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이 밤새워 연구하는 이유

리처드 파인만의 <발견하는 즐거움(The Pleasure of Finding Things Out)>

등록 2003.08.20 09:15수정 2003.08.2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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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산
"이제 알겠소? 우리 과학자들이 밤새워 연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짜릿한 발견의 순간, 발견하는 즐거움에 이르기 위해서라 이겁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리처드 파인만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발견한 양자 역학의 새로운 전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파인만의 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그 위대한 발견에도 불구하고 전혀 굽힘이 없는 유머 감각 그리고 도전적 정신이 그를 다른 과학자들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이유들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권위를 부정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끊임없는 호기심을 열어두라'는 교육을 받은 파인만은 부친의 가르침처럼 항상 무언가에 대한 의심과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에 대한 소감을 얘기하는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왜 과학적 탐구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밝힌바 있다.

"나는 그 전에 이미 상을 받았어요. 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보다 더 큰 상은 없습니다. 사물의 이치를 발견하는 그 짜릿함, 남들이 내 연구 결과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런 것이 진짜 상이죠. 내게 명예라는 건 비현실적인 거예요. 나는 명예라는 걸 믿지도 않아요. 그건 나를 괴롭히기만 합니다. 명예는 귀찮아요."

파인만은 잘 들어맞지 않는 것들, 절대 불변할 듯 보이지만 작은 변칙들이 나타나면서 깨어지는 법칙들에 대해서 관찰과 탐구의 대상으로 파악한다.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 공간이 바로 이 세계이고, 그것들을 탐구하여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과학자의 임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새로운 법칙이라는 것이 꼭 들어맞아야 할 필요는 없다. 법칙은 새로운 변칙을 갖고 있을 수도 있으며, 결국 끊임없이 그 법칙과 변칙들을 탐구하는 정신만이 바로 과학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논리는 '불확실성의 원리'라고 칭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불확실성 속에 존재하지만 그 가운데에 자잘한 법칙을 발견해 나아가는 것이 바로 과학인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확신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나는 전혀 모르는 것도 많지요. (중략) 그 의미를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만, 생각해도 알아낼 수가 없으면 나는 다른 의문으로 넘어갑니다. 나는 반드시 답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고, 뭔가를 모른다는 것이 두렵지 않고, 미스터리인 이 우주에서 길을 잃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헤맨다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살고 있어요. 나는 그게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과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서도 파인만은 그 나름의 논리적 생각을 갖고 있다. 과학 교사들을 위한 강연회에서 그는 기존의 과학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과학적 지식을 주입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비록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러분이 학생들에게 뭔가를 관찰하도록 가르치려면, 뭔가 놀라운 것이 거기에서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나는 과학이 무엇인지를 그렇게 배웠습니다. 과학은 인내였어요. 여러분이 지켜보며 관찰을 한다면, 그리고 주의를 기울인다면, 거기서 커다란 보상을 받게 됩니다. 반드시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밑바닥에서 본 로스앨러모스'라는 장에서 파인만은 원자 폭탄 제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는 당시에 대학원생으로서 원자 폭탄 제조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임을 알았지만, 독일이 그것을 먼저 개발하기 전에 만들어 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원자폭탄 제조에 대해서 과학자들의 도덕적 책임을 묻는 사람들이 많은 비난을 던지지만, 이 장을 읽다보면 그가 순전히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고 이 과정에 참여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폭탄 제조를 주관한 사람들은 미국 국방성이고 과학자들은 그저 순수한 동기, 과학적 탐구욕에 불타 그 과정에 뛰어든 것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윤리적 책임에 대해서 굳이 변명하거나 회피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게 바로 파인만이 가진 긍정적 사고인 것이다. 그의 이와 같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는 그의 연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과학자들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파인만은 그 나름의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과학자들이 좀더 정확성을 갖기 위해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데에 유리한 것들만을 증거로 채택하지 말고 모든 증거를 취해야 함을 역설한다.

"증거를 찾은 다음에 우리는 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증거를 판단하는 데는 통상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들만 고르는 것은 옳지 않으며, 모든 증거를 취해야 하고, 항상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권위에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략) 관찰이 권위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가능한 한 권위를 무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과의 기록은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내가 가장 중요하고 가장 진지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확실성과 의심에 관한 것입니다. 과학자는 결코 확신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진술은 확실성의 정도가 다른 근사적인 진술임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진술이 이루어졌을 때, 문제는 이것이 참인가 거짓인가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참, 혹은 거짓인 것 같은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빠지게 되는 오류가 바로 기존 이론에 대한 지나친 신뢰와 의존일 것이다. 파인만은 이러한 과학자들의 태도와 사고에 대해 경계를 보인다. 그는 '이것이 알아야 할 모든 것' 혹은 '이것이 모든 것의 답'이라는 식의 확정적인 답을 지금 결정하지 않는 것이 과학자들의 책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러한 확정적인 방향으로 몰려가면 우리는 자유를 잃고 상상력의 한계에 부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끊임없는 탐구와 의심, 도전, 호기심의 세계가 바로 과학의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탐구의 장을 여는 데에 리처드 파인만의 이야기들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그가 발견한 양자 역학 또한 이와 같은 끈질긴 탐구 정신에서 비롯된 산물임을 볼 때에, 우리 시대의 많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도전을 통해 더 나은 발견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발견하는 즐거움

리처드 파인만 지음, 승영조 외 옮김,
승산,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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