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개떡에 대한 유년시절의 추억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등록 2003.08.27 06:19수정 2003.08.2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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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신나는 학교 어린이들이 개떡을 입에 물고 사진을 박고 있다. 거 맛나겠다.

신나는 학교 어린이들이 개떡을 입에 물고 사진을 박고 있다. 거 맛나겠다. ⓒ 느릿느릿 박철

1.
내 고향은 강원도 철원입니다. 철원에서 세살 적에 강원도 화천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우리 식구들이 살던 곳은 ‘논미리’라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집 앞에는 산이 버티고 있고, 그 밑으로 개울물이 흐릅니다.


우리집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땅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경찰공무원 생활을 그만두신 뒤, 이것저것 사업이라고 하셨으나 실업자 비슷했습니다. 우리집 옆으로 의무중대라는 군인병원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재봉틀로 군인들 군복수선을 해주셨습니다. 거기서 생긴 몇 푼의 수입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추석이나 설날같은 명절이 돌아오면 집집마다 떡을 합니다. 쌀을 담그고 떡방앗간에 가서 떡을 해옵니다. 그런데 우리집은 명절이 되어도 떡 할 생각을 안합니다. 누나와 나는 어머니께 투정을 했습니다.

“엄마, 다른 집은 다 떡 하는데 우리집은 왜 안해요? 우리집도 떡 해요!”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재봉틀을 돌리십니다. 그때는 가난하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더 큰소리로 어머니께 떼를 썼습니다.

“엄마! 우리집도 떡 좀 해요. 우리집은 추석이 돌아왔는데도 왜 떡을 안해요. 우리도 떡이 먹고 싶어요!”


그 시절 우리집은 매일 꽁보리밥을 먹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쌀밥을 처음 보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집 하얀 밥 해 먹자!”
“덕호네 집엘 갔더니 밥이 아주 하얀색인데 맛있겠더라.”



어머니는 누나와 내가 떡 좀 해먹자고 떼를 쓰면, 마지못해서 떡을 하셨습니다. ‘보리개떡’입니다. 시커먼 ‘보리개떡’. 요즘처럼 쌀에 콩 박아서 하는 개떡이 아니라, 보리를 빻아서 거기다 사카린을 넣어 만든 새카맣고 거친 떡입니다. 우리는 그것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러고보면 보리개떡은 나를 유년시절로 인도해 주는 또 하나의 추억의 단추입니다. 보리개떡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2.
떡 방앗간 집에는 언제나 하얀 김이 납니다. 볼거리가 없던 옛날에는 방앗간 구경이 참 볼만했습니다. 주인아저씨가 떡 기계 구멍에서 뱀처럼 나오는 하얀 가래떡을 연신 가위로 적당하게 자르면, 가래떡은 물이 담긴 큰 양은 함지박에 담겨 자동으로 뜨거운 김을 한풀 죽입니다.

a 콩을 박은 쑥개떡. 그러나 쌀로 만든 것이어서 옛날 보리개떡과는 다르다.

콩을 박은 쑥개떡. 그러나 쌀로 만든 것이어서 옛날 보리개떡과는 다르다. ⓒ 느릿느릿 박철

그러면 떡을 하러 온 사람들은 주인아저씨가 떡이라도 한쪽 빼돌릴까봐 얼른 바구니에 담습니다. 그런 풍경을 지켜보는 아이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어디 마음 좋은 아주머니가 나를 알아보고 좀 주지 않을까 방앗간 출입문에 기대 서있지만, 좀처럼 그런 행운은 오지 않습니다.

30년보다 도 훨씬 전, 강원도 논미리에서 상고머리를 한 소년은 보리개떡을 하나 들고 서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연을 날리고, 설빔으로 차려입고서 세배를 드리러 몰려다니고 있었습니다. 보리개떡을 들고 서 있는 소년은 누가 자기와 좀 놀아주었으면 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옆집에 사는 소녀 하나가 흰 가래떡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소년은 소녀에게 주면서 이 떡이 더 맛있다고, 실은 개떡이 맛있는지 가래떡이 맛있는지 그것도 모르고 바꿔먹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소녀는 군말 없이 떡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소년이 가래떡을 한 입 베어 먹으려는 찰라, 그 소녀의 어머니가 자기 딸에게 고함을 지르며 내 손에 든 가래떡을 확 낚아채가고, 자기 딸 손에 들려 있던 개떡을 나에게 집어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 소녀의 어머니는 자기 딸이 손해 보는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소년은 시커먼 개떡하고 하얀 가래떡하고 바꿔 먹는 게 그렇게 화를 낼 정도로 잘못된 일 이었는가 언뜻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30년이 훨씬 지난 옛날이야기지만, 지금 50살이 다된 소년은 그 옛날 강원도 화천 논미리에서 있었던 그 무안함을 생각해 봅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유년시절, 어머니가 해주신 보리개떡이 생각납니다. 이번 추석에는 보리개떡을 한번 해먹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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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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