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우리와의 공유점을 찾아가는 책

에드워드 홀의 <문화를 넘어서>

등록 2003.08.23 15:06수정 2003.08.2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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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세계화’라는 화두는 이제 쳐다보는 이 드문 낡고 빛바랜 깃발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서 펄럭이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정보통신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이제 우리는 안방과 사무실에서 실시간으로 세계와 연결되며, 또한 생활수준의 향상에 힘입어 세계를 우리의 온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해외여행, 해외출장, 해외유학 등)도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는 이제 우리의 현실이 되었기에 잊혀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경선이 갈수록 희미해져 언어의 장벽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문화의 장벽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한 오해와 충돌은 개인적으로는 해외여행의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되겠지만,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유혈전처럼 국가적ㆍ민족적 재앙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자신의 문화를 넘어서서 남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상실되고 소외된 본연의 자아를 다시 찾기 위해서도 문화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를 넘어서>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그의 책은 그 이유와 방법론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억압이 인류의 진보를 가능하게 했다는 프로이트의 견해와는 달리, 에드워드 홀은 오히려 인류의 진보가 억압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은 자신의 연장물들―언어, 도구, 제도 등―을 발전시켜 왔지만, 이른바 ‘연장의 전이’ 현상에 의해 자신이 창조한 그 연장물들을 통제할 능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오히려 그 연장물들의 구속과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인간의 본성은 다양한 형태로 억압되고 말았다고 말하고 있다.

연장물의 복합적 체계가 바로 문화이기에 연장물의 구속과 지배를 벗어난다는 것은 곧 문화를 넘어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문화는 뚜렷이 드러나기보다는 숨겨져 있으며 의식의 차원보다는 무의식의 차원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홀은 이러한 문화의 무의식적 측면을 일본에서 직접 겪은 자신의 여관체험과 콘던의 동작의 동시성 연구를 통하여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문화는 드러나지 않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체계이기 때문에 맥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선택적인 주목과 강조를 통하여 의미를 파악하는 맥락화 과정은 문화마다 다르게 나타나기에 우리는 다른 문화에 접하게 되면 어린애가 될 수밖에 없다.

말이 필요 없이 눈짓만으로도 의미가 통하는 고맥락 문화가 있는 반면 일일이 기술적인 설명이 필요한 저맥락 문화도 있다. 또한 한 민족, 한 국가 내에서도 무엇을 다루느냐에 따라 고맥락 체계가 있을 수 있고 저맥락 체계도 있을 수 있다.

한 문화가 지닌 이러한 다양한 맥락의 체계는 외부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으며 그것을 제대로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그 문화의 내부인이 되어 수십 년의 세월을 바쳐야 한다. 또한 내부인은 그 체계를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그 체계를 설명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화적 속박을 벗어나는 일은 딜레마에 빠진다. 에드워드 홀은 다른 문화와의 비교를 통해서 이러한 딜레마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남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곧 나의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 되며, 다른 문화와의 비교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문화가 우리 스스로에게 가하는 억압과 속박의 실체를 보다 확연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통찰이 보다 빛나 보이는 대목은 생물학적 유기체로서의 인간에 무게중심을 두고 인간의 뇌의 구조와 기능을 분석하여 그것을 현대 미국의 교육환경과 결부시켜 비판한 부분이다(제13장 교육의 문화적 기반과 영장류적 기반).


그는 인간의 뇌를 조작하고 지배하는 정신이란 내면화된 문화에 다름아니며, 과거 400만년 이상에 걸쳐 문화는 뇌에 전달되는 정보의 조직화를 진화시켜 왔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뇌가 사물과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이야말로 정신과 문화의 축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학습을 문화적으로 제도화시킨 교육은 인간의 뇌의 구조와 기능에 모순되지 않게 설계되고 시행되어야만 한다.

예컨대, 대뇌의 전두부가 놀랄 만큼 다르지만 명백히 관련이 있는 다섯 활동―지각, 신체운동, 계획된 행동의 수행, 기억, 문제해결―에 부분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상, 산수 문제가 풀리지 않아(문제해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신체운동) 학생에게 교사가 똑바로 하라고 야단치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인간이 만든 문화의 숨겨진 부분을 파고들면 들수록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문화에 의해서 조건지어진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다. 에드워드 홀의 말처럼, 우리 자신과 우리가 만든 세상―그리고 그 세상이 만든 우리―을 이해하는 일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며, 그것은 문화를 넘어서려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에드워드 홀 문화인류학 4부작 3 : 문화를 넘어서

에드워드 홀 지음, 최효선 옮김,
한길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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