고, 무값이 한창 비쌀 때라서 나누어주는 맛도 좋았습니다.

거두어 보아야 알겠지만 현재 동부와 검은콩, 호박, 치커리는 다른 밭과 비교해 보아도 나의 작은 텃밭도 뒤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오늘 '콩밭 매는 아낙네야~'를 열심히 부르며 콩밭을 매는 길에 수확한 것들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민수

소쿠리에 가지, 방울토마토, 동부, 호박, 찰옥수수를 우리 식구가 오늘 저녁 먹을 만큼 거두어 보았습니다. 방울토마토는 4개밖에 안되니 내가 양보를 하면 우리 식구들 하나씩 먹을 수 있을 것이고, 동부는 밥에 넣어 먹으면 꿀맛일 거고, 호박은 후라이팬에 지글지글 지져서 간장을 찍어 먹으면 맛있는 반찬이 될 것이고, 가지는 쪄서 갖은 양념을 골고루 해서 오몰조몰 무쳐놓으면 될 것이고, 찰옥수수는 후식으로 먹으면 오늘 밤 심심치 않을 것 같습니다.

김민수

"애들아, 옥수수 따왔다."
"와, 아빠 그런데 오늘도 립스틱 짙게 바른 옥수수 따왔어?"
막내가 쪼르르 달려와 옥수수를 봅니다.
"아자, 립스틱 옥수수, 진짜 맛있는 옥수수!"


찰옥수수가 완전히 여물기 전에 땄더니 붉은 기운이 도는 게 마치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바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에 막내에게 "용휘야, 옥수수가 빨간 립스틱 바른 것 같지 않니?"했더니 막내가 '립스틱 옥수수'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입니다.

김민수

오늘은 립스틱옥수수만 딴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검게 변한 찰옥수수도 있습니다.
"용휘야, 이건 흑가면이다. 정의의 흑가면 옥수수."
"우와! 누나들 나와봐. 오늘은 아빠가 흑가면 옥수수, 립스틱 옥수수 따왔다."
신이 나서 소쿠리를 들고 뛰어 다니는 막내의 모습을 보며 행복이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아빠, 나 오늘 립스틱 하나, 흑가면 하나 먹을게."
"그래, 하나님이 잘 키워 주신 것이니까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자라거라."

김민수

한창이던 방울토마토는 제철이 지난 탓인지 익은 것이 많지 않습니다.
더 두었다가는 떨어질 것 같아서 익은 것만 따보았더니 식구는 다섯 식구인데 달랑 4개입니다. 하나씩 먹으려면 하나가 부족하니 제가 양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입니다. 정말이지 내가 심어 키운 것을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민수

동부는 콩보다 까기가 쉽지 않더군요.
다 익은 다음에 따야할 지,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을 하다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얘야, 마르기 전에 따서 밥에 넣어 먹으면 맛있다."
정말 맛있게 생겼습니다.

오늘 거둔 것들은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못생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겉과 속이 모두 알찬 것 같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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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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