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보도는 진정 우리를 평화롭게 하는가 ①

WMD·북핵 보도서 드러난 외신 보도의 ‘우경화’ 현상 분석

등록 2003.08.26 15:33수정 2003.08.2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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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 과학자 망명설’과 보수 외신의 ‘언론 플레이’

지난 4월 19일 북한 핵 전문가의 망명 소식을 다룬 서방 언론의 보도로 국내 언론계는 발칵 뒤집혔다. 호주 전국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의 주말판 <위켄드 오스트레일리안>이 ‘북한 핵 과학자 등의 집단 망명설’을 단독 보도한 것이다.

당시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의 북한 핵 개발 의혹 폭로를 기점으로 악화된 한반도의 먹구름이 불과 사흘 뒤로 다가온 북-중-미 회담을 앞두고 겨우 진정세 국면으로 접어든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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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과학자 등의 망명을 보도한 호주 전국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의 주말판 <위켄드 오스트레일리안> 19일자 ⓒ 오마이뉴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국내 언론들은 왜 하필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 망명설이 제기됐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보다는 앞다퉈 이 기사를 인용 보도하기에 급급했다. 더 나아가 각 언론사들이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 다양한 취재원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망명설은 사실과 오보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들을 혼란시켰다.

그러나 정작 망명설을 보도한 호주 언론은 후속 보도 없이 여태껏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한바탕 소용돌이가 몰아친 한국 언론의 분위기와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망명설의 진위 여부가 아직까지 미궁에 빠져있는 가운데, 6개 면을 할애한 특집 기사에 후속성 보도가 일절 없다는 사실은 또다른 의혹을 낳고 있다.

<디 오스트레일리안> 국제 부장 ‘대북 해상 봉쇄... 북 핵의 평화 해법 될 것’

의혹의 핵심은 한마디로 '언론플레이 가능성을 정말 몰랐는가, 아니면 알고도 외면했는가'로 요약된다. 이에 대한 분석에 앞서 우선 보수성향 언론의 일반적인 대북관을 알아보자. 그레그 쉐리던 <디 오스트레일리안> 국제 부장의 대북관을 통해 이를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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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그 쉐리던 <디 오스트레일리안> 국제 에디터 ⓒ Australian

25일 오후 전화인터뷰에 응한 쉐리던 부장은 이달 말 북경에서 열리는 6자회담 개최에 대해 밝은 전망을 내놓으면서도 방법적인 차원에서는 미국 주도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이하 ‘PSI’)이 북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독특한 견해를 제시했다.

지난 6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AWSJ)에 '대북 저지(Interdicting North Korea)'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한 쉐리던 부장은 PSI 구상이 북핵 확산에 유일한 대안임을 강조했다.

이 칼럼에서 그는 북한이 대량살상무기(이하 'WMD')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 모든 선박을 정선 및 수색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주변국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PSI 참여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PSI 구상이 북한을 더욱 자극함으로써 군사 대결을 부추길 것이라는 경쟁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편집 방향과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 외교정책을 지지하는 그는 북한을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정권으로 간주하며 때때로 자신의 칼럼을 통해 북한을 '악의 세상(evil world)', 시대착오적 체제(anachronism regime) 등으로 규정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과거 (미국) 민주당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클린턴의 당치않은 소리(Clintonian fudge)’라며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한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정확한(accurate) 지적으로 평가하는 그는 역시 부시 대통령에 의해 ‘악의 축’으로 규정된 이라크에서 종전이후 지금까지 WMD가 발견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WMD 프로그램이 실존했다는 말로 에둘러가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디 오스트레일리안>의 전쟁 관련 사설과 기사는 WMD 프로그램이 아닌 WMD의 실체를 조장해왔다.

서방언론이 조장한 WMD 논란의 실체는 실증적인 사례와 함께 뒤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이에 앞서 강경 외교노선을 지지하는 언론사의 보수적 논조가 실제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

우리의 사례를 알아보기 위해 다시 ‘경원하 박사 망명’에 관한 <위켄트 오스트레일리안> 보도를 살펴본다.

‘보수 논조’ 이면에 드리워진 ‘자발적 편집’ 의혹

경 박사 망명설을 보도한 특집기사에서 <위켄드 오스트레일리안> 탐사보도팀은 정보기관 배후설의 실체를 입증하는데는 실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사 작성에 관여한 마틴 추로브 기자는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경 박사가 북한 핵 무기 개발에 핵심 과학자라는 정보를 CIA 측으로부터 전해들었다고 실토했다.

그런데 추로브 기자의 이와같은 발언은 또다른 추측을 낳게 한다. CIA 관계자와의 접촉 여부를 사실상 인정한 셈이지만 결과적으로 재정지원 의혹에 관해 묻고 답한 흔적이 전혀 지면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데서 기사의 본질적인 허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당시 기사에는 CIA 관계자가 연계의혹을 부인했다는 등의 언급이 일체 지면에 반영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CIA 관계자와의 접촉 사실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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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5년 현 강원대 전신인 춘천농과대학 졸업앨범에 실린 경원하 박사 ⓒ 오마이뉴스

만일 CIA 관계자 접촉 당시 미 정보당국의 언론플레이일 가능성을 짐작했다면, 연관성을 밝히려는 노력과 함께 이에 관해 언급한 멘트가 적어도 한 두 마디 정도는 있어야 했다. 7면에 걸친 탐사보도의 비중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족제비 작전(망명 작전의 코드명)’과 CIA와의 연관성을 밝히지 못했다는 문구만이 삽입된 것은 취재에 임할 당시부터 연관성을 밝힐 의도가 없었거나, 아니면 관련 부분을 애써 무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 연관성에 대해 깊은 의혹을 가지고 있었다면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는 정도의 멘트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다면 팩트(fact) 자체를 확인하기 힘든 이와같은 기사가 맹위를 떨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고민의 시작과 끝엔 ‘형님 좋고 매부 좋은’ 우경화된 정치권력과 언론권력 간의 공생의 연결고리가 발견된다. 더욱이 공생 구조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전반적인 서방 언론의 심각한 현실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닮은 꼴 보도의 전제… ‘과학자는 오로지 진실만 말한다?’

경 박사 망명설이 호주 언론에 의해 제기된 시기(4월19일)와 비슷한 때, 미국에서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이하 ‘WMD’) 소재를 둘러싼 언론사간 보도경쟁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뉴욕타임즈 4월 21일자 보도는 이중 가장 광범위한 비판을 받은 사례로 꼽힌다. 당시 보도는 미국 체류 이라크 과학자의 발언을 토대로 WMD의 위치를 명시해 주목을 끌었다.

신문보도는 이라크 과학자의 증언에 따라 UN 사찰규정 위반으로 간주되는 화학무기 은닉 장소로 미군 병사와 임베드(연합군 기자단)를 이끌었다. 아울러 과학자는 신문보도를 통해 화학물질의 시리아 밀반입설과 이라크의 알 카에다 연계설에 관해서도 증언했다.

엠바고를 지켜 출고한 밀러 기자의 기사는 뉴욕타임즈는 1면(front page) 기사로 채택됐다. 하지만 보도에 인용된 과학자의 말은 결과적으로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이어 과학자와의 인터뷰가 실제 진행될 수 없었던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다.

당시 이 사실은 알카에다 연계설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대부분의 현장 기자들에게 전해졌고 국방부 고위 관계자의 입막음속에서 빠르게 사문화되었다고 AP 통신은 전한다. 이에 미 국방부는 한동안 WMD 소재에 관한 수색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

‘경 박사 등 망명 보도’와 ‘WMD 은닉지점’에 관한 보도는 다음과 공통점을 가진다. 이른바 (미국 기준의) 적성국가의 핵심 무기 개발에 관여한 과학자에 관한 보도로 정보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경 박사 보도의 경우는 ‘과학자의 포섭’을 알림으로써, WMD 보도는 ‘과학자의 증언’을 알림으로써 각각 기대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의 주체가 정보당국이라면, 후자는 언론이 자발적으로 조성한 결과라는 것 정도이다.

하지만 위의 두 가지 보도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낳는다. ‘과학자가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모든 과학자에게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든 과학자가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쥬디스 밀러는 누구?
FAIR,'죽은 정보 활용한 기자' 혹평

페어(FAIR)로부터 “언론의 측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죽은 정보(inactionable intelligence)’를 이용한 기자”라는 혹평을 받은 뉴욕타임즈 기자.

WMD 문제에 관한 보도를 위해 지난 수년간 부풀리고 가공된 관련 기사(a bulging clippings file) 스크랩에 열중했다는 비난도 함께 받았다. 페어 보고서에 따르면 그녀는 종종 제 정신으로 간주되기 힘들만큼 입증 불가능한 자료를 구해와 이라크 WMD설과 연계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그녀의 대표적 보도 사례는 “비밀 병기고: 대(對) 세균 테러 대비 탐색전(Secret Arsenal: The Hunt for Germs of War) - 98년 2월 26일” “망명가가 전한 이라크 핵 무기 공격 계획의 진상(Defector Describes Iraq's Atom Bomb Push) - 98년 8월 15일” “이라크, 화학 및 핵 공격시설 새 단장... 관계자 증언(Iraqi Tells of Renovations at Sites For Chemical and Nuclear Arms) - 2001년 12월 20일” “망명가들 미국의 대(對) 이라크전 지지, 정부 관계자 언급(Defectors Bolster U.S. Case Against Iraq, Officials Say) - 2003년 1월 24일” 등으로 대부분 미국의 대(對) 이라크전을 선동하는 내용이다.

한편 지난 5월 <워싱턴포스트>의 미디어 칼럼니스트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그녀는 무심코 자신의 취재원을 공개해 일파만파 논란을 빚기도 했는데, 당시 공개된 밀러의 취재원은 다름 아닌 횡령 유죄 판결을 받고 이라크에서 추방 당한 아메드 찰라비였다. 찰라비는 지난 10여 년간 후세인 정권의 붕괴를 도모하는 로비를 워싱턴 당국에 펼쳐온 인물이기도 하다.

논란이 불거지자, 밀러 기자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 그녀는 지난 10년 간 찰라비를 주 취재원으로 이라크에 관한 기사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찰라비와 망명 또는 추방된 그의 동료들이 대부분 워싱턴의 중동 정책 구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온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UPI 통신 3월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당시 CIA의 정보 분석가들은 찰라비 일행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방성의 매파(hawk)들이 이같은 주장을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 허겸


언론 활용한 적성국 반응 떠보기의 '기대 효과'

이를 다시 ‘경 박사 망명’보도에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즉, 일부 과학자들의 북한 탈출과 제3국 체류 여부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곧 북한 핵 개발의 핵심 멤버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의 관련보도가 지적한 것처럼, 수많은 탈북자들중 한 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또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과연 이런 방식의 언론플레이에 대한 상대국의 미온적인 대응 혹은 침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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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천리마 광장 ⓒ 천리마그룹

북한은 최초 망명설이 보도된 지 45일이나 지난 시점에서 비로소 망명 보도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당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엄연히 우리(북한)나라에서 잘 근무하고 있는 사람(경 박사 등)이 망명했다는 터무니 없는 날조 보도’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경 박사의 모습이 방송에 직접 등장하거나 육성이 확인된 것도 아니어서, 일부 국내언론 중에서는 오히려 망명 성사설에 무게를 두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적극적인 부인을 하지 않은 것일까?

이번 보도가 터졌을 때 정작 누가 실익을 얻게 되는가라는 가정을 통해 이에 대한 의혹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자. 우선 경 박사 망명설이 명백한 오보라는 전제 아래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다.

첫째, 정치적 숙청·조직 내 갈등으로 인한 위상 변화·기타 핵 개발 전문가를 둘러싼 북한 내부의 미묘한 기류가 감지됐을 때, 그 내막을 간파하기 위한 미 정보당국의 움직임에 고의로 소극적인 대응을 보였을 가능성이다.

둘째, 명확한 반박 보도가 경 박사의 핵 무기 관여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음을 북한 당국이 우려했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 과학자의 개입 여부를 가늠하기 위한 척도로 언론을 활용한 미 정보당국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전략적 대응에 해당한다.

이 경우 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보이는 반작용의 수위를 통해 경 박사 등이 실제 어느 정도 핵 개발에 관여하고 있었는지와 함께 북한 핵 개발의 현 위치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셋째, 만일 미 정보당국이 캐나다에서 핵 기폭장치에 대해 공부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원하라는 인물의 소재를 추적중이었다면, 역설적으로 북한의 반박 보도를 통해 실제 북한 체류 여부와 핵 개발 관여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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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된 CIA 본부 ⓒ CIA Home

그런데 이 경우 새롭고 흥미로운 가설 하나가 추가될 수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마약 또는 무기수출 의혹에 따른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북한이 새로운 돌파구로써 과학 기술자를 직접 파견하는 인적 수출로 방향전환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설정이다.

이에따라 해당 첩보를 입수한 미 정보당국이 경 박사 등이 시리아 혹은 기타 국가에 머무르고 있을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서방국가 망명설을 언론에 유포했을 가능성도 있다.

요컨대, 위의 어느 경우에도 경 박사 일행의 소재에 관한 북한의 언급이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정보를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CIA의 의도는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 외면하는 보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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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정권이 일컫는 이른바 '악의 축(Axis of Evil)' 국가 ⓒ 폭스뉴스닷컴

그렇다면 외신은 왜 이토록 한반도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또한 그들은 왜 대북 햇볕정책을 부정하고 북 핵 위기 조장에 적극 나서는 것일까? 이와 같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우선 공화당과 부시 행정부의 성격을 규명해볼 필요가 있다.

군수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 출신의 부시 대통령은 재임 초기부터 강경한 외교 정책을 펼쳐 곳곳의 반발을 불러왔다. 이같은 부시 행정부의 군사 패권주의는 지난 9·11 테러를 정점으로 극에 달했는데, 테러 위협에 대한 강력 대응을 주문하는 보수언론과 결탁해 전례없는 ‘애국주의’ 물결을 일으켰다. 이른바 ‘악의 축’ 발언도 이 과정에서 파생된 산물이었다.

미디어 재벌이 소유한 케이블 방송들은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을 지지하기 위해 노골적인 ‘친미 저널리즘’을 펼쳤고,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거나 적성국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관점을 널리 유포시켰다. 부시에 의해 ‘악의 축’ 국가로 지목된 북한의 핵 개발과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도 이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특히 이러한 애국주의 보도의 선봉에 폭스 뉴스가 있었다. 폭스 뉴스를 소유한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은 이라크전을 앞두고 부시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 신보수주의 예찬론자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런데 머독의 이와같은 언론플레이 이면에는 전 후 부시 행정부의 논공행상 과정에서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언론 독과점 규제 완화 조치를 이끌어냄으로써 미디어 제국 확장의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숨은 계산이 깔려 있었다.

현행법이 한 지역 내에서의 방송과 신문의 겸영 및 방송시장의 독과점을 규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법률 개정으로 확대된 자율성을 통해 경영의 효율과 경쟁력 극대화를 일구겠다는 기대에서다.

메트로 방송을 인수하던 지난 85년에도 머독은 외국인의 방송 소유를 제한하는 법망을 피하기 위해 미국 국적을 취득하는 기민함을 보인 바 있다. 그에게 있어 저널리즘은 자신의 미디어 제국 확장을 위한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었다.

저널리즘 본질 잊은 언론 재벌… 전쟁 기화로 주가 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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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코퍼레이션 홈페이지 ⓒ Newscorp

그렇다면 전쟁 보도와 보수언론의 수익성 간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이를 통해 전쟁을 부추긴 미디어 재벌의 속내를 가늠해볼 수 있을까?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전쟁보도가 보수언론의 직접적인 수익 증대에 기여한다는 최근의 보도를 참조해보자. 호주의 경제 일간지 <오스트레일리안 파이낸셜 리뷰(Australian Financial Review)> 8월 14일자 보도에 따르면 폭스뉴스 채널은 올 상반기 동안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나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폭스 뉴스 채널의 수익률이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이는 이라크전 보도로 인한 광고 재정 증가에 기인한다(Meanwhile, the Fox News Channel's profit nearly doubled with higher ad revenue overcoming increased costs of coverage of the war in Iraq).”

이 기사는 전쟁 보도와 수익성 간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공격적인 언론관으로 미디어 제국을 구축해 온 머독과 선악 이분법에 따라 적성국가에 대한 선제공격론과 군사패권주의를 고수한 부시 행정부가 결합해 올린 순이익과도 같은 셈이다. 이는 곧 전쟁보도가 저널리즘의 본질을 외면한다는 주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편 폭스 네트워크도 시청률을 겨냥한 ‘아메리칸 아이돌’, ‘죠 밀리오네이어’와 같은 상업 프로그램의 인기상승으로 전년도의 부진을 씻고 뉴스코퍼레이션 수익 증가에 기여한 것으로 같은 신문은 보도했다.(Aided by programs like "American Idol" and "Joe Millionaire" the Fox network reversed its lackluster performance from the previous year)

뉴스코퍼레이션의 이와같은 대박성찬에 대해 ‘해리스 네스빗 게라드(Harris Nesbitt Gerard)’의 경영 분석가 제프리 록스돈은 “팍스 네트워크와 케이블 네트워크(폭스뉴스)가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전쟁 보도를 통한 폭스뉴스의 수익 증가와 폭스뉴스를 통한 뉴스코퍼레이션의 주가 상승 이면에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과연 누가 전쟁의 실마리를 제공했고 누가 전쟁을 부추겼는가에 관한 책임 소재이다. 더 나아가 누가 지금 그 진실에 관해 침묵하고 있는가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다.

폭스 뉴스 사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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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뉴스의 테러와의 전쟁 관련 특별 섹션 ⓒ 폭스뉴스닷컴

그렇다면 미국주의를 일방적으로 부추기는 폭스효과(Fox Effect)의 실체가 과연 어떤 것인지 미디어 감시 기구 페어(FAIR)가 조사·집계한 모니터 결과를 통해 알아보자.

전쟁의 구실이 된 대량살상무기(이하 ‘WMD')에 관한 보도가 폭스 뉴스를 통해 어떻게 부풀려지고 급기야 꼬리를 감추게 되었는지의 과정이 담긴 대표적인 보도 사례에 해당한다.

전쟁 발발 직후인 3월 23일 폭스 뉴스는 다음과 같은 머릿기사를 담은 배너를 방송 내내 띄웠다. “대량 생화학 무기 공장 이라크서 발견... 생포된 30인의 포로 증언... 연합군 (생화학) 무기 책임자 체포”(관련 원문 - "Huge Chemical Weapons Factory Found In So Irag.... Reports : 30 Iraqis Surrender At Chem Weapons Plant... Coal Troops Holding Iraqi In Charge Of Chem Weapons)

폭스 뉴스 특파원과 함께 공동으로 기사를 발굴한 연합군 기자단 소속 <예루살렘 포스트(Jerusalem Post)> 기자도 3월 24일자 1면 머릿기사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타전했다. “미군, 첫 생화학 무기 공장 급습(U.S. Troops Capture First Chemical Plant)”

그러나 다음날 카타르 소재 폭스 뉴스 특파원은 전날 타전한 기사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조용히(quietly) 바꿨다. “연합군이 발견한 생화학 무기 시설, 가동되지 않은 시설로 판명... 추가 조사 진행중(The chemical weapons facility discovered by coalition forces did not appear to be an active chemical weapons facility. Further testing was required)

같은 날 다우존스 통신(Dow Jones wire)은 “미 관료, 해당시설 생화학 무기 관련성 부인... 탐색 대상서 이미 제외된 시설(In fact, U.S.officials had admitted that morning that the site contained no chemicals at all and had been abandoned long ago)”이라는 보도로 생화학 무기 소동을 일단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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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 34th WMD-CST 소속 해군 고위 관계자가 WMD 실험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는 물질을 설명하고 있다 ⓒ 미 국방부

AP 통신에 따르면 폭스 뉴스는 지난 4월 11일 기자단 소속의 우익 성향 신문인 피츠버그 트리뷴 리뷰(Pittsburgh Tribune-Review)가 출고한 “이라크 핵 시설서 무기 장착용 플루토늄 발견 의혹(Weapons-Grade Plutonium Possibly Found at Iraqi Nuke Complex)”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서비스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같은 보도에서 폭스 뉴스는 미군 병사들이 발견한 대량 지하시설이 지난 수년간 UN 이라크 핵 사찰단이 지속적으로 감찰해온 시설과 동일한 곳임을 밝히지 않아 보도윤리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에 폭스 뉴스는 전 이라크 과학자 조지 가지의 말을 인용해 “이번 시설의 발견으로 UN 사찰단의 활동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입증할 수 있게 됐다”며 “머지 않아 병사들이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해 여론의 화살을 비껴갔다.

페어(FAIR)란 무엇인가?
'촘스키가 권위 인정한 미디어 감시기구'

페어(FAIR)는 1986년 설립된 진보 성향의 언론 감시 기구로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미디어 비평 자료 발간을 주 목적으로 한다. 'Fairness and Accuracy in Reporting'을 의미하는 페어는 미디어 재벌의 전횡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의 구조 개혁을 적극 지지하며 독립성이 보장된 공공 방송과 비영리 기구의 설립 및 확대를 도모한다. 노엄 촘스키 MIT 교수와 초국적 미디어 재벌 전문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로버트 W 맥체니 일리노이 주립대 교수 등 미국의 진보적 지식 그룹으로부터 높은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촘스키 교수는 ‘심도있는 정보와 통찰, 균형갖춘 관점’ 등을 페어 보고서의 장점으로 평가한다.
/ 허겸
그러나 5월로 접어들며 부시 행정부는 사실상 유령(WMD) 사냥을 포기한 듯 한 행보를 보였다. 실체 없이 추적만 해 가는 보도방식이 WMD 주장의 신빙성과 함께 정부에 대한 신뢰도마저 실추시킬 수 있다는 내부의 우려 때문이었다.

이에따라 인터뷰나 비보도를 전제로 한 기자 간담회에서 정부 관료들은 WMD의 비중을 애써 무시하거나 발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둔감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와같은 분위기 속에서 개전 이후 토끼몰이식 현장 보도로 주가를 올린 폭스 뉴스도 주춤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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