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여 장막을 벗어라

어둠의 장막을 뚫고 우리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등록 2003.08.20 06:41수정 2003.08.2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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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주 동북부 일대가 암흑에 갇히는 대규모 정전 사태가 지난 주에 있었다. 마침 뉴욕에서 필자를 방문한 고교 동창과 샌프란시스코의 필모아 아파트에서 TV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발전소 21개의 가동이 중단 되면서 교통과 통신이 두절되는 이번 사고로 인한 손실 금액이 자그마치 200억(직접 피해 50억) 달러에 달하며 5000여만명이 피해를 입었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4만여명의 경찰이 동원되어 치안을 강화하면서 주 방위군이 나서 약탈과 폭동에 대비했고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는 가운데 비상 사태가 선포되었다. 도로는 물론 지하철과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승객들이 당황하면서 겪었던 공포는 9.11에 못지 않다. 오하이오주의 노후된 송전 시스템과 준비 없는 전력 소비가 부른 인재로 보인다.

불 꺼진 뉴욕의 저녁 거리에 군중들이 뛰쳐나오고 걸어서 부르클린 다리를 건너는 인파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우리네 삶과 현실은 어디쯤 가고 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저토록 급급한 인생의 한 모퉁이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세계 최첨단국에서 무방비한 행정이 부른 실책을 보며 준비된 인생이라는 테마 속에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언뜻 떠올랐다. 남기고 가야 하는 인생의 막바지에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그 단순한 듯하지만 깊은 관조의 뜻은 과연 준비된 인생의 단편이다.

인생이란 지나고 돌아보면 그 행적이 초라하기 그지 없다. 일찍이 교육과 연극사업에 꿈을 두었건만 지구를 한바퀴 돌아 나오는 역정 속에 무역전사의 야망은 허물어졌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장막에서 깜박거리고 있다. 과연 이땅에 무엇하러 왔던가. 궁극의 풀리지 않는 혼돈의 인생을 끌어안고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참으로 헛되고 부질없음이다.


a 안개 젖은 골든 게이트 브리지

안개 젖은 골든 게이트 브리지 ⓒ <크로니클> 제공

최근 연이어 몸을 던지는 자살 행각이 심한 경종으로 귓전을 때리면서 당당하게 몸을 던질 만큼 자신감을 가져 보인 그들 앞에서 차라리 필자는 초라한 헛 몸이요 껍데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남은 인생 중 성취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며 현재 그에 대한 노력을 미룬 채 우리는 기약없는 일상의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지고 미래의 불확실성은 높아간다.

지난 봄에 북가주 기자 동료들과 함께 찾았던 곳, 샌프란시스코의 서북쪽 바닷가인 보데가 베이의 안개 자욱한 해변을 산책하며 뉴욕에서 온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래 사장 위에 펼쳐 놓은 안락의자에 앉아 한권의 책을 읽고 있는 등이 굽고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의 모습 속에 작은 행복의 안식이 엿보였다.


그 편안한 자태에 초월한 노년의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세월 속에 고개 숙인 완숙의 아름다움이 그 속에 있었다. 하얀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파도의 물결에 개의치 않고 준비된 생과의 숭고한 이별 앞에서 책을 대하는 할머니의 머리 위로 환한 불빛이 비추고 있었다.

정신적 정전사태에서 허덕이는 필자를 구출하기 위해 멀리서 날아온 녀석의 우정에 손을 부비며 이제 그만 짐을 꾸려 남은 여정을 향해 먼 길을 떠나야 하리. 나에게 글쓰기와 비지니스의 최초를 가르친 곳 뉴욕의 여신상을 향해 헤어진 발톱과 날개 조각으로 한번만 더 날아야 하리.

신이여 한 개체의 못다한 최후의 도전을 받아 주소서.

그리하여 그의 꿈에 날개가 펴지는 모습을 기대하소서.
갈매기의 날개짓 이는 하늘을 눈 들어 굽어 보소서.
뉴욕의 장막이 걷히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어둠이 깔린 땅
우리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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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하 기자는 미조리 주립대애서 신문방송학을 수학하고 뉴욕의 <미주 매일 신문>과 하와이의 <한국일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시사 주간신문의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부동산 분양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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