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빨리 와. 뭐해. 촌스럽게"

신호등을 안 지키는 아이들, 그리고 나의 반성

등록 2003.08.20 09:56수정 2003.08.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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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횡단보도 신호등에는 빨간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수업이 막 끝났는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아이가 학원에서 나와 신호등을 무시한 채 막 차도에 발을 내딛으려는 것을 제가 막아서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빨간 불이잖아. 빨간 불이 켜지면 멈추고, 파란 불이 켜지면 가는 거잖아”

말을 해놓고 보니 미적분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초급 산수를 가르친 격이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것이 못마땅했는지 두 학생 중 하나는 내 손을 뿌리치고 길을 건너갔고, 좀 순해 보이는 다른 한 아이는 엉거주춤 제 곁에서 파란 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야, 빨리 와. 뭐해. 촌스럽게.”
“응, 알았어.”

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가더니 결국 뒤에 남은 아이도 빨간 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건너고 말았습니다. 저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이 촌스럽다니! 법을 지킨 쪽에서 오히려 죄를 지은 듯 쩔쩔매는 꼴은 또 뭐란 말인가. 저는 두 아이를 뒤쫓아가서 혼을 내주든지, 아니면 한 번 더 알아듣도록 말을 해주든지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길을 먼저 건너간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의 눈이 어떤 적개심으로 활활 타올랐다면 조금은 덜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저를 낯선 사람을 대하듯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의 눈빛은 신호등이 없던 시절에 살다가 갑자기 동네에 낯설고 이상한 풍경이 하나 생겨 마음이 불편해진 어느 노인의 눈빛을 닮아 있었습니다.

어느 해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반 아이들과 물놀이를 가기 위해 약속 장소에 모여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몇 아이가 갑자기 건너편 가게에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버스가 올 시간은 불과 3분. 멀리 떨어진 횡단보도를 이용하든, 아니면 근처 지하도를 이용하든 3분 만에 가게를 다녀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한사코 3분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표정이 너무도 확신에 차 있어서 저는 허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저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당연히 지하도를 이용할 줄 알았던 아이들이 차가 무섭게 질주하는 도로를 향해 뛰어든 것입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다시 도로를 무단 횡단하여 되돌아온 시간은 불과 1분이 걸릴까 말까 했습니다.

그 다음이 또 문제였습니다. 한 아이가 자기도 가게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저는 얼른 시간을 계산했는데, 제 머릿속에는 이미 지하도를 이용한다는 생각은 지워지고 없었습니다. 쉽고 빠른 쉬운 길을 놓아두고 고생스럽게 지하도를 건너는 것이 고지식하고 미련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2분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허락을 했고, 그 아이가 길을 건너오고 나서야 저는 뼈아픈 후회를 했습니다.


교육은 한 순간이 중요합니다. 한 순간 편의주의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것을 없었던 일로 하고 아이들에게 정직과 원칙의 도를 강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고, 이번에는 그랬지만 다음에는 꼭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엎지러진 물을 다시 그릇에 담으려는 허망한 수작에 불과한 것이지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행동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그것은 배움의 기회를 갖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도 모자라 학원을 전전하는 성실(?)한 아이들의 눈빛이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갖기에는 배움의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을 어느 노인의 눈빛을 닮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날 물놀이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잠깐 정색을 하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선생님이 여러분께 잘못한 것이 있어요. 아침에 여러분이 무단 횡단을 하도록 내버려 둔 거요. 여러분이 차를 타고 가는데 누군가 갑자기 차도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해보세요. 화가 안 날까요? 조금 불편해도 규칙을 지키는 것이 결국은 내 자신에게도 좋은 거예요. 오늘 선생님의 잘못을 용서하기 바라겠어요.”

숨을 조절하며 간신히 말을 마치자 아이들의 표정이 뜻밖에도 진지했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저러시나 하면서도,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하고 있는 저를 새삼 신뢰하는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잘못한 사람은 자신인데 담임이 사과를 하는 것이 미안했는지 눈빛이 유순해지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 눈빛과 끄덕임을 저는 교육에 대한 작은 희망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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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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