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기
아내와 처음 맺어진 곳 산이다 돈 안 드는 꼬불꼬불 산길이나 가다가 그예 일 저질렀다 세월 한참 흘러 아내와 깊이 맺어진 곳 산이다 느타리버섯 막 세울 리기다송 열댓 그루 산림감시원 피해 한밤중 마을로 들여가는데 아내는 낭창낭창 우듬지 메 앞서고 밑동 내 어깨에 얹어 소쩍새 우는 종산 등고선 따라 뒷것 맨 앞에 두고 다시 뒷것 맨 앞에 두며 밤새도록 먼 마을로 들여가는데 달 밝은 봄밤 철쭉은 뭉텅뭉텅 붉고 송진은 온몸에 찐득찐득 으깨진 풀냄새 가득한 어디쯤 나란히 앉아 땀 훔칠 때 골짜기 저 아래 외로운 불빛 깜박깜박 나는 산아래 마을이 생겨난 아득한 옛날부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깊은 밤 여기서 마을을 내려다 보았을까 먹고사는 걱정에 가슴 졸였을까 그리고 지금 사내 계집이 함께 산에 죄 짓는 중이다! 그렇게 한꺼번에 뜨거워지며 달빛 가득한 골짜기 향해 짐승의 외마디를 내지르던 거였다.
이면우 시 <산> 전문
- <산>이라는 작품이 매우 관능적이더군요.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하루는 내가 소를 몰고 올라오는데… 그러니까 거리가 조만큼 밖에 안되는데… 동구나무 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보고나서 곧 바로 친구에게 소개해달라고 했지.
당시에 내가 여자를 보는 눈은, 꽃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고, 어떻게 하면 함께 도와 가면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건강하게. 그때 내가 27살이었는데 난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통했어요. 지금은 소탈하게 말을 잘하는데, 그 당시는 내가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어요. 노동을 시작한지도 얼마 안되었고. 그때는 심각한 측면이 강했는데… 그런데 이런 게 있었어요. 모든 건 선의로 통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충돌이 발생할 때 선의가 가장 관건이 된다. 그러니까. 내 자신도 삶을 잘 유지하려면 선의를 갖자, 어떤 경우에도 항시 선의로서만 마음 자세를 가지면 실패할 이유가 없다 이런 식인 거지요.
그러니까 친구이자 안식구의 조카인 사람에게 나 저 여자가 맘에 든다 저 나를 좀 만나게 해달라고 했지요. 그래서 그날 밤에 만나게 됐지요. 안식구 회고에 의하면 그 전에 나를 한 번 봤대요. 시골이니까. 어느날 보니까 왠 국민학생 같은 사람이 앉아 있더래요. 그때 조그마했거든요. 지금은 살이 좀 붙었고. 그게 당신이더라 하더라고요. 집사람은 나하고 같아요. 아주 똑같진 않아도 거의 같아요.
중요한 이야기 합시다. 안식구와 며칠 데이트를 했는데 대전 톨게이트 위쪽 마을인데 시내에서 데이트를 하고 들어오면 시골이니까 내가 바래다 주어야 하는거죠. 보문산 갔다 돌아오는 길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대전을 다녀갔는지 톨게이트에 국화꽃을 쭉 놔뒀더라고요. 그런데 안식구가 그걸 가지고 가겠다는 거예요. 내가 왜 그걸 가져가려고 하냐고 물으니까 자기가 국화꽃을 좋아하는데 저렇게 이쁜 국화꽃을 못보았다는 거야. 그게 탐이 난다는 거야.
그런데 그 순간 내가 뭘 생각했냐하면 우리가 보통 죄 문제를 따지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그걸 안 따졌다는 거예요. 아,이 여자는 나와 살면서 평생 관념적인 선과 악 때문에 나를 괴롭히진 않겠구나 .난 순간 그걸 본 거예요. 어떤 당위성 같은 걸로 나를 괴롭히진 않는다는 거지요.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건 뭐냐하면 화분 하나라도 집으로 끌어들이려는 마음. 죄의 문제를 떠나서, 뭔가 하나라도 더 끌어들이려는 마음. 생활력이지요.
내가 그 당시 현실을 심각하게 생각하던 사람이에요. 그냥 지나가는 노동자가 아니고 좀 깊은걸 봤으니까. 적어도 이 여자가 마음속에 있는 선악의 기준 때문에 괴로워하고 살 사람은 아니구나. 그러니까 같이 살면 편하겠다. 우리 둘이 살면 잘 살겠다.뭐, 그 예상이 딱 맞아 떨어진 거지요. "
- 신혼생활은 맨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대전 홍도동에서 시작해서 몇 년 후에 두 칸 짜리로 옮겨 갔어요. 노가다를 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내가 자격증이란 게 있었어요. 자격증을 가진 사람에게는 자격증 수당이 있었거든요. 내가 보일러공이니까 보일러를 설치할 수 있는 자격증이 있었어요. 그 자격증을 가지고 회사를 들어가면 내가 그 회사에서 일한 노동은 하루하루 품삯으로 나오지만 자격증 수당은 따로 나와요.
빌려준다는 그런 개념이 아니고 내가 그 면허를 가지고 일을 하는거지요. 일을 하는 날만 일당을 받고 수당은 한 달에 얼마씩 받는거죠. 회사에서 면허가 내 것이 걸려있어 가지고 그 회사가 움직여 가는 거니까… 그러니까 지금 생각하면 처량하게 산 거는 아니었어요. 그런 것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그 면허 수당이 다달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육 개월에 한번씩 나오니까 그것이 모아지는 거지요."
- 그건 면허증만 빌려줬지 보일러실에서 일하는 거는 아니잖아요?
"지금 가진 면허증은 보일러를 운전하는 면허증이지만 이건 그 뒤에 새로 딴거고. 애초에 현장에서 일할 때는 보일러를 설치하는 면허가 있었어요. 원동기시공면허증이라고 하는거요. 그래가지고 같이 일을 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품을 팔되 떠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함께 움직여요. 내면허가 필요한 곳에 가서 움직이는 거죠. 그래서 내가 '노가대'를 했으되 어떤 지적인 부분이 결합된 거예요."
점심을 먹고 나서 근무처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아들을 주기 위해 길가에서 운동화 한 켤레를 골랐다. 그는 아들에게도 늘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공부로 승부하는 것은 늘상 긴장해야 되는 것이니까, 삶을 즐겨야 되는 거다. 그런데 삶을 즐기려면 될 수 있으면 오감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라. 오감을 가지고, 오감을 이용해서,그럴 때 삶이 행복할 것이다, 라는 걸 이야기 해주는거지요. 따지면 그런 거예요. 우리들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사실은 큰 뭔가가 성취되어서 느끼는 거 보다는 작은 것들, 감촉되는 것들 내 앞에 있는 것들, 이런 것 때문에 행복해지는 거 아닙니까?
누가 들으면 왜 자신을 한정시키느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난 내 아이한테 이런 말을 해요. 자기 신분을 계층을 자각해라. 누가 들으면 요즘 세상에 계층이 어디있어? 라고 말하겠지만 난 어릴 때부터 계층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난 어릴 때 장사를 하면서 생의 이면을 봤거든요. 보니까 계층이 있단 말이에요. 공격적으로 자기계층을 상승시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거고 자기 계층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거란 말이지요.
이면우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개인취향이에요. 나는 나한테 주어진 것을 접수할거야. 접수하고 거기서 즐기면서 살아갈거야. 이런 거지요. 어떻게 보면 발전이 없는 건데… 그러니까 이것이 근대하곤 안 맞는 거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전근대적인 것이라고. 난 내 삶을 굳이 근대로 밀고 가서 경쟁 속에다 놔두고 뭘 성취하는 거 보다는 전근대적인 삶을 통해서 심정적인 기쁨 같은 걸 맛보면서 살자는 주의예요.
아까 내가 전략을 갖고 산다고 이야기 하셨지요? 사실 난 어릴 때부터 전략을 생각했던 거예요. 난 그냥 온 거 아니에요. 전략을 세웠어요. 내가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내가 그 당시 17살 때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확실한 건 학교 선생님 정도더라고요. 내 스스로 자기를 놓고 보니까 학교 선생님 정도가 맞았어요. 능력에. 사실은 내가 개인적으로 갖는 심정중의 하나가 뭐냐면 서로 개인적으로 심정을 주고받는 건 좋아요. 그러나 두 세 사람이 있어 가지고 내가 뭔가 책임져야하고 결정해야 한다면 싫어요."
- 스트레스에 대해 굉장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시네요?
"네. 일종의 스트레스일 거예요. 그러니까 결정하는 것을 회피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안식구한테도 늘 하는 이야기가 그거예요. 안식구가 뭘 물어오면… 아 여보 그런 거는 당신 혼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내가 결정하게 되면 내가 너무 여러 가지를 결정해야 되는데, 우리 아들한테도 그렇고…"
"오감을 가지고, 오감을 이용해서 살아갈 때 삶이 행복할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진정한 노동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섣불리 꺼내놓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의 노동의 이력이 그만큼 탄탄하므로 그의 시의 구체성을 떠받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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