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삶이 힘들고 괴로울 때

이지선의 <지선아 사랑해>

등록 2003.08.26 09:06수정 2003.08.2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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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지선아 사랑해>
책 <지선아 사랑해>이레
"조금씩… 조금씩… 멀리서나마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지금의 이 얼굴은 아무리 못 본 척 한다고 해도,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을 해도 지워질 수 없는 저 '이지선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얼굴을 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새롭게 주어진 '덤의 삶'을 제대로 살아나기 위한 첫 번째 숙제였습니다. 처음 보는 제 얼굴에 놀라지 않고 그 어색함을 이기기 위해… 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위해…."

이 책은 평범한 여대생으로 살아가던 이지선양이 대학교 4학년 때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화상을 입고 화상 환자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적어 간 내용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화상을 입고, 옛날의 예쁜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진 현재의 그녀는 그래도 힘든 현실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주바라기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가끔 '너무 흉측하다', '저러고도 정말 살 수 있을까?'라는 등의 가슴을 도려내는 얘기를 듣는다. 그녀는 솔직히 자신 또한 그런 엄청난 불행을 겪기 전에 다른 화상 환자들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들을 가졌었다고 고백한다.

물론 그녀 또한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신앙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사고 후의 자신의 모습과 심경의 변화 과정을 토로하는 솔직한 이야기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강성심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별로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호흡조차 잡히지 않았고 뒤통수는 다 찢어져 너덜거렸으며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상태였습니다. 응급실 안에는 고기 탄 냄새가 진동했고, 얼굴은 새카맣게 타서 누군지도 알아 볼 수 없는 제가 그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런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가족들의 사랑이다. 가족들 또한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지선이와 함께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결국 강한 믿음과 서로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힘든 현실을 극복해 나간다. 이 책에는 그 과정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은 오빠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예전에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많이 집착했었다. 사람, 물건, 시간, 추억들…. 하지만 사고를 당하고, 사고 전에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도난을 두 번이나 당하면서 나는 예전에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내가 손안에 꼭 쥐고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정말 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내가 진정으로 이 땅에서 가질 수 있는 것, 그것은 나의 육신도 나의 재물도 나의 운명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지선이가 꿈꾸는 욕심이란 바로 '평범하고 싶다'이다. 평범한 이지선으로 친구들과 쇼핑하고 예쁜 옷 입어 보고 남자친구도 만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회사 다니고 결혼하고 애 낳고 복닥거리면서 사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그녀는 특별한 사람이다. 그녀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좀더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특별한 사람이란 남들과 다른 사람이다. 그녀는 일그러진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 화상 사고를 경험하고 이겨내서 특별하다. 그리고 그러한 외모 덕분에 남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었고 남들이 하기 어려운 재활 상담학이라는 공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좀더 많이 받을 수 있었고,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길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삶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저 행복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행복은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기에…. 길에서 우연히 만난 꼬마로부터 '엄마, 괴물이다'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울었던 그녀는 2년 전만 하더라도 이화여대 유아교육과를 다니면서 꼬마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길 꿈꾸었던 여대생이다.

그녀는 이러한 따가운 주위 시선들에 대고 당당하게 말한다.

"저런 얼굴, 저런 손, 저런 모습이라면 당연히 불행하고 괴롭고 힘들 것이라는... 겉모습처럼 그의 인생도 우울하고 답답할 것이라는... 순전히 자기네들 입장에서만 나온 생각들... '쯧쯧쯧, 저러고 어떻게 사나' 하는 말과 눈빛들이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과 말, 눈빛을 '몰이해'라고 부릅니다.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저런 모습이니 이제 쟤는 아무것도 못 하겠다' '앞으로 어떻게 사나' '죽는 게 낫지, 인생 끝났네'라는 식으로 당사자의 마음과는 상관도 없는 자기들만의 생각으로 남의 인생에 종지부를 찍어버리는 '몰이해'가 정말 싫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편견이 얼마나 그들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지 절실히 느끼게 된다.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서 하나의 인격체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다.

너도나도 부족함 투성이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이 신체적 장애이든 마음의 부족함이든 이해하고 보듬어줄 줄 아는 것이 바로 바람직한 삶일 것이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그런 깨달음을 얻는다면, 이지선 양이 꿈꾸는 '편견'과 '몰이해'가 없는 세상의 모습은 금방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지선아 사랑해 - 다시, 새롭게

이지선 지음,
문학동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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